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가수가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정태춘이라고 답하겠다. 일생토록 제 마음이 담긴 곡을 노래하며, 삶과 세상에 대한 생각이며 감상을 노랫말 속에 담박하게 담아낸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방송국의 외면과 정권의 탄압 가운데 전국을 돌며 제 무대를 스스로 만든 용감한 이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압제에 맞서 사전검열제도 폐지와 같은 제도변화를 이끌어낸 실천적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한류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 2022년 한국에서도 나는 그와 비견할 만한 음악가를 정말이지 단 한 명도 알지 못한다.

정태춘은 어느 모로 보나 기억할 가치가 충분한 가수임에도 세상은 그를 빨리 잊어간다. 그의 음악이 변화한 세상에 별로 호소력이 없기 때문일까, 그가 선 자리와 외치는 구호가 첨단의 끝을 달리는 오늘의 한국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서일까. 어쩌면 우리가 너무 게을러 그를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 포스터

▲ 아치의 노래, 정태춘 포스터 ⓒ (주)NEW

 
기억할 만한 가수, 정태춘의 이야기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한국에선 보기 드문 영화다. 어느 포크가수의 생애를 담박하게 추적한 다큐멘터리는 가수의 기존 팬이 아니고서야 특별한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더구나 기타 하나 들고서 제가 좇는 가치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며 이상향으로 꿈꾸는 세계며, 하다못해 삶의 어느 지점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포크음악은 한국에서 더는 설 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지 않던가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엔 특별함이 있다. 주인공인 가수 정태춘의 삶과 노래, 노랫말이 여전히 관객에게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골마을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고등학생이 병역을 마치고 처음 서울로 올라온 순간부터 그의 삶을 추적한다. 전설적인 데뷔곡 '시인의 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아내이자 음악의 동반자인 박은옥과의 만남, 1집의 대성공에도 2개의 음반이 연이어 실패하며 생활고에 시달린 이야기, 민주화 운동과 전교조 해직교사를 위한 연대,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음반 사전검열제도 반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등이 그가 걸어온 길이다.

정태춘의 특별함 중 하나는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점이다. 이야기꾼이라는 건 삶과 세상에 들려주고픈 무엇이 있다는 뜻이고, 그는 제가 가진 음악이란 재능에 더해 그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영화는 이 같은 그의 자질을 한 장면으로 포착해내는 재주를 보인다. 그 장면은 막 군복무를 마친 정태춘이 맨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 겪은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컷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컷 ⓒ (주)NEW

 
이야기, 노래, 저항,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오늘의 정태춘이 당시 자신을 회상하며 말한다. 처음 서울의 버스터미널에 내렸을 때 뭐가 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고, 배가 고파서 터미널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았는데 온통 알지 못하는 음식이름들로 눈이 어지러웠다고 말이다. 이십대 초반의 그는 메밀국수를 주문했는데 잠시 뒤 네모난 판에 올라간 면과 국물이 담긴 작은 그릇 하나가 나왔다고 했다.

메밀소바라고 불리는 일본식 메밀국수인 것인데, 그는 그것을 먹는 방법을 몰라 당황한 나머지 국물을 면 위에 그대로 부어버렸다고 했다. 당연히 국물이 그릇에 넘쳐 테이블 위를 흥건히 적혔고 촌놈 행색의 청년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이 일화의 뒤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내 서울 생활이라는 게 꼭 그랬죠."

서울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던 시골 출신 젊은이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 식당에서의 일화를 먼저 꺼내는 사람, 그것이 정태춘이다. 그는 이처럼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그 재능을 제 음악 속에 그대로 드러낸다.

토속적 정서를 지닌 타고난 이야기꾼이 제 음악적 재능으로 세상과 부딪치는 이야기가 영화를 가로지른다. 그 사이사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는다면 미디어를 통해 접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그의 명곡들이 하나둘 흘러나온다. '시인의 마을'에서 시작해 '1992년 장마, 종로에서'를 거쳐 '정동진3'이며 '들 가운데서'에 이르는 음악들이다. 극장에서 나와 이 노래들을 다시 듣고 있자면 정태춘의 음악이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온당한 마음이 조용히 고개를 쳐드는 것만 같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컷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컷 ⓒ (주)NEW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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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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