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이거 도대체 뭐라고 쓴 거니?"

과제 검사를 하거나 시험지를 채점하다 보면 아이를 불러 물을 때가 있다. 한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날려 쓴 글씨에 한숨이 나온다. 아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글자만 한참 바라보고 있다. 자기가 쓴 글씨를 본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본인 글씨를 못 알아 보는 아이들
 
바른 글씨 습관을 위해 동시를 필사 하고, 글씨체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바른 글씨 습관을 위해 동시를 필사 하고, 글씨체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 진혜련

관련사진보기

 
요즘은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많이 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손으로 연필을 쥐고 글씨를 써보는 경험량이 적다. 자판으로 치거나 사진으로 찍으면 된다고 생각해 굳이 손으로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바른 글씨 습관은 학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글씨는 단순히 보기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 학습 태도 및 학습의 효율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글씨를 정성 들여 또박또박 쓰는 아이들은 대개 학습 태도도 차분하고 집중력도 좋다. 바른 글씨는 노트 필기 및 학습 정리가 잘 되는 것으로 이어져 학습 능률 또한 올라간다. 반면 글씨를 성의 없이 막 쓰는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본인이 가진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 문제 풀 때 자기가 쓴 숫자를 잘못 봐서 계산에 오류가 생기는 일, 답을 알고 있어도 글씨 때문에 평가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해 감점이나 오답 처리가 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서술형, 논술형 평가가 점점 확대되는 추세에 엉망인 글씨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나는 학습의 첫 번째 단추 역할을 하는 아이들의 글씨를 바로잡고 싶었다. 글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한 습관으로 굳어져 나중에는 고치기 더 힘들 것이다. 평소 아이들에게 "글씨는 너의 또 다른 얼굴이야. 예쁘게 쓰자"라고 누누이 말해 왔지만 아이들의 글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보다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약 2주 동안 국어와 창체 시간을 활용해 바른 글씨 쓰기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해 보았다. 사실 성격만큼 고치기 힘든 것이 글씨이기도 한데 과연 아이들의 글씨가 달라질 수 있을까? 의심하기도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이들의 글씨는 꽤 많이 바뀌었다. 특히 내가 놀랐던 건 그동안 내 잔소리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변함없이 '악필'이었던 두 아이의 글씨가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떨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변화가 있다는 자체가 무척 희망적이라고 본다. 글씨가 바뀌니 아이가 달리 보인다. 아이들의 바른 글씨 습관을 위해 우리반에서 했던 교육활동은 다음과 같다.

2주간 필사, 이렇게나 예쁘다니

첫째, 매일 동시를 필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씨 교정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필사다. 그런데 필사를 따분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 필사를 즐겁게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필사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동시 필사를 추천하고 싶다. 지난 어린이날 반 아이들에게 나태주 시인의 동시집을 선물했는데 아이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꺼내 읽을 만큼 그 책을 마음에 들어 했다. 쉽게 잘 읽히고,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를 아이들은 좋아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오래 근무하셨던 시인은 누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신 듯하다.

시 필사가 좋은 건 천천히 따라 쓰면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상하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놀이이자 휴식이 되어주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은 BTS 노래 가사에 감동 받는 것처럼 시에서도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시집을 필사할 때는 처음부터 차례대로 쓰게 하지 않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적도록 했다. 공책은 글자의 모양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칸 공책을 사용했고, 너무 많이 쓰면 지치게 되니 200자 이내가 적당했다.

둘째, 자신이 쓴 글씨가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경험을 하였다. 우리반은 날마다 함께 책을 읽고 '오늘의 책문장'을 쓰는데 평소에는 그것을 흰색 A4용지에 출력한 배움노트에 적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색감이 예쁜 머메이드지에 써서 책갈피로 만들어 보았다.
 
아이들의 글씨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아이들의 글씨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 진혜련

관련사진보기

 
아름다운 문장을 적은 손글씨 책갈피는 친구에게 선물도 하고, 색색깔의 미니 이젤에 보기 좋게 전시도 했다. 전시는 우리반 교실에만 하지 않고 많은 아이가 볼 수 있도록 학교 중앙현관 및 복도에도 했다. 아이들은 자기 글씨가 공개적인 장소에 자랑스럽게 전시되자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 앞을 오래 서성였다.

셋째, 정성껏 쓴 서로의 글씨를 칭찬하고 글씨체에 이름을 지어보았다. 나는 아이들이 글씨를 잘 쓰려면 무엇보다 글씨 자체에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글씨체와 이름을 소개한 후 그것처럼 우리들의 글씨에도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다. 아이들은 조별로 모여 앉아 친구의 글씨를 자세히 바라보고 칭찬하면서 글씨체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었다.

저녁노을체, 동동오리체, 바닷결체, 나뭇가지체, 뭉실구름체, 노란풍선체.. 이름들은 하나같이 그 아이 글씨만이 가진 개성과 장점을 잘 드러내 글씨를 더 돋보이게 했다. 이처럼 자기 글씨체에 고유한 이름이 생기면 글씨를 더 사랑하고 가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의 글씨가 변한 건 아마도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앞으로 동시 필사와 아이들의 글씨가 작품이 되는 활동을 꾸준히 할 생각이다. 글씨가 나아지자 아이들의 태도도 한결 차분해지고 정돈된 것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필사한 시를 가만히 읽어본다.

"네가 예뻐서/지구가 예쁘다//네가 예뻐서/세상이 다 예쁘다."

어떤 글씨보다 아이들이 손글씨로 쓴 시가 마음에 와닿는 건 왜일까? 지구와 세상까지 예쁘게 만드는 아이들이다. 글씨도 자기들처럼 예쁘게 썼으면 좋겠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읽고 쓰고 나누며, 책이 삶이 되는 순간을 만들어갑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