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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배재대학교 '그림패 들소'가 2002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학교 교내에서 그림과 인형을 통해 효순-미선 양의 추모전시회의 모습이다.
 대전광역시 배재대학교 "그림패 들소"가 2002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학교 교내에서 그림과 인형을 통해 효순-미선 양의 추모전시회의 모습이다.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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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하면, 한일월드컵이 떠오른다. 당시 중앙 서울에서는 국민 축제였던 한일 월드컵 4강의 신화의 화려한 장막 뒤에는 경기도 양주군 한 시골 지역에서 미군 장갑차에 압사한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미군들에 의한 노근리 및 매향리 사건은 물론 성폭력에 의한 죽음이나 폭력, 번호판 없는 교통사고, 한강 독극물 투여 등 크고 작은 미군 범죄가 일어났지만, 효순-미선양의 죽음은 미군에 의한 대형범죄였기에 심각성이 더했다. 2002년 6월 13일 사고 당일 속보로 약간 보도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존 주류언론인 종이 신문과 방송은 월드컵 열기에만 치중한 나머지 보도가 전무 하다시피 했다.

당시 PC통신시대에서 인터넷언론시대로 바뀌었고, 이로 인해 인터넷신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보수언론 조중동은 물론 대부분의 종이신문이나 방송이 보도하지 않았던 영역을 인터넷언론이 담당했다. 특히 인터넷언론에 의한 대표적 사건 보도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효순-미선양의 보도였다. 만약 당시 인터넷언론이 없었다면 대학로나 광화문 촛불집회로 이어졌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물론 미군 장갑차 압사 사고가 인터넷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사건의 심각성을 안 공중파 MBC <PD수첩>에서 집중 조명했다.

효순-미선양의 사건을 계기로 당시 120여개 인터넷신문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했고, 인터넷언론들이 힘을 합쳐, 2002년 9월 28일 태동한 협회가 바로 한국인터넷기자협회이다. 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효순-미선양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불평등한 한미SOFA(한미지위협정) 개정 등을 요구했고, 관련 촛불집회를 적극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시 <오마이뉴스> <시민의 신문> <대자보>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성남일보> 등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원사들이 적극 나서 두 여중생 추모와 미군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몰두했다.

특히 미군 참사사건을 처음부터 끈질기게 추적해 국민여론 형성에 기여한 <민중의 소리>는 2002년 12월 3일 한국언론노조가 제정한 올해의 민주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언론이 민주언론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와 관련해 20년 전인 2002년 12월 4일 <오마이뉴스>에 '그림으로 보는 효순이와 미선이의 이리랑'이란 기사를 게재했는데 일부를 소개할까 한다.

"불평등한 한미지위협정(SOFA)이 주권국인 우리나라를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여중생 압사사건으로 폭발한 국민 여론은 이제 적극적 소파개정에 집중시켜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주권을 되찾는 길이다."

아마 효순–미선양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국인터넷기자협회도 탄생이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도 '효순-미선 20주기'에 맞춰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13분, 경기도 양주군에서 15살의 여중생 2학년인 신효선-심미순양이 미군 장갑차 깔린 사망 관련 속보가 있기 다음 날인, 월드컵 16강을 결정 짓는 한국과 포르투칼 경기가 있었다. 물론 포르투칼에 승리해 16강에 올랐지만 억울하게 죽은 두 여중생 사고에 대한 언론보도가 묻힌 측면이 있었다.

당시 미군은 한미SOFA 협정을 들어 훈련상 교통사고에 대해 자국이 재판권을 가진다는 논리로 미군기지 재판정에서 재판을 진행했고, 그해 11월 20일 가해자인 마크 워커 하사와 페르난도 니노 하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후, 출국 조치했다.

이에 11월 30일부터 미군 범죄에 분노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혜화동 대학로에 나와 연일 촛불을 들었고, 이후 12월 4일부터 서울 시청 앞으로 자리를 옮겨 두 여중생을 추모하면서 미군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바로 이 사건은 우리나라 촛불집회 양식의 효시가 됐다.

지난 11일 오후 4시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효순-미선 20주기 촛불정신계승 평화대회'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저와 촛불시민들이 20년 전에도 주장했던 효순-미선양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불평등한 한미SOFA 개정 등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정부도 마찬가지였지만, 현재 윤석열 정부도 한미동맹을 말한다. 동맹이라면 상식적으로 한국과 미국이 동등한 입장에서의 맹세 격인데, 하지만 불평등한 동맹의 불평등한 조약이 한미SOFA협정이다. 동등한 조건으로 SOFA협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효순-미선양 사건이 다시 일어나도 똑같이 진행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평등한 한미SOFA 조약 개정은 지금도 필연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현 정부가 한미동맹의 주체로서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고 본다.
 
지난 6월 11일 오후 4시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효순-미선 20주기 촛불정신계승 평화대회' 모습이다.
▲ 효순-미선 20주기 평화대회 지난 6월 11일 오후 4시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효순-미선 20주기 촛불정신계승 평화대회" 모습이다.
ⓒ 전국민중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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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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