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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미국이라는 국가는 하나의 이상 사회처럼 여겨지곤 했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나라, 이민자들에게 관대한 나라,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미국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은 이러한 환상과는 사뭇 다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소득 상위 20% 가구는 2018년 기준 미국 전체 소득의 52%를 벌고 있는데, 이는 1968년의 43%보다 높아진 수치이다.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는 반면에, 빈자들의 소득은 1970년대 수준에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노마드들은 왜 거리로 내몰렸는가
 
'노마드랜드' 겉표지.
 "노마드랜드" 겉표지.
ⓒ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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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하퍼스 매거진> 수록 기사 '은퇴의 종말'을 토대로 3년 동안의 밀착 취재를 통해 출간한 <노마드랜드>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집세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집을 버리고 밴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노마드'들의 삶을 집중 조명한다.

단기 계절성 일자리에 의존하며 최저 임금 수준의 수입을 간신히 벌고 있는 그들을 도로로 내몬 건 터무니없이 빈약한 미국의 사회 복지 시스템이다. 대부분 노년에 은퇴한 나이임에도 노마드들이 받는 사회보장연금은 한 달에 500달러 안팎, 한화로 60만 원 정도이다. 의료 체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미국의 붕괴한 의료 보험은 이 저소득층 노인들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의료비를 지불하도록 요구한다. 오죽했으면 국경 근처에서 살아가는 노마드들은 의료 복지 체계가 정립되어 치료비가 저렴한 멕시코로 넘어가 치과 치료를 받고 미국으로 다시 넘어오기도 한다. 이 웃지 못할 상황을 조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치과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민이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나라에서, 치아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슬프긴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 288p

그들이 밴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법

집 없이 밴에서 살아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주거 공간이 되도록 고안되지 않은 밴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마드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낸다.

밴의 구조를 개조하고 태양 전지를 설치해 전기를 사용하는 건 물론이고, 양동이로 화장실을 대신하며, 공용 샤워실을 찾아 씻는 등 집 없는 생활에 완벽히 적응해 나간다. 그들은 생활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생겨도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해결할 만큼, 이동식 밴 주택을 '집'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홈리스'라 부른다. (중략) 주거 시설과 교통수단을 둘 다 갖춘 그들은 (중략) 자신들을 아주 간단하게 '하우스리스'라고 칭한다. - 14p

두 단어 모두 집을 뜻하는 영어 단어 홈(home)과 하우스(house)에 '…이 없는'의 뜻을 가진 접미사 '-less'를 합성한 단어이다. 그러나 두 단어에는 의미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우스가 단순히 거주하는 물리적인 건물의 의미를 가진다면, 홈은 집의 정서적 친밀감을 더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들은 비록 하우스를 보유하진 못할지언정, 그들의 생활하는 보금자리로서의 홈은 있다는 것이다.

연대와 포용으로 고난을 극복하기

노마드들의 생활 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일은 그들 사이의 협력이다. 노마드들은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해 밴에서의 생활에 대해 소통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한다. 일정한 주거지 없이 생활하며 생기는 난관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 대처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노마드들의 노하우를 커뮤니티를 통해 얻는 것이다.

노마드들의 대표적인 오프라인 모임인 '타이어 떠돌이들의 랑데부'에서는 경찰의 단속 피하기, 추위 문제 해결하기 등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법을 세미나 시간을 통해 공유한다. 비록 서로 떨어진 외로운 부랑자 신세이지만 유대와 연결로 아픔을 이겨내는 이들이 바로 노마드들이다.

노마드들의 온라인 연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차할 곳 찾기 서비스이다. 노마드들이 잠을 자기 위한 장기 주차나 밤샘 주차를 허용해 주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단속반이나 주차장 직원의 경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마드들이 이용하는 휴대폰 앱 중에는 밤샘 주차가 가능한 곳을 정리해 놓은 지도 앱이 있고, 수많은 노마드들이 이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의 연대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고난의 단적인 예시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 누구보다도 최근 두 번의 선거를 겪은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실패한 사회 보장 시스템이 저소득층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들이 깨우치고, 아울러 이 책을 통해 그들이 국가 정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복지 제도는 많이 부족하다. 노마드들은 붕괴한 복지 제도의 피해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연대를 통해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과 밝은 내일을 그려 나간다. 사회적 편견과 고단함을 딛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선례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의 근시안적인 정책 때문에 미국처럼 노마드들을 양산해 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회와 국가는 국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마드랜드>가 영화화 되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무거운 질문이다.

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은이), 서제인 (옮긴이), 엘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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