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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판타지가 대세야. 원래 현실이 팍팍하면 판타지물이 뜨는 거라고."

동화 쓰기 모임에서 가끔 들었던 말이다.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건지 일상에 대한 소소한 동화보다 시간 여행을 하거나 신비한 물건이 등장하는 동화가 인기다. 처음 동화 수업을 들었을 때, 같이 수업받는 사람들에게 판타지 동화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만복이네 떡집>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김리리 작가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김리리 작가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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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가 여섯 권 시리즈 전체를 합쳐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다는 기사를 봤다. 국내 순수 창작 동화가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달성하다니. 게다가 책 외에도 흥미 있는 매체가 넘쳐나는 이 시기에 말이다. 책장에서 <만복이네 떡집>을 꺼내 다시 한번 읽어봤다.

만복이는 마음과 달리 행동과 말이 거칠게 나가는 아이다.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말을 뱉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만복이 앞에 어느 날 '만복이네 떡집'이 나타난다. 떡집에서 파는 떡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눈송이처럼 마음이 하얘지는 백설기, 달콤한 말이 술술 나오는 꿀떡, 재미있는 이야기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무지개떡.

떡값은 돈이 아닌 착한 일 또는 아이들의 웃음이다. 오래오래 살게 되는 가래떡을 먹으려면 무려 아이들 웃음 만 개를 모아야 한다. 겨우 착한 일 한 개를 떠올리고 그에 해당하는 떡을 먹은 만복이. 만복이의 행동이 변하자 덩달아 주변 사람들의 행동도 변한다. 칭찬과 인정을 받는 만복이는 다른 사람이 된다. 만복이의 결핍이 해소되자 떡집의 이름이 바뀐다. '장군이네 떡집'으로.

자연스럽게 2권에는 장군이 이야기가 나온다. 2권 마지막에도 '소원 떡집'이라는 바뀐 떡집 이름이 등장해서 다음 권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마법의 떡을 파는 떡집이란 플롯이 반복되면서 자칫 식상할 수도 있을 스토리를 각 권마다 다양한 변주를 주어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3권 '소원 떡집'에는 떡집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이유와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꼬랑쥐가 결핍이 있는 아이들에게 떡을 배달하는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작가는 원래 시리즈물로 엮을 계획이 아니었는데 '속편을 써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속편을 썼고, '여자 주인공은 왜 없느냐'라는 이야기에 '양순이네 떡집'을, 반려견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달콩이네 떡집'을, 거기에 이어 길고양이 이야기 '둥실이네 떡집'까지 쓰게 되었다고 한다('아이들 소원 이뤄주는 떡집 얘기로 어느새 100만부' 조선일보 22. 5. 17일 기사 참고).

아이들의 주문 제작에 의한 시리즈물이라니. 아이들이 이 떡집 시리즈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이렇게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걸까. 전체 시리즈를 살펴보며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은 왜 떡집 이야기에 꽂혔을까

우선, 주인공의 캐릭터가 명확하다. 장군이는 잘하는 게 없고 잘 되는 일도 없는 게 늘 불만이고 양순이는 수줍어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게 고민이다. 이 시리즈의 큰 장점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와 상황이 매 권 등장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대리만족과 쾌감을 느낀다.

또한 '~했거든', '~였어', '~했던 거야' 등의 입말체를 써서 흡사 전래동화를 들을 때처럼 스토리에 푹 빠지게 된다. 게다가 등장하는 떡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운율이 맞아 읽는 맛(말맛)이 있다. '집중력이 팍팍 높아지는 팥떡', '용기가 용솟음치는 용떡' 등 떡의 이름을 읽을 때마다 감탄한다.

떡을 먹은 후 주인공이 겪는 긍정적인 변화도 재미있다. 독자는 '이 떡을 먹은 후엔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 주인공이 어떻게 변할까'를 예측하며 읽는다. 여러 떡을 먹고 다양한 사건을 겪은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고 떡집의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 바뀐다. 아이는 더 이상 떡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계속 다른 떡을 원하며 욕심을 부리는 욕심쟁이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살게 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든든하다.

저학년 동화지만 초등학교 5학년 딸에게 자기 전, 매일 한 권씩 읽어주었다. 글밥이 적어 뚝딱뚝딱 금세 읽었다. 아이는 책의 내용에 더 나아가 자신이 하고 싶은 상상을 한다.

"엄마, 만복이네 떡집에 만복이가 아니라 장군이나 양순이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엄마, 떡의 효능은 며칠이나 가는 걸까? 평생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예뻐지는 떡이 있다면 먹고 싶은데 떡 먹고 일주일 예뻐졌다가 그다음 원래대로 돌아오면 난감하단 말이지."


생각해 보니 책에 다양한 효능을 가진 떡들이 나오긴 하지만 돈이 많아진다든지, 예뻐진다든지 하는 눈에 보이는 효능은 없다. 용기를 주고, 말이 잘 나오게 도와주고, 마음이 하얘지게 도와주는 효능을 가진 떡들. 아이가 원하는 성격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하는 효능들이다.

그리고 그 효능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아이는 떡의 기운을 빌어 그렇게 행동해 보고 그 성취의 경험으로 계속 그런 행동을 유지하게 된다. 매일 황금알을 낳는 황금 거위 같은 마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얼마 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154화. '꾼'특집)에 소설가 김영하가 나왔다. 김영하는 책을 읽으며 자기 삶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것 자체가 귀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모두 했던 '사실 나는 주워온 아이가 아닐까, 나는 부잣집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현실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책을 보며 누군가의 삶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삶이 특별해지고, 견딜 만해진다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만 생각할 때 가장 괴롭다고.

사람들은 누구나 결핍이 있다. 결핍이 있는 아이들이 떡집 시리즈 주인공들에게 공감하고, 주인공들의 성장을 보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쾌감을 얻는다.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삶에서 잠시 떨어져 위로를 받는다. 김영하 작가는 앞선 말에 이어, 지금의 삶은 많은 삶 중 하나고, 나밖에 만들어 갈 수 없는 이야기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내가 만들어 갈 수밖에 없는 내 삶을, 내 이야기를 내던지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잘 꾸려나가 보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김리리 작가의 '떡집 시리즈'를 한 번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참고로,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만복이네 떡집 1~6권 세트/아동도서+노트3권 증정 - 만복이네/장군이네/소원/양순이네/달콩이네/둥실이네

김리리 (지은이), 비룡소(2022)


태그:#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100만부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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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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