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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다닌 회사를 나오기 전, 회사 밖 생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와보니 그렇게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저의 시행착오가 회사 밖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편집자말]
"나는 사업할 체질은 아니야."

친구가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나도 사업할 체질은 아니었는데.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보니 핸드폰으로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다. 최근 사무실 수리할 제품을 주문 중이었다. 그는 남을 시키기보다 본인이 직접 고치기를 좋아한다. '남편도 사업할 체질은 아니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사업할 체질은 따로 있을까?

사업은 인맥이라는 말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다.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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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할 체질을 백과사전 같은 데서 정의한 것은 없지만, 보통 사업을 잘 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진취적이며, 목표지향적이며, 사람들과도 자주 교류하는 것이다. 흔히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다.

인맥은 성공 요건 중 하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운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은 사람이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거래처를 연결해주기도 하고, 입소문을 내주기도 한다. 결국 사업이란 무언가를 파는 행위이고, 그 행위의 주체는 사람이다.

내가 알면서도 잘 안 되고, 힘든 것 중 하나가 이 인맥이다. 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넓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유형으로 따지자면 I형에 가깝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여러 사람보다는 소수의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한다.

어쩌다 모임에 나가거나 회사에서 회식을 하면, 구석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앉아 있다가 오는 사람이 나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이야기하는 유형도 있었지만,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같은 자리를 내내 지키는 유형이 나였다.

게다가 난 인맥관리에 허술한 편이다. 중요한 인맥은 주기적으로 안부 연락을 해야 한다던데, 누가 중요하고, 누가 중요하지 않은지 분간도 잘 안 되고, 주기적인 안부연락도 몹시 힘들다. 친한 사람과도 안부전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예를 들면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요? 잘 지내죠"라는 말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전화를 하면 "실은..."으로 시작하는 어떤 용건을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온다. 그러다보니 용건이 있지 않은 한 친한 사람에게도 안부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봐야 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인들은 "네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나도 어떤 사람들 앞에서는 쉴새없이 떠들 수 있다. 글쓰기라든지, 책이라든지, 같이 하는 일에 관해서라면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다. 나는 용건이 있어야 말을 잘하는 사람인 거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 물건 좀 사달라고, 우리 물건 납품할 수 있도록 거래 좀 연결해달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어쩐 일인지 그런 면에서는 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유형이라 모든 걸 혼자 처리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사업할 체질은 아니야'라는 말은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사업할 체질'이라는 단어는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있다가 매출이 떨어지거나 사업적 이슈가 생기면 불쑥 떠오른다.

'역시 난 사업할 체질이 아닌가?'

남편의 경우,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것을 꺼리진 않지만, 그 역시 여러 사람보다는 소수의 사람들과 깊게 어울린다. 그는 혼자서 뚝딱뚝딱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고, 기술적으로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둘 다 인맥관리에서는 꽝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사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이유는 달라진 시대적 환경 때문이다.

요즘 사업에 필요한 자질
 
인터넷이 세상에 보급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혁명 중 하나는 인터넷 쇼핑 아닐까
 인터넷이 세상에 보급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혁명 중 하나는 인터넷 쇼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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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세상에 보급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혁명 중 하나는 인터넷 쇼핑 아닐까. 굳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내 제품을 홍보하고 팔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돈을 좀 들이면 온라인 광고도 할 수 있다.

예전엔 '광고' 하면 TV와 라디오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매체가 다양해졌다. 키워드 광고에서부터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통한 SNS 광고, 협찬 광고 등 소액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광고 루트가 많다.

게다가 데이터를 분석해서 광고보고서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광고를 클릭했는지, 몇 명이나 광고를 보고 물건을 샀는지 등. 내가 하는 일은 데이터를 보고 분석해서 다음 달 광고집행 예산을 책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판로도 다양해졌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서 판매할 수도 있고, 건축박람회같은 오프라인 전시회를 이용할 수도 있다. 남편과 가끔 이야기 한다. 만약 과거에 우리가 사업을 했다면 지금처럼 홍보와 영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에게 안부전화는 어렵지만, 일상 글을 매일 SNS에 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록하고 싶은 병이 있었는지 아름다운 것, 재미있는 것, 유용한 것을 보면 어디엔가 기록하고 싶어졌다. 기록은 싸이월드를 시작으로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가리지 않았다. 덕분에 소통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 오프라인 인연보다 온라인 인연이 더 많아지고 있다.

물론, 온라인 인연이 많다고 해서 그들이 직접적으로 물건을 사주는 것은 아니다. 간혹 요리나 여행, 상품 리뷰를 하는 블로거들은 그런 정보를 선호하는 팔로워들을 모아 처음부터 판매가 잘 이루어지도록 창업을 시작하기도 한다(대부분 이런 비즈니스를 꿈꾸며 블로그를 시작한다).

나의 경우는 애초에 워킹맘의 고충과 육아 일상 글을 올리던 SNS라 지금 파는 상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종종 응원해주고 홍보를 해준다. 남편 백수 시절부터, 내가 생계를 오랫동안 이끌어오던 시간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지금의 성과가 쉽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하여 기술적인 설명을 잘하는 편이다. 문제는 그런 브리핑을 할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다는 것. 건설 쪽 인맥이 없으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멍석이 깔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엔 쇼핑라이브가 있다.

중요한 건 유니크한 아이템

멍석은 스스로 깔면 된다. 보통 쇼호스트를 섭외하고 화려한 조명과 배경이 있는 쇼핑라이브에 반해 우리의 쇼핑라이브는 조촐하다. 남편 혼자 나서서 설명하고, 직원은 카메라 담당, 나는 홍보와 채팅담당이다. 이 삼박자가 골고루 맞추어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한다. 팔려는 목적보다는 쇼핑몰 상세페이지에서 다 담을 수 없었던 제품 개발 스토리와 제품 기능을 설명하려는 목적이다.

신기한 건 쇼핑라이브를 꾸준히 하니, 쇼핑라이브를 기다리는 고객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쇼핑라이브를 하면서 판매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른 쇼호스트들처럼 화려하게 말솜씨와 판매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기술적인 장점을 최대한 내세울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누구나 쉽게 쇼핑몰을 운영하지만, 누구나 쉽게 자리를 잡는 것은 아니다.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경쟁업체가 수시로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쉽사리 긴장의 끈을 놓을 수도 없다. 인터넷 세상이 나에게 유리하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유리한 시장이니까. 만약 외향인이라면 이런 환경에 좀 더 쉽게 사업 입지를 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내향인도 사업하기 좋은 시대가 아닐까 싶다.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제공되고, 혼자 집에서 쓴 글이 알아서 알고리즘을 타고 가서 필요한 사람에게 닿기도 한다. 의외의 곳에서 홍보가 되어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게다가 내향인의 특성상 많이 말하기보다는 듣는 것을 더 즐겨하다보니, 주의깊게 관찰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이 생기도 한다. 

어쩌면 사업하는데 필요한 자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다른 유니크함을 찾고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 그것이 체질보다 더 필요한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립니다.


태그:#슬기로운창업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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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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