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영정이 있는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영정이 있는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막상 오늘 합의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렇게라도 하면 뭔가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허무하고 슬픕니다…" (권금희씨)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 분향소. 고 이동우(38)씨 영정 앞에 글자도 많지 않은 A4 용지 크기 합의문 두 장이 놓였다. 부인 권금희씨는 "이 종이가 우리 남편을 대신하는 건가요"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황월순씨는 오열했다. 아버지 이종원씨는 합의문을 쳐다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등을 돌렸다.

동국제강이 이씨의 죽음 88일 만에야 사과한 직후, 유족들의 모습이다. 동국제강 하청업체 소속이던 이씨는 지난 3월 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천장 크레인 보수작업을 하다 설비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원청인 동국제강이 공식 사과하기까지 88일간 유족들은 이씨의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임신 중 상복 입고 50일 넘게 농성한 부인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부인 권금희씨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부인 권금희씨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유족과 동국제강은 총 8차례 협상 끝에 이날 최종 합의했다. 양측이 서명한 합의문에는 사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피해배상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합의에 따라 동국제강은 ▲장세욱·김연극 대표이사 명의로 동국제강 홈페이지에 일주일간 사과문을 올리고 ▲문제 설비에 전원 차단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 ▲민사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유족들이 요구했던 장세욱·김연극 대표이사의 대면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양쪽의 조인식은 동국제강 본사 접견실에서 약 30분간 치러졌다. 이 자리에서 사측 대표로 나온 이찬희 동국제강 협력동반실장은 "이렇게 늦어진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라며 "저희 회사 내에서 중대재해가 발생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유족들에게 "좀 늦었지만 고인도 보내드리고, 가족분들이 심신이 많이 힘드실 텐데, 빨리 일상을 회복하시고 안정을 찾으시길 회사는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 짧은 문장을 듣기 위해 가족들은 그간 상복 차림으로 50일 넘게 거리 농성을 해왔다. 이씨 부인 권금희씨는 임신 5개월 차다. 조인식에 참석한 권씨는 사측을 향해 "3월 21일이라는 말만 나오면 너무 슬프고 눈물이 납니다... 지금 이 자리도 남편에게 너무 미안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 어머니인 황월순씨는 "좀 일찍 해결됐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렇게 날짜가 지나도록 모른 척하다가… 지금 우리 애기는 태동을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권씨와 황씨는 눈물 속에서도 사측 협상단을 향해 거듭 "다시는 우리 남편·아들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중대재해법이라도 없었다면…"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유족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 분향소에서 합의문을 영정 앞에 바쳤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유족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 분향소에서 합의문을 영정 앞에 바쳤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이번 사건은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될지 여부를 두고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장에 있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그나마 중대재해법이라도 없었다면 이런 합의가 가능했겠나"라고 읊조렸다. 당초 철강업체가 모여있는 포항공단에서 중대재해법 적용 '1호' 사건이 될 수 있다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음에도 합의까지 88일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해당 사건은 아직 기소되지 않은 상태다. 유족들 법률대리인을 맡은 권영국 변호사는 통화에서 "사측이 안전보호 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의무 위반이 있다고 본다"라며 "수사당국의 의지만 있다면 중대재해법으로 기소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여당은 중대재해법과 관련 시행령을 개정해 산재 책임 기업주의 형사처벌을 완화시켜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시민사회에서 우려가 나온다. 이날 조인식에 참석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기업 책임을 면피하겠다는 의도로 힘들게 제정한 중대재해처벌법이 훼손되지 않도록 개악을 중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법의 가장 핵심 내용을 뒤흔들고 반쪽짜리 법안을 반의 반쪽으로 만들려 한다"고 반발했다.

단식 농성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앞장섰던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이날 조인식 현장에 참석해 유족들을 직접 위로하기도 했다.
            
88일만의 장례식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유족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사측과 합의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작업중 숨진 고 이동우씨 유족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사측과 합의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원청의 공식 사과로 유족 측이 농성을 풀면서 비로소 이씨의 장례를 지낼 수 있게 됐다. 이날 저녁 7시, 서울 동국제강 본사 앞 분향소에서 '고 이동우 노동자 시민사회장' 영결식이 치러진다. 장례식은 17일 포항에서 진행된다. 18일 발인 후 포항공장 앞에서 노제가 열린다.

다음은 유족 측이 이날 공개한 양측 합의문 주요 내용 전문을 기록한 것.
 
1. 동국제강과 창우이엠씨(하청업체)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고인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담아 유족에게 사과하되, 동국제강은 각자 대표이사인 장세욱과 김연극 대표이사 공동명의로 동국제강 홈페이지 1면에 1주일 동안 합의된 사과문을 게시한다.

2. 회사는 본 사고와 같은 중대산업재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유족에게 본 사고에 대한 자체 사고조사보고서와 ILS시스템 설치 및 운영 개요가 추가되는 재발방지대책안을 제공한다.

3. 본 사고와 관련해 회사(동국제강과 창우이엠씨)는 유족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보험급여를 제외하고, 민사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한다. 민사배상과 관련하여서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

4. 다만, 본 사고와 관련하여 회사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되어 형사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협의한다.

5. 본 합의서 체결 이후에는 쌍방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다.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