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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와 경제 성장에 따른 사람들의 의식 전환으로 서서히 '변화'를 맞이하고 있던 노동 시장에 코로나19 팬데믹의 등장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현재 노동 시장은 '역동적'이란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때 '3D업종'으로 거론되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최근 주 52시간 도입과 높은 연봉 덕분에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되었고,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직업으로조차 분류되지 않았던 '배달 대행업' 또한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었다. 플랫폼 기업 간 '쩐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배달대행 기사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세법 등에 '노무를 제공하는 자', '특수 고용직'으로 새롭게 정의되며 최근 가장 뜨거운 직업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자영업은 어떠할까? 그동안 노동 시장의 변화에 그렇지 않아도 큰 압력을 받고 있던 자영업은 이번 코로나 재난으로 거의 '지각변동'으로 표현될 만큼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기사는 이 격동의 시기에 인생 이모작, 삼모작을 경험하고 있는 40대를 통해 현 자영업계와 노동 시장의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인터뷰에 응한 분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힌다. - 기자 말).

용기가 필요했던 재취업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붙은 알바 구직 안내문.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붙은 알바 구직 안내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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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이었죠. 가게 처분하고 그때가 마흔한 살이었거든요. 고민이 안 될 수 없었죠. 이 나이의 날 누가 날 써주기는 할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지금 기술을 익혀 언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직업군인 출신인 도형씨는 전역 후 10여 년간 외식업을 운영했다. 자영업 정리 후 평소 관심이 있던 정비 기술을 배워 재취업을 결심했지만, 실행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소규모 기술업종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초보 기술자에 관행적으로 지급되는 박한 급여(교육이라는 명분에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지급)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구인 광고를 보고 갔는데 써주긴 하더라고요. 이 분야도 구인난인 거죠. 요즘 청년들은 '기름밥' 먹는 직업을 기피 하잖아요. 그래서 버텨보기로 했죠. 초봉은 월 150만 원이었어요. 기술을 전수한다는 명분 때문인 건 알지만, 힘든 일인데 초보 기술자라고 최저시급도 안 준다는 게 좀 억울하더라고요. 일단 꾹 참고 일했죠. 생활비가 부족해서 퇴근 후 배달대행 기사를 병행했어요."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다

도형씨는 자신이 자영업을 정리하고 취업을 선택했던 이유를 짧은 에피소드와 함께 전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프랜차이즈 가게다 보니 본사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떼가는 돈이 점점 많아지고, 인건비도 매년 계속 오르고 언젠가부터 아내와 저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문제는 둘 다 가게에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들이 방치되는 거죠. 가족과 잘 살고자 했던 일이 오히려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상황을 돌파하고자 간판을 세 번이나 바꿨어요. 품이 덜 들 것 같은 음식업종을 찾아 재창업을 거듭한 거죠. 창업비가 저렴한 신생 프랜차이즈로 재창업도 해보고 그동안 쌓은 경험으로 독립 자영업자로 변신도 해 봤지만, 판단 착오였죠.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아이 엄마는 계속 가게에 나와야 했고 저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오히려 병만 얻었죠. 그래서 정말 결단을 내려야 했죠. 물론 취업하면 오히려 경제 사정이 더 어려워질 거라는 건 예상했어요. 어딜 가도 최저시급 또는 수습 기간이라고 그보다 못 받을 테니 말이죠. 그러나 적어도 아내의 손까지 빌릴 이유는 사라지는 거고 부족한 생활비는 당분간 투잡으로 메꾸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주말 하루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실행에 옮겼죠. 자영업자일 때는 주말에 감히 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거든요."


사람이 귀해진 세상이 오다

현재 급여 수준과 만족 여부를 묻는 내 질문에 그는 아래와 같이 말을 이어갔다.

"현재 2년이 채 안 되었는데 급여는 300여만 원으로 두 배 정도 올랐어요. 누군가는 짧은 경력에 비해 많이 올랐네, 라고 할 수 있지만 일이 힘들어요. 주 6일 하루 11시간은 일해야 하거든요. 주 52시간은 남의 이야기죠.

최근 뉴스를 보니 서울은 주방 알바 시급이 1만 2천 원이 넘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거 보면 박탈감이 좀 들죠. 그래도 난 기술자인데, 이 월급도 그냥 오른 게 아니고 제가 올려 달라고 요구한 거예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최근 산업 현장을 넘어 자영업계까지 확산한 구인난으로 옮겨 갔다. 관련하여 40대 초보 기술자가 취업할 수 있었던 것과 빠른 급여 인상에 구인난이란 요소도 작용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그렇죠. 그 덕분도 있죠. 그 때문에 취업의 기회를 잡은 것 같고, 초보 기술자에 나이도 많은 저에게 반신반의하던 사장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버티니까 지금은 내가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길까 봐 눈치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급여 인상 요구도 들어준 거라고 봐요."

사실 이날 대화에는 도형씨 외에도 두 명의 40대가 더 참여했었다. 이 분들 이야기는 지면의 한계상 다른 회차에 전달할 예정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핵심은 도형씨와 다르지 않았다.

이들을 통해 최근 40~50대들의 인생 이모작 삼모작은 '막무가내 창업'보다는 산업 현장의 노동자 또는 유통 현장의 특수 고용직으로 다양화되고 있음을 느꼈고 이런 변화에는 사람들의 의식 전환이 일조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의식 전환이란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시되는 요즘, 이를 유지하기에는 경험상 창업보다는 취업이 좀 더 유리하다'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근저에는 달라진 노동 환경 즉, 개선된 대우(물질적, 정신적)라는 요소가 깔린 것으로 보였다.
 
한 배달 노동자의 모습
 한 배달 노동자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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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의 경험담은 아직은 일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얼마 전 TV에 출연한 유명 오너 셰프의 발언 또한 바로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당시 진행자는 그에게 '사장으로서 직원들에게 잔소리도 하냐?'라는 질문했고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하긴 하죠, 그런데 요즘 사람이 귀해서 눈치가 보여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된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등 국제 뉴스로 전해진 첫 번째 소식은 바로 '구인난'이다. 인류사에 등장했던 '전염병'은 농민이 귀족과 대등한 힘을 가지고 봉건제를 무너뜨리는 등 인류문명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 한다. 이번의 코로나19 또한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물론 이런 현상에도 명과 암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자본에 천대받던 노동자를 조금은 귀하게 여기는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돈보다는 나와 가족의 행복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그 덕분에 도형씨처럼, 그동안 '불나방'에 비유되며 부정적 사회 현상으로 취급되던 자영업 창업보다는 재취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태그:#자영업, #사오정, #재취업, #구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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