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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안도호 씨.
 포항 죽도시장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안도호 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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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오랜 시간 동양철학을 공부한 학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생 세상과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관찰해온 70대의 그는 "사람의 구두와 걸음걸이를 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구두의 앞부분이 먼저 닳고, 뻣뻣하고 거만한 이들은 구두 뒤축을 자주 갈 필요가 없다고 그랬다.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도 뛰듯이 바쁘게 걸어가는 남녀를 보면서는 시간과 돈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마음 상태를 감지한다"는 말도 들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설득력과 합리성을 갖춘 해석이다. 눈 밝은 이들에겐 개개인이 소유한 물건이나, 행위 자체가 '인간 해석'의 수단이 될 수도 있는 법.

시인들 중에도 '구두'를 시의 소재로 삼았던 이들이 적지 않다. 검거나 혹은, 누런 구두를 보며 소의 짧고 서러운 생을 떠올리는 이경우의 '구두를 신다가'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이런 노래다.

(전략)...신장에서 구두를 꺼낼 적마다
나도 모르게
어디든 떠나고 싶어지는 것은
혹여, 소의 필생의 염원이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닐까
가엾은 소의 영혼을 위하여
구두창이 다 해지도록
자유로워지고 싶은 시간
왕방울 같은 눈을 끔벅이며
순한 소 한 마리가
코뚜레가 박힌 얼굴을 내밀고 있다.


구두와 함께 울고 웃어온 50년 세월

포항 죽도시장 개풍약국 옆 노점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안도호(70)씨는 20대 초반부터 수제화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중반 무렵 저렴한 기성품 구두가 쏟아져 나오면서 수제화 시장이 위축되자 '구두 제작'에서 '구두 수선'으로 직업을 바꾼 안씨.

만들거나 수선하며 그가 구두와 함께 살아온 게 자그마치 반세기다. 강산이 5번은 변하는 시간. 그쯤이면 안도호씨도 앞서 인용한 철학자나 시인 정도의 깨달음을 '구두'를 통해 얻지 않았을까?

대장장이는 눈앞에서 타오르는 불의 빛깔만 보고도 온도를 가늠한다. 긴 세월 설렁탕을 끓여온 할머니는 도축된 소고기의 촉감만으로도 신선도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였다.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 이유는.

- 구두를 얼핏 보기만 해도 그게 비싼 구두인지, 싼 구두인지 알 수 있나? 그리고, 구두굽이 닳는 속도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도 짐작되는지.
"(나의 갈색 구두를 내려다보며) 100퍼센트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대충 가격까지도 알 수 있다. 비싼 구두는 세련된 디자인은 물론이고, 튼튼해서 오래 신는다. 가죽이나 밑창 등의 부속이 싸구려와는 다르다. 구두굽을 자주 갈아야 하는 사람은 느긋한 성격이 아닐 것이란 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지 않겠나.(웃음)"

- 구두와 인연을 맺은 건 언제부터인가.
"경상남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포항으로 이주했다. 구두 수선을 시작한 건 40년에 가깝다. 그전엔 조그만 공장을 여러 곳 옮겨 다니며 수제화를 만들었다. 수제화 시장이 몰락하면서 막노동을 하거나 뱃일을 하는 등 직업을 바꾼 동료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구두 만들고, 수선하는 게 천직이라 생각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죽도시장 입구에 자리를 잡고 구두, 가방, 우산을 고치는 일을 시작했다."
 
안도호 씨는 구두와 우산, 가방 등을 수선하며 반세기를 보냈다. '사라지면 아쉬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안씨.
 안도호 씨는 구두와 우산, 가방 등을 수선하며 반세기를 보냈다. "사라지면 아쉬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안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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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건 쉽게 버리는 세태에 구두 수선도 줄어

1950년대 한국전쟁을 전후한 절대적 가난의 시대는 아니었지만, 지금보단 모든 게 부족했고, 절약이 보편적이던 1980년대. 당시 구두굽을 가는 비용은 500원이었다.

죽도시장에선 점심을 때울 국수 한 그릇을 300원에 팔았다. 구두 한 켤레가 1만~2만원 안팎이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안씨의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어지간한 월급쟁이는 부럽지 않았으니까.

2022년 6월 현재 굽 수선을 하려면 남자 구두의 경우 1만5천원, 여자 구두는 1만3천원을 지불해야 한다. 구두굽 교체 비용이 30배 오른 것이다.

그럼에도 안도호씨의 경제적 형편은 1980년대만 못하다. 구두를 포함한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쉽게 사고, 고민 없이 버리는 세태 탓이다.

- 죽도시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많은 것들이 변했을 것 같다.
"맞다. 40년 가까이 한 곳에서 일하다보니 보지 않으려 해도 세상과 사람들이 보인다. 빗방울을 막아주는 아케이드가 생기고, 거리는 깔끔하게 포장됐다. 그런데, 그런 발전과 함께 사람들의 절약정신과 서로를 위해주는 애틋한 정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울 때도 있다."

- 그래도 즐거운 기억이나 경험도 있을 것 같은데.
"손님들이 내가 수선한 구두를 신고 이 앞을 지나다가 '잘 고쳐줘서 구두가 편하고 튼튼해졌다'고 말해주면 그날은 행복하다. 포항 KBS 최규열 아나운서도 그런 손님 중 하나였다."

- 거리에서 일하다보면 마음 상하는 일도 있을 듯하다.
"자랑할 만한 직업은 아니지만, 구두를 고치며 아이들 키우고 아내와 생활을 이어왔다. 다만, 오가며 술 취한 사람 등이 괜한 시비를 걸 때는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나. 먹고살려고 여기 나와 있으니 웃어 넘겨야지."

'사라지면 아쉬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안씨는 "구두를 잘 고치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저 오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작은 기술들이 하나둘씩 모여 좋은 구두 수선공을 만드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안도호씨는 구두는 물론, 가방과 우산을 고칠 때마다 매번 최선을 다한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수선을 위해 다시 다른 가게를 찾지 않도록 '야물딱지게' 고쳐주는 게 최고의 서비스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그만 몸피에 선량한 눈빛을 가진 안씨. 그래서였을까? 인사를 나누며 일흔 살이라는 나이를 이야기 들었을 때 잘 믿기기 않았다. 노인에게선 발견하기 힘든 소년 같은 순정함의 그림자를 느꼈기 때문.

그걸 신는 사람의 많은 것을 은유적으로 알려주는 구두. 평생 구두를 만들고, 고치며 살아온 안씨의 꿈을 뭘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점포도 없이 길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서비스와 기술 좋은 구두 수선집'으로 기억해주고, 만약 내가 일을 그만둔다면 '그 사람이 없으니 아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너무 거창한 꿈인가?(웃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실린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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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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