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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이희성 교통부 장관이 주요업무계획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모습 (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1983년 이희성 교통부 장관이 주요업무계획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모습 (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 강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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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방지법'이 선거 공약으로 나올 정도로 민영화 이슈가 뜨겁다. 혹자는 민영화보다 사유화가 옳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20세기엔 언론에서 사유화라는 용어 사용을 선호했다.

지난 5월 12일 기사에서 '박정희 정부 때 건설된 공공 골프장이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민영화된 사건'을 다뤘다.(관련 기사 : 전두환 정권 최초의 공공골프장 민영화 사건 http://omn.kr/1yvux) 1982년 4월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는 경주보문관광단지 내 보문골프장(현 경주신라cc, 천마코스)을 비롯한 호텔 등을 라이프그룹에 매각하기로 했고, 1년여 뒤에 그 관광단지의 총괄 책임자인 경주관광개발공사 사장이 매각된 호텔과 골프장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간 일종의 전관예우 사건이었다.
     
그런데 신군부 독재정권의 공공골프장 민영화 사건을 다루면서 확인된 또 하나 팩트는 당시 레거시 미디어에서 이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제때 제대로 팩트를 알리지 않거나 알리지 못하는 '팩트 은폐'는 가짜뉴스만큼이나 국민의 알 권리를 원천 봉쇄한다. 당시 언론이 보도하지 못한 팩트들을 체크하고 입체화할 수 있다면, 최초 공공골프장 민영화 사건의 전모를 명확히 밝히는 데 큰 보탬이 될 듯싶다.

"이제 국민소득 1500달러의 198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이색 '파동'을 겪게 되었다. 이른바 '관광파동'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의 가장 촉망되는 미래지향적 산업으로 주목되고 있는 관광산업은 국민관광의 붐과 더불어 이미 그 본격적인 막을 올려 1980년대를 고비로 전국의 연간 관광객 이동량은 드디어 1억을 넘어서게 되었으며 신라의 고도 경주에만도 연간 500만에 이들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 (매일경제신문, 1982.1.22)

1980년대 초 신군부 정권 때 일간지에서 '관광파동'을 기사화할 정도로 국민관광의 붐과 관광산업의 발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재벌들은 잰걸음으로 반응했다. 당시로써는 미래 유망산업으로 꼽히던 레저산업 진출을 적극 밀어붙였다. 한국콘도미니엄은 레저전문업체 선두주자로 뛰고 있었고, 한창 신흥기업으로 화제를 뿌리던 명성그룹은 지리산 화엄사 부근에 관광단지 개발을 서둘렀다. 또 미륭건설이 설악산 부근에 디즈니랜드를 본뜬 종합관광단지 등을 검토 중이었다.(조선일보, 1981.9.27)
     
한때 '돈병철 땅봉구'로 소문난 부동산 재벌인 삼호그룹도 제주도에 호텔과 골프장 등 관광휴양단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일찍이 제주도 유일의 오라cc를 신제주 쪽에 건설한 삼호개발은 1981년 여름에는 제주그랜드호텔(현 메종 글래드 제주호텔)도 개관했다. 삼호그룹 회장 조봉구는 한양cc 설립자이기도 했다. 삼호개발보다 먼저 1년여 전에 삼부토건도 경주도큐호텔(현 경주콩코드호텔)을 인수해 서둘러 관광산업에 뛰어들었다. 삼부토건 회장 조정구가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조남욱 회장의 부친이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골프장 신규건설을 부지의 입지 여건만 좋으면 가능한 한 허가해주는 방침으로 선회했다. 골프장 허가는 1977년 이후 4년 만에 재개됐다. 1982년 7월 20일 자 매일경제신문을 보면, 교통부에서 골프인구 증가와 86아시안게임 및 88서울올림픽을 감안할 때 당시 골프장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신규허가를 재개했다.

당시 교통부 장관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예편한 이희성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때 그는 계엄사령관을 했다. 그해에 명성그룹의 설악cc, 국제그룹의 원효cc, 효성그룹의 신갈cc, 삼양염직의 광주cc, 삼화농림의 한성cc 등 5곳에서 골프장 건설을 진행해 전국에 모두 26개로 늘어나게 됐다.

재벌그룹들의 레저산업 진출은 새로운 골프장 신·증설을 부추기는 한편, 심지어 기존 골프장을 손쉽게 인수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경주관광단지 내 보문골프장은 안성맞춤이었다. 당시 이미 모든 인프라가 갖춰진 보문골프장을 73억에 인수할 수 있다면 어느 재벌이 마다했을까? 자본 입장에서 민영화할 수만 있으면, 가히 누워서 떡먹기식 장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1983년 말에 삼호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삼호개발에서 운영하던 수원cc(32만여 평)를 매각할 때 210억 원에 계약됐다.

1982년 9월 말 본회의 일정을 마친 국회는 상임위 활동에 들어갔다. 상임위 13개 중 교통체신위원회를 포함 5개만 정상가동됐다. 어쨌든 국회 상임위 질의·답변을 통해서 경주보문단지 내 호텔과 골프장 민영화의 문제점과 그 전모가 드러날 기회가 찾아왔다.

"손 의원은 '경주조선호텔의 경우 53억을 출자했는데 이것을 같은 금액의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이라는 유리한 조건으로 매각한 것은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고 묻고, '보문골프클럽의 경우 27억 3천만 원 출자한 것을 73억 원으로 매각한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실제는 998명의 회원권 예수금 39억을 제외하면 43억 원으로 판매한 셈이고, 이것은 앞으로 회원 1000명을 더 모집하면 공짜로 양도한 셈이 된다'고 주장했다."(조선일보, 1982.11.4)

국회 교통체신위원회의 손정혁 의원은 '국제관광공사 현황보고'에 대한 질의를 통해, 경주조선호텔과 보문골프장의 헐값 매각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라이프그룹이 보문cc를 인수한 1982년 4월 당시만 하더라도 신문지상에는 매각조건으로 60만여 평짜리 18홀 골프장을 73억에 인수하고 3년 분할상환한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보문골프장을 인수한 라이프그룹은 경주조선cc로 개명한 뒤 발빠르게 골프장 회원을 추가로 선착순 모집했다. 1982년 9월 7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보면, 65만 평 부지에 18홀 증설을 추진한다면서 '경주조선칸트리크럽 會員募集' 광고를 크게 냈다. 가입안내에는 개인 회원권 500만 원, 법인 회원권(1구좌 2명) 1000만 원으로 제시했다. 당시에 18홀 골프장을 기준해서 회원은 1200명 한도였지만, 1983년부터 교통부는 관광사업법시행규칙을 개정해 1800명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애초 국제관광공사는 경주조선호텔만을 매각하려고 시도했지만 유찰됐고, 그 다음에 보문골프장까지 일괄해서 공개입찰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1982년 10월 25일 열린 국회 교통체신위원회에 상정된 교통부 소관의 '국제관광공사 현황보고' 자료를 들여다보면, 그 호텔과 골프장의 매각경위를 비롯한 투자자산, 회수실적 등 매각현황의 세부내용이 확인된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는 달리, 골프장만 4월 말에 먼저 매각됐고 호텔의 경우에는 무슨 이유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때 매매계약이 일괄체결되지 못하다가 8월 말에 가서야 매각이 완료됐다. 또한 국제관광공사의 국회보고 자료에 따르면, 보문골프장의 매매계약도 65만 평의 골프장 부지만을 계약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골프장 내 시설일체에 대한 매매계약은 국회 보고 때까지도 '예정'상태였다.(제11대국회 제114회 제5차 교체위 회의록)

일간지에 게재된 당시 매각공고를 보면 매각물건을 분명히 "보문칸트리크럽(경주보문관광단지 소재 골프장) 60만여 평 및 부대시설 일체"라고 표시하고 있었다.(경향신문, 1982.4.10.) 

국제관광공사에 의해 국회에 제출된 '업무현황'에 대한 보고 자료를 검토한 손정혁 민한당 의원은 1982년 11월 3일 국회 상임위 현안 질의를 통해, 경주보문단지 내 호텔과 골프장의 민영화 현안은 '경주조선호텔을 공짜로 주고 보문골프장을 덤으로 더 주는 결과가 아니냐'라는 결론을 내렸다.(제11대 국회 제114회 제10차 교체위 회의록) 하지만 언론에서는 민영화 주무기관인 국제관광공사 하대돈 사장의 답변을 간단히 보도했을 뿐이다. 그 민영화의 문제점과 관련된 상세한 국회 상임위 질의·답변이나 그 내막은 보도되지 못했다.

"경주조선호텔은 연간 10억내지 15억의 적자를 내 그동안 40억 원의 적자가 누증됐고 건설 차압금 34억 원도 남아 있어 매각이 불가피했다."(동아일보, 1982.11.4)

그런데 1982년 11월 3일 손정혁 의원의 대정부 질의에서 하이라이트는 이 같은 숫자놀음 또는 상투적인 답변을 요구한 게 아니었다. 당시 레거시 미디어는 보도하지 않은 질의내용들이 있었다. 이 내용들은 지금도 '국회회의록 시스템'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없는 돈을 끌어 모아 가지고 집 지어서 이자 한 푼 없이 그것도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으로 매각을 하게 된 이 눈물어린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공사로서 그 말 못 할 사연을 좀 속시원하게 밝혀 주십시오." 
"보문컨츄리와 경주조선호텔 매각경위에 대해서 자료에 나타나지 않은 답변을 요구합니다."
"이번 매각경위가 잘못되었으며 다시는 앞으로 관광공사의 재산을 매각할 때 이러한 일은 안 하겠다고 분명한 답변을 듣기 위해서 질의한 것입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 경주보문단지 내 골프장과 호텔 민영화 시행에 대해 나름대로 애쓴 입법부의 역할이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관광공사 사장 하대돈의 모호한 '고해성사' 같은 답변조차도 보도한 당시 언론은 없었다.

"보문단지는 사실 투자한 지 4년 만에, 투자가 개시된 지 7∼8년 만에 팔면서 우리나라에서 적어도 부동산이라는 하나의 현상에서 투자된 돈밖에 받지 못했다고 하는 점에서는 실수를 자인합니다". (제11대국회 제114회 제10차 교체위 회의록)

하지만 하대돈 국제관광공사 사장이 스스로 1982년 11월 3일 오후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실수'를 인정한 신군부 정권의 공공골프장 민영화 전모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손정혁 의원의 질문처럼 '그 말 못 할 사연'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은 20년 넘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다. 노무현 정부 때 와서 편찬된 <경북관광개발공사 30년사>를 뒤적여보면, 전두환 독재정권 초기에 시행된 경주보문단지 내 호텔과 골프장 민영화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기록하고 있다.

"보문cc는 비운을 맞이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정권을 창출하는 주도세력이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워 정부투자기관을 정리해왔던 바대로... 전두환이 부임하자마자 조선호텔(경주조선호텔:필자) 매각 결정이 내려졌다. 정부는 조선호텔을 그냥 매각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수익성이 있는 보문cc를 끼워서 매각하는 계획을 세웠다. 공사(경주관광개발공사:필자)가 단독으로 사업을 벌여 완성한 첫 작품인 보문cc를 운영하면서 부지 667,772㎡을 더 확보해 18홀을 더 증설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던 1982년 4월 2,000,009㎡(60만 5천 평)의 보문cc를 라이프그룹에게 거의 빼앗기다시피 넘겨주었다."(경북관광개발공사 30년사, 2005)

덧붙이는 글 | 국제관광공사(1982년 8월 한국관광공사로 변경)의 자회사로 지난 1975년에 설립된 경주관광개발공사는 1999년 경북관광개발공사로 개편했고, 2008년에는 그 개발공사도 민영화 대상이 됐다. 결국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매각되어 현재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로 존속하고 있다.


태그:#민영화, #공공골프장, #경주보문CC, #한국관광공사,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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