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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촉법소년'의 연령 하향을 추진하라 지시했다. 한동훈 장관은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취재진에게 "촉법소년 연령 조정은 국민적으로 많은 관심이 있다"며 "흉포화되는 소년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라 밝혔다.

'촉법소년'은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을 지칭하는 단어로 법률적으론 형사미성년자라 부르는 것이 맞다. 현재 해당 나이에 해당하는 소년들은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법무부 소속의 비행청소년 전문교육기관(소년원) 입학 등 보호처분을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청년 공약으로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4세에서 12세로 낮추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은 국제연합(UN) 아동권리협약에 위배된다. 한국은 UN 아동권리협약을 1991년에 비준했다. 이에 따라 UN 아동권리협약은 헌법 제6조에 의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UN 아동권리위원회 "형사책임 최저연령 14세 이상으로 높일 것"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19년, '아동사법제도에서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24호'에서 현재 법무부가 추진하는 것과 같은 형사책임 최저연령의 하향에 우려를 표했다.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19년, "아동사법제도에서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24호"에서 현재 법무부가 추진하는 것과 같은 형사책임 최저연령의 하향에 우려를 표했다.
ⓒ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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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UN 아동권리위원회(아래 UN 아동위)는 '아동사법제도에서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24호'를 발표했다. 일반논평은 UN 아동위의 아동권리협약 내용에 관한 해석으로 협약 당사국들은 이를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

UN 아동위는 해당 논평의 목적 중 하나로 "적절한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설정하고 최저연령 전후 아동들의 적절한 처우를 보장한다"를 꼽았다. UN 아동위는 "50개가 넘는 당사국들이 협약을 비준한 후에 최저연령을 상향 조정하였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사책임 최저연령은 14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용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2017년 논문인 '소년 위법행위자의 연령에 관한 몇 가지 소고'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형사책임 최저연령은 한국과 같이 14세 미만인 국가가 40개국으로 가장 많았고 12세 미만은 17개국, 16세 미만은 14개국이다.

UN 아동위는 해당 논평에서 "아동 발달 및 신경과학 분야의 증거 자료에 의하면, 12~13세의 아동은 전두엽 피질이 아직 발달 중"이라며 아동권리협약 당사국에게 "최근의 과학 연구 결과에 주목하고 이에 따라 자국의 최저연령을 14세 이상으로 높일 것"을 권고했다. 또한 형사책임 최저연령이 15~16세인 당사국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하향 조정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특히 UN 아동위는 현재 법무부가 추진하는 것과 같은 형사책임 최저연령의 하향에 우려를 표했다. UN 아동위는 해당 논평에서 "아동이 심각한 범행의 피의자인 경우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더 낮게 정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는 관행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그러한 관행은 일반적으로 대중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경우가 많으며 아동의 발달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 대체로 연령 하향에 반대 입장
  
순서대로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수희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김혁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의 형사미성년자 연령하향에 대한 반대 의견.
 순서대로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수희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김혁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의 형사미성년자 연령하향에 대한 반대 의견.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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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2년, 국회입법조사처의 정책연구 용역보고서에서 형사미성년자의 연령 하향에 대해 "형법의 형사미성년 연령의 저하가 가져올 효과는 플러스적 요인보다는 마이너스적 요인이 더 많다"며 "형벌이라는 수단보다는 보호처분의 수단이 소년법의 이념을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형사정책적으로 보다 효과적인 것"이라 밝혔다.

박수희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2018년 '형사미성년자 연령의 하향 개정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에 대해 "현행 소년사법제도의 보호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형사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엄벌주의로 전환하였다가 소년의 보호 및 개선과 범죄예방이라는 효과를 달성하는 데에 실패한 미국과 일본의 경험을 교훈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논문에 따르면 1990년대 미국에서 소년범죄자를 성인과 동일하게 형사이송하자 형사이송된 소년범죄자의 재범율이 증가하고 차후 재범까지 걸리는 시간도 매우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형사이송에 따라 처리된 소년범죄자의 자살율도 소년법에 따른 소년범죄자에 비하여 8배, 수감자에게 구타당하는 경우도 2배가량 높은 결과도 나왔다.

김혁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도 2018년 발표한 '형사책임연령과 소년법 개정 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하향 조정할 필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현행 연령체계 하에서도 소년법에 따른 형사제재가 가능하므로 형사미성년자의 촉법행위에 대한 형법 및 소년법의 사회보호기능 역시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UN도 국내 전문가들도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에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2018년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대통령을 시작으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잇따라 형사미성년자의 연령 하향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만 처벌 강화가 해법은 아니라며 연령 하향에 반대했다.

이처럼 소년범 문제에 대해 정치권 전반이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의 입장과 상반된 '처벌 강화'라는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전문가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하겠다"고 약속한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원칙과 약속을 지켜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을 철회하길 바란다.

태그:#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 #법무부, #한동훈, #UN 아동권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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