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로 유도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가 은퇴 14년만에 현역 복귀와 국가대표 재도전을 선언했다. 6월 11일 방송된 MBN <국대는 국대다>에서는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42세 유도 레전드 이원희의 감동적인 복귀전이 펼쳐졌다.

이원희는 현역 국가대표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60일간의 지옥훈련에 돌입하며 몸상태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경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이원희의 대결상대였던 이은결이 국가대표 훈련 중 부상을 입어서 경기가 불가능하게 된 것.
 
 MBN <국대는 국대다> 한 장면.

MBN <국대는 국대다> 한 장면. ⓒ MBN

 
73kg급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인 김대현이 이원희의 상대로 새롭게 섭외됐다. 이은결보다도 어린 김대현과 이원희의 나이차는 무려 22살이었다. 이은결을 대비한 맞춤형 훈련을 진행해 온 이원희도 대결 일주일을 앞두고 상대가 바뀌면서 원점에서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하는 변수에 직면하게 됐다. 이원희는 "그냥 나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 최선을 다하여 결과로 보여줄 것"이라며 선전을 다짐했다.   

승부의 날이 밝았다. 이원희는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함께했던 권성세 감독과 18년 만에 다시 감독과 선수로 재회했다. 권 감독은 제자의 복귀전 소식을 듣고 "누구든지 이원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이원희가 하려고 한 순간 준비돼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라며 애제자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대기실을 찾아온 MC 전현무는 "한판승의 사나이인데 경기가 너무 빨리 끝날까 걱정"이라고 농담섞인 응원을 건넸다. 이원희는 "체력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저는 한판으로 빨리 이겨야 승산이 있다"라고 답했다. 

만일 경기에서 진다면 국가대표 도전을 포기하겠냐는 질문에, 이원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다. 이기면 자신감있게 준비할 것이고, 진다면 그만큼 더 혹독하게 대비할 것"이라는 선언으로 현역 복귀 결심이 변함이 없음을 강조했다. 다만 경기의 승률에 대해서는 "50%"라고 신중하게 예측하며 "유도는 아차하는 사이에 끝날 수 있는, 변수가 많은 종목"임을 설명했다. 

이원희-김대현의 가족 및 지인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영상편지로 두 사람의 명승부를 응원했다. 김대현의 스승인 정후 코치는 이원희가 자신의 롤모델이었음을 밝히며 자신의 제자가 유도 우상과 맞대결하게 된 상황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대현은 "이길 수 있다"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이원희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공손해지는 모습을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현장에 함께한 이원희의 부친은 "담담하다. 재미있게 즐기려고 왔다. (이원희가) 진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여기 나올 때는 자신있으니까 나왔겠지'라고 생각했다"라며 아들에 대한 믿음을 전했다. 

해설위원 조준호는 이날 승부의 관건을 이원희의 체력으로 꼽았다. 조준호는 "이원희가 전성기 시절에 보였던 기술의 예리함을 얼마나 회복했을지가 궁금하다. 김대현은 한국 유도의 현재다. 두 선수 모두 2024년 파리올림픽 국가대표를 노리고 있는 만큼 이날 경기가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최근 한국 유도가 많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현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승부사 본능 발휘한 이원희
 
대결이 시작됐다. 경기 당 한판당 4분씩, 3라운드 3전 2선승제로 진행되며 한판이 나올 경우 경기는 종료된다. 이원희는 "항상 이기는 방법을 고민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도, 나만의 유도, 멋지고 깨끗하게 한판승으로 이기는 유도를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대현은 "아침에 일어나면서 이원희 교수님을 무조건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가장 자신있는 안뒤축후리기 기술을 보여드리겠다"라며 패기를 드러냈다.
 
이원희가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섰다. 이원희가 전매특허인 빗당겨치기를 시도했으나 김대현이 이원희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리며 수비했다. 김대현이 어깨로메치기를 시도하자 이원희가 누르기로 방어해냈다. 두 선수는 치열한 잡기싸움을 펼쳤다. 조준호는 이원희가 전매특허인 빗당겨치기를 실패하고 순간잡기에서도 고전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안타까워했다. 
 
김대현이 위장기술(회피를 위하여 공격하는 척하는 행위)로 지도를 받았다. 김대현의 업어치기를 방어한 이원희가 빠르게 밭다리후리기로 역습을 시도했으나  바닥에 닿은 등의 면적이 작아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서서히 몸이 풀린 이원희는 다채로운 기술로 김대현을 위협하며 주도권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원희가 좀처럼 무게중심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김대현은 공격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대현은 이원희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이원희를 배대뒤치기 기술을 간신히 회피했지만 김대현은 두 번째 지도를 받았다. 지도 1개를 더 받으면 이원희의 승리가 될 수 있었지만 아쉽게 시간이 종료되며 1라운드는 무승부로 끝났다.
 
이원희가 경험을 바탕으로 잡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다양한 기술을 시도했다면, 김대현 여러 번의 빠른 공격으로 이원희의 체력을 소진시켰다. 첫 라운드만에 지친 기색이 완연한 이원희는 "잡기싸움에서 김대현의 힘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 당황했다. 진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좀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김대현은 "진짜 현역선수랑 하는 것처럼 힘들었다"라며 이원희의 노련미에 감탄했다.

2라운드에 접어들어 김대현은 잡기를 보완하면서 이전 라운드보다 이원희의 기술에 기민하게 선제적인 대응을 펼 칠수 있었다. 김대현은 업어치기를 시도하는 듯 하다가 장기인 안뒤축후리기로 이원희의 하체를 공략했다. 업어치기와 시작 동작은 비슷하지만 다리를 이용하여 반대로 공격하는 역동작으로 상대 선수들이 교란당하기 쉬운 기술이었다. 다행히 이원희는 재빨리 몸을 틀어서 방어하며 위기를 넘겼다. 

이원희의 연속 밭다리 기술을 피하기 위하여 몸을 엎드린 김대현이 또다시 지도를 받았다. 이원희는 재차 밭다리후리기를 시도했으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공간을 허용하자 김대현이 넘어지며 방어해냈다. 이어진 배대뒤치기 공격에서는 힘이 크게 빠진 모습을 보이며 상대의 무게중심을 흔들지 못했다. 조준호는 체력에서 불리한 이원희가 여러 번의 공격보다 큰 기술로 한번의 확실한 공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라운드 막판 이원희의 몸이 살짝 뜬 틈을 놓치지 않고 김대현이 다리 사이로 업어치기 기술을 시도했다. 이원희가 간신히 막아냈지만 지도를 받았다. 두 번째 판도 무승부로 결국 승자를 가리지못하며 승부의 운명은 최종 3라운드에서 가려지게 됐다.

정후 코치는 김대현에게 승부수로 업어치기와 안뒤축후리기의 연계를 주문했다. 권성세 감독은 버티는 힘이 좋고 밑으로 주저앉는데 능한 김대현을 공략하기 위하여 잡기와 동시에 기술을 쓰라고 이원희에게 조언했다.

마지막 3라운드가 막을 올렸다. 이원희가 업어치기와 배대뒤치기 등 큰 기술로 잇달아 승부를 걸었지만 번번이 김대현의 기민한 방어로 무산됐다. 포커페이스였던 이원희도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조준호는 "이원희는 현역시절에도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선수였다"라고 설명하며 "그만큼 지금 체력저하가 있다는 이야기"라고 분석했다. 

팽팽한 승부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김대현이 필살기인 회심의 안뒤축후리기를 성공시켰다. 드디어 무승부의 균형을 깨고 김대현이 절반을 먼저 획득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이제 불과 1분.

하지만 위기에 몰린 이원희의 승부사 본능이 빛을 발했다. 절반 허용 이후 약간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듯 하던 이원희는 팽팽한 잡기싸움을 펼치다가 돌연 밭다리후리기로 김대현을 무너뜨리며 한판을 이끌어냈다. 체력을 모아 한번에 승부를 걸기위한 이원희의 큰 그림이었다. 지켜보던 관중들도 모두 깜짝 놀라게 만든 대역전극에 열광했다. 

권성세 감독은 "슈퍼 한판"이라는 표현으로 이날의 승부를 요약했다. 조준호는 "이게 이원희의 기술이다. 절반을 지고 있어도 이원희는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마지박 밭다리 기술은 현역 그때처럼 정말 예리했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원희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이후 아테네올림픽 때처럼 스승에게 달려가 큰 절을 올렸다. 권 감독도 제자를 따스하게 포옹해주며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을 보였다. 조준호는 "이 정도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파리올림픽 복귀도 기대해볼만 하겠다"라며 진심어린 응원을 보냈다. 
 
이원희는 "김대현이 생긴 것만 이국적인줄 알았는데 힘도 이국적으로 세더라"라며  혀를 내둘렀다. 김대현은 패배에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저에게는 너무 영광스러운 기회였다. 이 계기로 더 열심히 해서 우리 나라를 빛내보겠다"라고 다짐했다.   

또한 이원희는 현역 복귀와 2024 파리올림픽 국가대표 도전을 다시 한번 공식 선언했다. 이원희의 부친은 "올림픽에 나가려면 골프부터 끊어라. 젊은 친구들은 밤잠없이 연습하고 있다. 할거면 열심히 하자고"라는 애정어린 잔소리로 아들을 당황하게했다. 이원희의 아내도 "체력이 너무 없다. 체력훈련을 더 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든다"라는 냉정한 평가를 남기며 이원희를 능가하는 '스파르타 가족'의 면모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원희는 여성 레전드인 현정화(탁구)-남현희(펜싱)을 제외하고, <국대는 국대다>에 출연한 남성 레전드와 투기종목 분야에서 현역 선수를 상대로 승리한 첫 사례가 됐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투기종목에서는 현역과 은퇴선수간의 신체적 격차가 주는 핸디캡은 '넘사벽'에 가깝다. 이만기(씨름)-박종팔(권투)-문대성(태권도) 등은 모두 까마득한 후배들과의 맞대결에서 고배를 마셨다. 유일하게 은퇴 레전드들끼리 격돌한 레슬링도 심권호가 나이차가 띠동갑에 가까운 정지현에게 완패하며 세월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비록 이원희는 타종목 레전드들에 비하면 젊은 편이기는 했지만 역시 은퇴한  지 14년이 넘었고 상대 선수와의 나이차는 아들뻘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실력으로 현역 국가대표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고 심지어 현역 복귀와 올림픽 도전까지 선언했다. 

이원희의 유도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열정, 40대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도전정신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어떤 선수로 기억에 남는 것보다 계속해서 이원희의 인생을 유도로 만들어가고 싶다"라는 레전드의 고백은 깊은 울림을 전했다. 
국대는국대다 이원희 김대현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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