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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날씨를 '기상'이라고 하고 긴 날씨를 '기후'라고 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짧은 날씨를 전하는 기상캐스터로 7년을 살아왔고, 사람들은 그녀를 '날씨요정 정주희'라고 불렀다.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왔던 그녀는 육아도 일도 '프로'로서 손색이 없을만큼 잘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기상캐스터 일은... 더이상의 기회가 없었다.

출산 후 복귀 의사를 타진했을 때 방송국의 대답은 '노(No)'... 속상했다. 지역에서부터 하나하나 쌓아가며 일해온 일터였기에 야속했고, 뉴스에서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문제점을 보도하면서 왜 '엄마 기상캐스터'는 받아주지 않는지 의아했다.

"내 삶이 일회용품인가?"

그녀는 한 번 쓰고 휙 던져 버리는 일회용품 용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울감이 밀려왔다. 우울감을 쫒으려 틈틈이 책을 봤다. 기후변화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상캐스터는 있는데 기후캐스터는 왜 없지? 구글 검색을 해봤다. 정말 없었다. 국내에도 해외에도. 그래서 결심했다. 자신이 직접 기후캐스터가 되기로. 그러고는 지난 일요일 오후 아이의 손을 맞잡으며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제 계획은 아이와 함께 기후위기를 막는 거예요. 내 가치가 일회용이 아니듯 일회용품 쓰기부터 바로잡을 수 있는 실천을 저부터 해나가고 있습니다."

유일무이한 기후캐스터로 거듭나려하는 정주희씨. 그녀와의 인터뷰는 환경의 날인 6월 5일 오후 홍대 앞 작은 카페에서 시작됐다.

유일무이 '기후캐스터'
 
기후캐스터로서의 꿈을 설명하는 정주희 전 기상캐스터. 2022년 6월 5일 홍대 앞 인터뷰 중.
 기후캐스터로서의 꿈을 설명하는 정주희 전 기상캐스터. 2022년 6월 5일 홍대 앞 인터뷰 중.
ⓒ 노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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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플로깅(산책하며 쓰레기 줍는 문화활동) 행사에 참여한다고 하던데.

"예. 저와 함께 플로깅 하는 멤버들이 모인 '와이퍼스'라고 있거든요. 그 멤버들 하고 같이 환경의 날을 맞아서 일회용 컵 줍기를 한다고 했어요. 저도 동참하고 싶은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랑 같이 나왔죠. 그래서 '유모차 플로깅'의 선두주자가 돼야겠다(웃음). 그래서 여기 유모차에 (쓰레기를) 실을 공간이 더 많잖아요. 그래서 컵을 담아서 여기다 실어 넣으면 딱이고..."

- 기후캐스터를 선언하고 일회용품 줍기에 나선 배경이 궁금해요.

"일회용품 중에서도 테이크아웃잔이 제일 문제잖아요. 그걸 제가 더 왜 열심히 안 쓰게 됐냐면, 제가 출산 후에 다시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유리천장'을 뚫지 못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여성 방송인은 일회용품 같은 소비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뭔가 계륵같은 존재? 출산 전에는 계속 활동했지만 아기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기 엄마라는 이유로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방송국... 그게 이제 '내 삶이 일회용이었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를 일회용품에 투영하게 되더라고요.

나는 굉장히 열심히 살았고 지역에서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고 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결국엔 출산이라는 벽에 부딪쳐서, 들어가고 싶다고 했지만 거부를 당한...이 삶이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의 가치가 일회용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일회용품을 절대 쓰지 않겠다, 이런 생각이 더 들면서 더 안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딘가 환경 관련된 강의를 나가면 '본인의 가치가 일회용이 아니시라면 당신도 일회용품을 쓰지 마세요.' 이렇게 마무리 멘트를 하고 싶어요."

- '기후 캐스터'라는 발상도 그런 고민에서 나온 건가요?

"예. 환경 관련 활동하는 시민들도 많으시지만 '기후캐스터'라는 것을 생각을 못했던 이유가 저도 제가 기상캐스터였기 때문에 캐스터라는 것을 생각했지 다른 분들은 캐스터 생각도 못하셨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게 나의 굉장한 메리트이지 않을까. 그래서 제가 저를 소개할 때 '유일무이한 기후캐스터', 이렇게 하거든요. 특히 제가 아기 엄마니까 아기 키우는 엄마들이 함께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늘 갖고 시작했습니다."

- 저도 '물티슈'에 관한 기사를 쓴 적 있는데 사실 상당히 민감한 부분입니다.

"맞아요. 저도 일단 어린이집에 매달 1일이 되면 물티슈를 보내야 해요. 선생님이 보내달라고 하세요. 거기에 대고 저는 '물티슈 쓰지 않습니다' '저희 아이는 물로 닦아주세요' 이럴 순 없잖아요. 선생님들이 케어하는 아이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 그래서 그럴 때는 그냥 보내고요. 저는 집에서 아이가 응가를 하더라도 바로 물로 닦아줘요.

그런데 저희 남편은 또 (물티슈를) 써요. 그런데 남편에게까지 제가 막 그렇게 하면 너무 잔소리이고 질려버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오히려 그렇게 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죠. 물티슈를 안 쓰고, 이렇게 해도 돼. 제일 좋은 방법은 '그렇게 해'가 아니라 내가 먼저 나서서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저런 방법도 있구나' 사람들이 알게 되거든요.

제가 지속적으로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여러분 우리 환경보호 동참해주세요' 이렇게 안하고 '오늘은 제가 여행 가서도 일회용 잔을 안 쓰고 온 가족 텀블러를 다 들고 다녔어요' 이렇게 쓰거나, 아니면 '용기 내 오늘은 뭘 했다. 보쌈을 했다. 김밥을 했다. 김밥은 완전 껌이지' 이런 걸 지속적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려요. 그러면 '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반응이 나와요.

한번은 또 B회사의 아이스크림을 용기에 담은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와 이거는 진짜 신박하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이거 생각 못했다고...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니까 굉장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아기 엄마들이. 그래서 '네 이렇게도 할 수 있어요, 저는' 이렇게 보여주고 이제 보시는 분들로 하여금 '어 그럼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기후캐스터로서 사람들에게 환경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은 게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이나 방송하는 후배들 동기들 선배들께 '플로깅하자' '우리 같이 쓰레기 주우러 가자' 해요."

기승전 '환경보호'
 
환경의 날 플로깅 현장의 정주희 전 기상캐스터
 환경의 날 플로깅 현장의 정주희 전 기상캐스터
ⓒ 정주희 캐스터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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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깅에 대해 어떤 분들은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 사람 따로 있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냥 이야기를 듣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과는 정말 천지차이예요. 한번 해보면 쓰레기를 주우면서 '사람들이 정말 생각 없이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구나' '나는 그동안 버린 게 없었을까' 하면서 스스로 한 번쯤 생각해보게 돼요.

일회용품 플라스틱을 사람들이 많이 쓰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나도 텀블러로 생활해볼까?' '생활화가 어렵다면 일주일 중에 한두 번이라도 들어볼까?' '한 달에 평균 네 번 배달음식을 시킨다면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용기내를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하려고 해요. 그래서 4월 5일 식목일엔 방송하는 후배들한테 '식목일 뭐해? 나랑 의미있는 식목일 보내보지 않을래?' 하면서 제로 웨이스트숍에 가서 플로깅 도구를 대여해 한강변에서 플로깅을 했어요."

- 플로깅을 할 때 제일 심각한 게 뭔가요?

"담배꽁초예요. 그날도 원래 1시간 정도 조깅을 하면서 플로깅을 하는 거였는데 조깅을 할 수가 없었어요. 주변에 담배꽁초가 너무 많았으니까. 제일 심각해요.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담배꽁초예요.

담배꽁초가 플라스틱이거든요. 안의 필터를 분해해보면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라는, 녹지 않는 플라스틱 성분이 들어 있어요. 그것을 사람들이 하수구에 버리면 강으로 흘러가잖아요. 강은 또 바다로 가져. 그러면 미세플라스틱으로 쪼개져서 물고기가 그걸 먹어요. 우리는 또 그 물고기를 먹죠. 결국 내가 버리는 게 나한테 돌아오는 것이죠. '자원순환'이 돼야 되는데 '플라스틱 순환'이 되고 있는 거예요."

- 마치 한 편의 강의를 듣는 것 같아요.

"(웃음) 이런 이야기를 피드에도 올리기는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면 '기승전 환경보호' 이야기로 끝나요. 이를테면 '쓰레기산이 제일 문제다' '우리나라가 지금 전세계 국토 면적당 쓰레기 발생 1위다' '미국은 땅덩어리라도 넓지만 우리는 더 이상 매립할 공간이 없다' 그러니까 '진짜 쓰레기를 줄여야 된다'라고요.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계속 그 얘기를 하죠. 그러면 다 끝나고 나와서 '오, 나 강의 들은 것 같아'라고 해요."

'기업이,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가 아니라
 
출처 : 정주희 캐스터 인스타그램
▲ 플로깅 행사에 동참한 정주희 캐스터의 아들 **군이 숫자를 보고 있다. 출처 : 정주희 캐스터 인스타그램
ⓒ 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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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점은?

"사람들의 인식이죠. 저희 어머니도 그러세요. '너 혼자 비닐봉지 안 쓴다고 되겠냐. 너 혼자 일회용품 안 쓴다고 되겠냐.' 물론 저 혼자 한다고 되지 않겠지만 제가 하는 모습을 누군가 보고 큰 영감을 얻고 성찰할 수 있잖아요. 오늘 나와주신 기자님처럼... 제가 이렇게 계속 꾸준히 목소리를 내다보면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마치 요새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어졌듯이 언젠가는 사람들이 일회용잔에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없어지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타일러 라쉬가 쓴 <두 번째 지구는 없다>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제 계획은 기후위기를 막는 거예요. 우리 모두의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후 위기를 막지 못하면 10년 20년 뒤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기업이 알아서 해 주겠지' '정부가 알아서 해주겠지'가 아니라 나부터 이렇게 실천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들이 더 많이 모이면 좋겠어요."

오후 5시가 되자 날씨요정은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플로깅 현장으로 갔다. 약 1시간 반 동안 아이와 함께 쓰레기를 열심히 주웠고, 아이는 엄마와 사람들이 곳곳에서 주워모은 쓰레기 더미가 쌓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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