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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제목이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라고 해서 자동차 디자인 전공자나 실무자를 위한 교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변천사로 돌아보는 인간 중심 디자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부제를 미처 살피지 않고 이 책을 지나친다면 당신은 인간의 운전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리하게끔 백 년 이상 치열하게 연구해온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 역사를 모르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디자이너를 위한 책이 아니고 모든 운전자를 위한 책이다. 아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자동차야말로 현대의 문명과 기술이 총 집결된 결정체니까. 책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계에 달린 수십 가지의 유틸리티가 어떤 취지에서 개발되었고 어떻게 발달하여 왔으며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알려준다.

자동차라는 생활방식의 가장 흥미로운 보고서
 
ⓒ 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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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이면서 공간이고, 도구이면서 생활 방식인 자동차가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지고 볶아온 흔적을 추적하고 자동차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이게 왜 여기에 붙어 있는 건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구해온 결과가 바로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다. 굳이 자동차광이 아니더라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다.

이 책의 저자가 하는 일은 '자동차 UX 디자인'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알겠는데 자동차 UX 디자인은 무엇일까? 잘 모른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2015년 소셜 미디어 링크드인에 의하면 부모에게 설명하기 불가능한 직업 TOP 15 중 1위가 바로 이 직업이니까.

만약 당신이 자동차 UX 디자인을 한다면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자동차 핸들에 들어가는 버튼은 몇 개가 좋을까? 와이퍼 스위치는 오른쪽이 좋을까? 비상스위치는 어느 정도 높이에 달리는 게 맞을까? 볼륨 조절은 몇 단계로 나눠놓는 것이 가장 편할까? 그러니까 UX 디자인은 운전자가 보고 만지고 조작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심미적, 기능적, 상징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이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에는 글러브 박스, 컵 홀드, 창문, 사이드미러, 에어컨, 시트 조절 스위치, 시가잭, 계기판을 비롯한 운전자가 조작하는 유틸리티에 대한 흥미로운 탄생과 진화 과정 그리고 속사정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당신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언제나 동고동락한 존재는 부모나 배우자가 아니다. 바로 여러분의 자동차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자동차의 소소한 도구들이 우리의 편리함과 안락함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뒤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인가?

자동차 안에 생화를 꽂는 꽃병이 있다?

그럼 글러브 박스부터 시작해볼까? 우선 차량 수납공간을 왜 글러브(장갑) 박스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마차와 비슷하게 생겼던 초기 자동차를 모는 운전자는 시린 바람에 덜덜 떨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바람막이(앞 유리창)가 생겨났는데 찬바람에 손이 시리면 운전 자체를 하기가 힘드니 방한 장갑을 하나씩 꼭 챙겨야 했다.

또 파워스티어링이 아니었던 초기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방향을 돌리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고 손에 굳은살이 박이기도 했을 테니 장갑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자동차의 대표적인 수납공간인 글러브 박스가 처음부터 조수석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시트 밑에서 출발해서 운전석으로 갔다가 또 다른 장소로 유목민처럼 이사한 것이 글러브 박스였다. 그러다가 1933년 클로슬리 모터스가 최초로 자동차에 라디오를 장착했는데 이를 계기로 대시보드의 중앙에 라디오, 운전석에는 계기판, 조수석에는 글러브 박스가 자리 잡은 오늘날의 익숙한 레이아웃이 완성된다.

전기자동차가 미래형 자동차로 주목받지만 따지고 보면 전기 자동차가 내연 기관 엔진보다 더 먼저 나왔다. 1832년에 로버트 앤더슨이 원유 전기 마차를 만들었는데 내연 기관 엔진은 1800년대 후반에야 나왔다. 당시 전기자동차는 구조가 간단하고 운전이 쉬워서 여성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이 주로 애용하는 전기차에 여성의 취향을 저격해서 자동차 전용 꽃병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에는 참으로 많은 운전자가 자동차에 꽃을 꽂아두고 다녔다. 그리고 이 꽃은 전기자동차의 특성상 달고 다니는 배터리 냄새를 없애주는 방향제 역할도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꽃보다 훨씬 효력이 강력하고 편리한 방향제가 많으니 '차 속의 생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1957년식 폭스바겐 비틀에는 개인이 원하는 꽃병을 차에 달았다.
 1957년식 폭스바겐 비틀에는 개인이 원하는 꽃병을 차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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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이미 파워 윈도 기능이 있었다?

군생활을 할 때 우리 부대의 전승기념관에서 선배들이 한국전쟁 때 탈취했다는 김일성의 승용차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승용차의 모델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놀란 것은 그 차에 무려 파워 윈도 기능이 장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1990년대 후반까지 수동을 창문을 여닫아야 하는 소형차를 몰았다. 이미 그 당시에도 웬만한 차는 파워 윈도가 장착되어 있어서 내 차를 타는 사람이 '아니, 창문을 직접 손으로 올려야 해요?'라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 왠지 모를 굴욕감을 느꼈더랬다.

그런데 북한의 김일성은 이미 1950년대에 파워 윈도 기능을 사용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는데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읽고 그 궁금증을 해결했다. 파워 윈도 기능은 이미 1940년식 '패커드 180'이라는 자동차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니까 1950년대에 몰았던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일성의 자동차에 파워 윈도가 장착된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파워 윈도가 장착된 1942년식 패커드 180
 파워 윈도가 장착된 1942년식 패커드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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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돌출된 형태의 파워 윈도가 일반적이었다가 지금은 당기면 올라가고 아래로 누르면 내려가는 방식의 파워 윈도로 바꿨다. 나는 후자 파워 윈도를 사용하면서 돌출형 형태를 그리워했다. 왜 자동차 인터페이스가 퇴보를 하는가 싶어서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이 창문 사이에 목을 내밀고 기어오르다가 실수로 돌출형 파워 윈도를 발로 밟아서 생기는 인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동차는 호위무사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애쓴다. 변속기만 해도 그렇다. 변속기가 P에 있는 줄 알고 착각하고 내렸다가 화를 당하는 운전자를 막고 그 밖에 다양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위아래로 밀고 당기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식에서 탈피해서 기어 변경마다 일종의 턱을 만들어 놓는 스텝 게이트 변속기가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기어 변경이 단번에 빨리 되지 않고 덜컥거린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스텝 게이트가 없는 변속기(좌)와 스텝 게이트가 장착된 변속기(우)
 스텝 게이트가 없는 변속기(좌)와 스텝 게이트가 장착된 변속기(우)
ⓒ 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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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은 우리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이지만 운전을 하는 재미 자체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테슬라는 '차 문을 열면' 전원이 들어오는 전기 자동차를 진즉 개발했지만, 엔진을 시작하는 신성한 행위 즉 시동 버튼을 누르는 행위 없이 차를 움직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운전자를 위해서 '시동'버튼을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내연 기관처럼 우렁찬 소리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슈웅~'하는 효과음 정도는 잊지 않았다.

누가 소장 가치가 있는 추천 해달라면 나는 가장 먼저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즐거움과 안전을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 속에 숨겨진 인류의 흥미로운 역사를 말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인터페이스 디자인 - 포르쉐 UX 디자이너가 들려주는

박수레 (지은이), 책만(2022)


태그:#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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