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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 문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지하 시인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반대" 문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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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 별명이 '징게 멍게 들'이다. 징게 멍게는 김제ㆍ만경의 그쪽 사투리, 두 눈 사이가 한참 멀고 펑퍼짐, 콧대까지 푹 꺼진 게 영락없이 둔덕 하나 없는 김제ㆍ만경 그 넓으나 넓은 들판 같다는 놀림이었다. 요컨대 못났다는 얘긴대, 하긴 돌 사진을 보면 똑 찐빵 같은 게 참 못났다. 또 '산신령'이란 별명도 붙어 있었다." (주석 7)

그의 이름 김영일(金英一)은 본래 영화 영(榮) 자 항렬인데 누군가 그 글자가 안좋다 하여 소리만 같은 꽃부리영(英) 자로 호적에 올렸다 한다. 그 시절에는 종종 있었던 일이다.

외가는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이었다. 호방했던 외할아버지가 해남에서 목포로 나와 정년이 될 때까지 조선운수주식회사의 지점장 대리를 맡았다.

생활은 항상 유족한 편이었고, 나 다니던 산정초등학교 옆, 비록 초가이긴 했으나 규모가 있고 쾌적한 아주 큰 그 집, 앞뒤 뜰에 가득 장미꽃이 만발하여 '장미집'이라고도 불렀던 그 집은 목포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였던 연동 시커먼 뻘바탕 한복판에 우뚝 선, 마치 외따로 떨어진 꽃피는 섬 같았다.

외가 식구들은 뻘짱뚱이 같이 꺼뭇꺼뭇한 나의 친가나 동네 상놈들과는 단연 구별되는 도도하고 콧대 높은 하이얀 귀족이었다. 그리고 내 의식은 검은 뻘밭과 흰 꽃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중심을 뻘밭에 두려 하면서도 섬으로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며 두 다리를 걸친 채 엉거주춤 바둥거리는 괴상한 딸깍발이 꼴이었다. (주석 8)

김지하는 어릴적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손자를 불러 앉혀놓고 말하였다. 

"너는 앞으로 글을 쓸 아이다. 이 말을 잊지 마라. 사람이 글을 쓰려거든 똑 요렇게 써야 한다. 한 놈이 백두산에서 방귀를 냅다 뀌면 또 한 놈이 한라산에서 '어이 쿠려' 코를 틀어막고, 영광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펄쩍 뛰어 강릉 경포대 앞바다에 쾅 떨어진다. 요렇게!"

양반이라기보다 차라리 동학당 하시던 증조부의 그 호방한 세계에 가깝다. 어렸지만 나는 그때 왠지 놀라서 눈을 크게 뜬 것 같다. 물론 당신 자신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씀이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이 말씀을 잊지 않고 내 문학의 중요한 규범으로 깊이 간직하고 있다. (주석 9)

김지하 특유의 삐딱하고 반항적 성정은 친가와 외가의 대물림 그리고 피압박 시대와 지역성 등이 복합되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가 9세 때 6.25 전쟁이 터지고, 아버지가 예비검속되어 목포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이른바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예비검속이었다. 대부분 총살되거나 무거운 돌을 달아 바다에 수장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용케 살아남았다.

목포에서 제일가는 전기ㆍ기계기술자여서 경찰도 그의 기능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렇듯 학살을 면한 아버지에 대해 김지하는 뒷날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지는 이미 월출산을 하산할 때 그리고 그 뒤의 심정을 훗날 다음과 같이 내게 실토하셨다.

"그것(공산주의)은 틀렸어!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밖엔 없어. 아직까지는 그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공산주의)은 틀렸어!" (주석 10)

그 시절 공산주의자 남편을 두었고 뒷날 '삐딱한 저항의 아들'의 옥바라지를 맡았던 어머니 정금성은 한 많은 여인이었다.

너무나 많은 고통이 어머니의 인생을 일그러뜨렸고, 배우지 못했고 괄시받는 여자의 숙명이 다름 아닌 어머니의 한이었다. 그 위에 아버지로 인한 한, 아들로 인한 한이 겹쳐 결국은 참으로 한 많은 노인네가 되고 말았다. (주석 11)

김지하가 문학인생의 길을 걷게 된 배경에는 어릴적 외할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난다. 한 겨울밤 돋보기 쓰고 손에 침 발라넘기며 가락 붙여 읽으시던 장화홍련전ㆍ유충렬전ㆍ조웅전ㆍ소대정전ㆍ구운몽ㆍ옥루몽ㆍ홍루몽에 숙영낭자전, 갈 데 없는 중인이다. 
  
외할머니 그 유식했던 옛날 이야기에도 내 문학의 뿌리가 있는 것이다. 허나 모두가 영웅ㆍ재사ㆍ미녀ㆍ열녀요, 충신ㆍ간신ㆍ악처ㆍ악당ㆍ흉계ㆍ복수ㆍ입신출세며 고관대작에 도사며 신선이라 난 별로 재미가 없었다. (주석 12)


주석
7> 앞의 책, 61쪽.
8> 앞의 책, 46~47쪽.
9> 앞의 책, 47쪽.
10> 앞의 책, 56쪽.
11> 앞의 책, 57쪽.
12> 앞의 책, 5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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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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