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회용 용기에 담아온 삼겹살
 다회용 용기에 담아온 삼겹살
ⓒ 이준수

관련사진보기


며칠간 강릉 일대에는 비가 내렸고, 나는 미친 듯이 삼겹살이 먹고 싶었다. 나는 완고한 육식주의자는 아니다. 고기를 안 먹는 기간에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거의 폭력적이라 할 만큼 강한 충동이다.

아내와 나는 종종 거침없는 식육욕을 공유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15년을 곁에서 함께 지내다 보면 보이지 않는 식탐의 끈이 연결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내는 육식을 하는 것이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 삼겹살 충동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이성으로 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 번 입 밖으로 "삼겹살이 엄청나게 먹고 싶다"라고 꺼내고 나자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파트 진입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중 차 천장에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우리에게는 그 소리가 어서 빨리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을 입에 넣으라는 재촉으로 들렸다.

대신 기왕 삼겹살을 먹는 것이라면 포장 쓰레기라도 줄여보자고 입을 모았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저장용기와 장바구니를 챙겼다. 빈 용기에 삼겹살을 가득 담아올 것이다, 하는 비장한 각오로 길을 나섰다.

100그램당 1000원 차이... 그럼에도 비싼 정육점으로 갔다

동네에서 고기를 파는 곳은 두 군데이다. 10미터 거리를 두고 있는 하나X마트와 한X축산. 하나X마트는 100그램당 2300원, 한X축산은 3300원이다. 무려 천 원 차이가 난다. 1킬로그램이면 만원 웃돈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X축산으로 갔다.

왜 비싼 한X축산인가. 하나X마트 정육 코너는 미리 일정 무게만큼 포장이 되어있다. 사적으로 가져간 저장 용기에 담아 달라고 부탁하면 기존의 포장을 해체해야 한다. 고용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두 번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안 그래도 피곤에 전 얼굴인데 눈그늘이 이 센티미터 더 내려오게 만들고 싶지 않다. 우리의 취향에 따른 요청으로 폐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별도의 서비스를 해준다고 해서 임금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반면 한X축산은 오너 장사다. 사장님이 항상 손님을 응대하고 많이 사면 소시지를 끼워주는 등 재량껏 장사한다. 그런 집은 개별적인 주문을 요청하기가 편하다. 우리는 한 번에 5만 원 이상 구매하기에 사장님 입장에서도 기분 좋게 받아주신다.

더군다나 한X축산은 원래부터 냉장고에 비포장 된 생육 상태로 전시를 하다가 손님이 요구한 만큼 비닐 포장을 하는 체계다. 그러니 우리가 스테인리스통을 내밀어도 전혀 귀찮지 않다. 오히려 따로 포장 하지 않고 고기만 성큼성큼 썰어서 담아주면 되니 편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한X축산으로 발걸음을 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늘은 고깃값으로 7만 1천 원이 나왔다. 정해 놓은 식비를 훌쩍 초과한 금액이었다. 우리 부부는 폭발하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아껴두었던 용돈을 꺼내 보탰다. 

비싼 고기니까 기분 좋게 먹자며 청양고추와 마늘을 썰었다. 텃밭에서 뽑은 양파도 쌈장과 함께 내었다. 흑미밥을 두 그릇 비웠다. 고기는 큰 프라이팬에 가득 차게 세 번 구웠다. 마지막 밥숟갈을 뜰 때쯤에야 성난 식육욕이 진정되었다.

아내는 고기를 먹어서 지구에 미안하다며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 간다>는 책을 읽고 나서 플로깅을 하러 갔다. 담배꽁초를 페트병 두 개 용량만큼이나 주워 왔다.

우리 부부는 환경에 관심이 많지만 자주 유혹에 흔들리고 완벽하지 않다. 삼겹살은 왜 이렇게 맛있는 지 아마 평생 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편하고 미안한 심정을 덜기 위해 반성적 행위를 하고자 애쓰고 있다. 

냉장고에 쟁여둔 삼겹살 스테인리스 통을 보며 다짐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다 먹겠다고. 대신 다음번 육식욕에는 최대한 참아보기로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교육과 환경에 관심이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