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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편집자말]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100일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기로 직접 사람을 공격하는 형태의 전쟁은 더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독재자 한 명이 세상을 얼마나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많은 나라가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쟁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다른 나라들의 관심도 처음보다는 시들해진 상태다. 나 또한 전쟁 자체에 대한 뉴스보다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 뉴스에 더 관심이 간다.

이 가족이 마주한 전쟁 
 
<전쟁 일기> 겉표지
 <전쟁 일기> 겉표지
ⓒ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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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이 <전쟁일기>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우크라이나 작가가 피난 생활을 하며 쓴 다큐멘터리 그림일기라고 했다. 나는 뉴스를 토대로 전쟁을 상상만 할 뿐, 진짜 전쟁 속 삶은 알지 못한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보니 이 책의 번역료 전액과 출판사 수익 일부는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고민 없이 책을 주문했다.

앞표지에 울고 있는 여인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 표지를 넘겼다. 저자는 그림일기 앞에 배치된 '작가의 말'에서 먼저 자기소개를 한다. 이름은 '올가 그레벤니크'이고 나이는 서른다섯이다. 자신은 엄마이자 아내, 딸, 화가 그리고 작가이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전쟁 전날 밤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과 늦은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오붓하게 대화를 했다고. 천 개의 계획들과 꿈이 있었고 그렇게 행복한 채로 잠이 들었다고.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 엄청난 폭격 소리에 잠에서 깼다고.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과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과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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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과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왜 적는 거야?
베라(4살 된 딸)가 물었다.
-우리, 지금 놀이를 하는 거야.
-무슨 놀이?
-'전쟁'이란 놀이." (p8)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무서운 사실이지만 그 생각으로 미리 적어두었다. (p96)
 
 

예전에 봤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영화에서 유대인인 아빠는 5살인 아들에게 수용소 생활을 놀이라고 말했다. 작가인 올가에게 그 영화는 현실이 되었다. 4살인 아이가 전쟁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 딸이 4살이었을 때 명작동화를 읽어주며 동화 안에 생각보다 많은 죽음이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났다. 아이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하물며 '전쟁'이라니.

올가는 전쟁이 일어난 날, 허겁지겁 짐을 챙기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p21). 어른들은 짐을 챙기고 아이는 아직 자고 있다. 그 그림 아래 '하느님, 우리를 지켜주소서'라는 텍스트가 얹혀 있다. 독자는 이 아이와 이 가족이 무사하기를 함께 기도하게 된다.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 방공호로 뛰어 내려가고 조용해지면 다시 집으로 올라오는 생활이 계속된다. 아이들은 폭격 소리를 듣고 9층인 집과 지하를 계단으로 오가며 전쟁이 놀이가 아님을 금세 깨닫는다.
 
아이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전쟁이 끝나면 핸드폰부터 살 거야?
베라: -넌 어떻게 생각해? 전쟁 중에도 내 생일은 있을까?
베라의 생일은 7월 19일이다.(p70)

올가가 이 일기를 쓴 날짜는 22년 3월 2일이다. 당시에는 베라의 생일이 아주 나중의 일처럼 느껴졌을텐데 지금 보니 베라의 생일은 다음 달이다. 베라의 생일 전에 전쟁이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전쟁은 약한 자들에게 더 잔혹하다. 지하실에는 임산부도 있다. 도시가 폭격당할 때 그들은 안간힘을 다해 걱정을 누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 방공호로 이동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는다.

약자는 고스란히 전쟁의 피해를 받는다. 올가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놓고 떠날 수 없는 엄마를 남겨두고 피난 길에 나선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택시 연락처를 알 수 있었고 전화를 걸어보니, 택시는 10분 뒤 도착 예정이라고 했다.
 
내 인생 35년을 모두 버리는 데 고작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를, 집을 두고서.
내 아이들을 위해. (p86)
 
다함께 'Love is' 껌 씹을 날이 어서 오길

딸이 세 살 때였던가. 아이를 재우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에 생겨버리다니.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이다.

'이 사랑스런 존재를 지키기 위해 난 뭐든지 하겠구나. 이 아이가 잘못된다면 나도 무너지겠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올가도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계엄령 때문에 남편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서쪽 도시 리보프(르비우)에서 남편과 이별을 한다. 엄마와의 이별 뒤에 바로 이어진 남편과의 이별.
 
세료자(남편)는 'Love is' 껌을 손에 쥐여주었고, 우리는 다음에 다시 만날 때 껌을 같이 까먹자고 서로에게 약속했다.
버스가 출발했다.
그리고 남편의 모습은 점점 더 작아졌다.(p106)

올가는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 구멍에 빨려들지 않기 위해 뚜껑으로 막아놓았다고. 남편 또한 마음속 구멍을 어떻게든 메꾸기 위해 적십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전쟁은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고 했다.

책을 다 읽고 앞표지를 다시 보니 울고 있는 여인의 눈이 텅 비어 보인다. 마음속 구멍이 보이는 것 같다. 여인은 먼 곳을 보고 있다. 어쩌면 러시아군이 망가뜨린 고향을 보는 건 아닐까. 헤어진 가족을 떠올리는 걸까. 최근 전쟁이 장기전이 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에 마음이 아프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책을 보고 나니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먼 나라의 모르는 사람끼리의 전쟁 같지만은 않다. 뉴스를 챙겨보게 되고 진심으로 종전을 바라게 된다.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속 구멍이 더 커지기 전에 전쟁이 끝나기를, 올가의 가족이 웃으며 'Love is' 껌을 질겅질겅 함께 씹게 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도한다.
 
이념과 이권이 죽이고 파괴할 때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 생명이 생명을 살린다. 지금 「전쟁일기」를 읽는 일이야말로 2022년의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다._황선우 (추천 글 中)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은이), 정소은 (옮긴이), 이야기장수(2022)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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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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