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 스틸컷

영화 <브로커> 스틸컷 ⓒ CJ ENM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영화다. 감독은 몇 해 전부터 외국 배우들과 협업했다. 까뜨린느 드뇌브, 에단 호크, 줄리엣 비노쉬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이후 이번에는 한국 스태프들과 협업했다.

일본 영화계의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현재 일본 영화계는 만화 실사 프로젝트에 주력하길 원한다. 마치 영화계의 갈라파고스처럼 되고 있다. 일본 감독이지만 세계적인 감독이지만 자꾸만 국외로 눈을 돌리는 게 이해 가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친한파 일본 감독이며 2009년 개봉한 <공기인형>으로 배두나와 인연을 맺었다. 감독 때문인지 제작사 때문인지 국내의 정상급 배우들이 아주 작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다. 그들을 찾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버려진 아기, 사라진 아기, 쫓는 아기
  
 영화 <브로커> 스틸컷

영화 <브로커> 스틸컷 ⓒ CJ ENM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밤. 부산 어느 교회의 베이비 박스 바닥에 아기(우성)를 두고 간 소영(이지은)은 다음 날 되찾으러 왔다가 이상한 말을 듣는다. 분명 놓고 간 아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경찰에 신고하려는 순간 나타난 동수(강동원)에게 속 사정을 듣게 된다.
 
사실은 베이비 박스 업체에서 일하는 동수가 한패인 상현(송강호)과 영아 입양 브로커를 하고 있었던 것. 빚에 쪼들리던 상현과 보육원 출신의 동수는 서로 잘 아는 사이면서도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환상의 콤비였다. 엄연한 범죄지만 그저 간절히 아기를 원하는 분들을 돕고 있다며 합리화는 사람들이다. 이걸 변명이라고 털어놓나 싶은 브로커의 말을 듣던 소영은 직접 우성의 양부모를 찾기 위한 여정에 합류하겠다 선언한다.
 
한편, 반년 동안 현행범으로 브로커를 잡으려던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는 함정수사를 벌여 결정적 순간에 덮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여정에 합류하면서 서서히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자신들이 형사인지 브로커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이 커진다. 수사를 하려는 건지 입양을 하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동화되는 마음, 삐걱거리는 관계
  
 영화 <브로커> 스틸컷

영화 <브로커> 스틸컷 ⓒ CJ ENM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이는 혼자서 키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누구 집에 수저가 몇 개씩 있는지 속속들이 알 정도였다. 우리 애, 옆집 애 할 것 없이 다 같이 밥 먹이고 놀며 마을이 한마음으로 키웠다.
 
영화는 그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 전반적인 주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3부작이 완성된 것만 같다. 친자식이 바뀐 걸 알게 된 아버지가 겪는 딜레마를 다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할머니의 연금으로 살아가던 조금 다른 가족의 초상 <어느 가족> 이후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유사 가족의 형태가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의 의미를 묻는 방식은 계속되었으며 <브로커>를 통해 해답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휴머니즘이 조금 다른 방식이라 의아하다. 아이를 버린 사람, 아이를 팔겠다는 사람, 이들을 쫓는 경찰마저도 이상하게 따스하다. 어느 쪽이든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작정하고 아기를 보호하려는 분위기다. 언어를 막론하고 인류애가 폭발한다. 생명 앞에서 한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의 변화를 따라가기가 점점 버거워지고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흘러간다. 좋은 주제를 이해받기 힘든 방식으로 다루려니 불협화음이 커진다.
 
여기서 <브로커>의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한다. 영화를 영화로 보자는 의견과 영화라도 범죄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영화는 실화라고 해도 이를 바탕으로 가공해 만든 일종의 판타지다. 혹은 어딘가에서 벌어졌을 것 같은 소재로 만든 허구의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를 영화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일종의 소격효과를 낸 감독의 의도였을까. 캐릭터들의 마음에 이입하기도 벅차 여행길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는 기분만 더해간다. 미혼모와 불법 입양 중개인. 불편한 진실은 범죄 고발보다 비현실적인 상황만 나열하는 구조라 의도마저 뜨뜻미지근한 채로 식어버린다.
 
뚝배기에 담긴 스시처럼...
  
 영화 <브로커> 스틸컷

영화 <브로커> 스틸컷 ⓒ CJ ENM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중 <브로커>는 이상한 포지션이다. 전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보여준 맞지 않는 옷처럼 어딘가 불편하고 삐걱거린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와 불어가 뒤섞여 있어서일까. 우아한 프랑스 접시에 담긴 일본 요리 같다. 스타 배우와 고급스러움이 풍기지만 어딘지 모호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브로커>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분명 한국 배우가 등장하고 한국이 배경이지만 매력이 부족하다. 일본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상징적 메시지까지도 불협화음이다. 언어가 달라도 전해지는 감성조차 작위적인 캐릭터와 상황에 묻히기만 할 뿐이다. 특유의 범죄지만 어딘가 따뜻하고 착한 감정을 좋아한다면 모르겠으나 그의 연출작 중에서 베스트는 아니라고 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의 영화를 좋아하고 응원하지만 <브로커>는 마치 한국적 뚝배기에 담겨 있는 스시처럼. 음식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브로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