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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원주 치악산 자락을 출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문득 6.15 남북공동선언문이 떠올랐다. 그날은 이희호 여사가 하늘나라로 가신 날이다.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면, 6월은 '계절의 대왕'이리라. 산과 들에는 초록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이 좋은 계절 이희호 여사는 떠났다.
 
국립현충원 김대중 이희호 묘역의 펼침막.
 국립현충원 김대중 이희호 묘역의 펼침막.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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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굳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무덤을 찾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공동선언문 첫 장의 이 구절 때문이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그 이후 우리 겨레는 남북 분단시대에 살면서 '괴뢰'니 미제 '앞잡이'니 서로 험한 말로 헐뜯으면서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까지 치렀다. 그 엄혹했던 야만의 시대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 손을 잡고 마침내 이룬 '6․15 남북공동선언'은 겨레의 희망이요, 한 줄기 빛이었다. 지금도 통일로 가는 길이요, 통일의 집 주춧돌이다.

나는 두 분과는 교사와 학부모라는 특수한 인연도 있지만, 그보다 두 분이 남북공동선언문의 연출자였다는 점에 감동했다. 발걸음을 옮겨 서울 국립 현충원으로 갔다.
   
자유·정의·인권의 사도
 
기자가 김홍업 전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김홍걸 의원.
 기자가 김홍업 전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김홍걸 의원.
ⓒ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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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이희호 묘역에서의 추도식.
 김대중 이희호 묘역에서의 추도식.
ⓒ 이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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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10시 정각.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의 사회로 '이희호 여사 3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국민의례에 이어 고인에 대한 경례 및 묵념, 고인이 오랫동안 장로로 봉직했던 서대문 창천교회 구자경 목사의 기도가 이어졌다.

"이희호 장로님은 평화로운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시다가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셨습니다."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추도사에서 "이희호 여사는 자유·정의·인권의 사도로 억압받는 약자의 대모였다"고 고인을 회고하면서 "가난한 정치인의 아내로 일생을 내조한 그분의 혜안과 그 신념을 존경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고인이 평소 가장 즐겨 불렀던 찬송가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을 다 함께 불렀다. 내빈들의 헌화 및 분향이 뒤따랐다. 이날 추도식장에는 생전에 고인을 따르던 사회 각계 3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시종일관 엄숙한 가운데 고인을 기렸다. 

나는 유족석에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있는 김홍업·김홍걸 형제에게 다가가 악수로 '피는 물보다 짙다'는 덕담을 전했다. 2020년 7월, 김대중 대통령 생가 전남 신안군 하의도 후광마을에 갔을 때 까마귀 두어 마리가 바닷가로 가는 내 뒤를 따르면서 계속 '까악' '까악' 짖었던 그 장면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김홍업·김홍걸과 관련해 아름답지 못한 보도가 쏟아져나왔고, 나는 곧장 서울로 달려가 '이건 아니다'라는 조언을 했다. 얼마 후 답으로 3형제가 동교동 자택 응접실에서 굳게 손잡는 사진을 보내왔다. 이희호 여사 3주기에 맞춰 그때 그 사진을 이 기사에서 처음으로 공개한다.
 
동교동 자택 응접실에서 3형제의 굳은 악수(오른쪽부터 1남 김홍일 배우자 윤혜라. 2남 김홍업, 3남 김홍걸). 사진은 지난해 봄 촬영.
 동교동 자택 응접실에서 3형제의 굳은 악수(오른쪽부터 1남 김홍일 배우자 윤혜라. 2남 김홍업, 3남 김홍걸). 사진은 지난해 봄 촬영.
ⓒ 김홍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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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는 김대중·이희호 부부도, 두 분을 따르는 수많은 국민도 이 장면을 반기리라 믿는다. 김대중·이희호의 남은 가족들이 두 손 모아 부모님의 뜻을 계승하고 조국을 평화와 통일의 길로 함께하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길 바란다.

김대중·이희호 부부를 만나고 다시 원주로 돌아서는 길, 단비가 대지를 적셨다. 이희호 여사가 하늘나라로 돌아가면서 유족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대한 기쁨과 이날 묘소로 찾고, 기억해준 겨레에 보내는 감사의 눈물이 아닐까 상상해봤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도씨는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상임고문입니다.


태그:#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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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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