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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이후 나의 주력 이동 수단은 킥보드다. 전기의 힘으로 돌아가는 킥보드가 아니라 두 발로 땅을 차서 나가는 수동 킥보드를 열심히 타고 있다. 지난 8년 간 거의 매일 우리 가족을 실어 날랐던 자동차는 주차장에 멈춰 있다. 얼마 전에는 배터리가 방전되어 보험사 출동 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아내는 걸어서 직장에 출근하고, 아이들도 엄마 손을 잡고 뚜벅뚜벅 학교에 간다. 집에서 주로 생활하는 나는 열흘에 한 번 도서관에 가는 경우가 아니면 자동차 시동을 걸 계기가 좀처럼 없다. 주차장을 찾고, 남은 연료를 점검하는 일이 은근히 신경 쓰이고 귀찮았는데 요즘은 마음 놓고 지낸다. 

킥보드 타기의 즐거움
 
아이들만 누리기에는 킥보드의 즐거움이 너무 크다. 어른들도 도전해 보자.
 아이들만 누리기에는 킥보드의 즐거움이 너무 크다. 어른들도 도전해 보자.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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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자의 생활 반경은 극히 제한적이다. 다른 휴직자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집 주변의 나지막한 산, 식료품점, 문방구, 편의점, 아이들 학교를 아우를 수 있는 반경 오백 미터가 일상의 주요 무대다. 걷기가 가장 무난하지만 조금 빠르게 이동하고 싶을 때, 아이들과 운동 겸 놀고 싶을 때 킥보드만 한 이동 수단이 없다. 

휴직 전에는 킥보드를 이동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장난감쯤으로만 치부했다. 예전에 초등학교 담임교사였을 무렵 종종 킥보드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이 있었다. 교문 앞 도로 사정이 열악한 동네라서 가급적 걸어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곤 했다. 아이는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걸어 다니면 너무 오래 걸린다 말이에요. 자전거는 없고."

만일 지금 내가 담임이라도 반대했을까. 역시 그랬을 것 같다. 정 킥보드 등교가 하고 싶으면 안전 헬멧 쓰고, 경사 없이 평평한 땅,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없는 장소에서만 타는 것이 좋겠다고 심각한 얼굴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담임교사라는 역할은 재미보다는 안전을 추구해야 하니까. 그러나 휴직자 신분으로서 성인인 나 혼자만 책임지면 되는 상황에서 킥보드는 무척 즐겁다. 

킥보드는 자전거처럼 부피가 크지 않고, 가까운 거리를 속도감 있게 달려 나갈 수 있고, 보기보다 운동량이 상당하다. 아이들이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 전적으로 동감할 수 있다. 모두가 출근해서 텅텅 빈 아파트 단지나, 자전거 도로에서 홀로 킥보드를 유유히 타면 매우 유쾌하다. 바퀴 달린 것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다. 그러던 중, 흠칫 놀랄 만한 일을 겪었다. 

하교 후 아이 둘을 데리고 학교 놀이터에 있는 짚라인(zipline)을 타러 갔다. 짚라인은 두꺼운 금속줄에 고무 의자 같은 걸 달아서 사람이 타고 내려오는 기구인데 동네 애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나와 두 딸은 킥보드를 보도블록 옆에 세워두고 짚라인 줄을 섰다. 나는 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가 아직 여섯 살이라 탑승을 도와주기 위해 같이 있었다. 우리 앞에는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차례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저건 무슨 브랜드야?"
"몰라. 중국 거일 거야. 구려."


나는 그게 무슨 맥락인지 알 수 없었다. 대화의 진실은 조금 있다가 밝혀졌다. 짚라인을 다 타고 내려온 남학생 중 한 명이 줄을 서기 전 킥보드를 타고 주위를 돌았다. 그러자 다른 남학생이 랩이나 노래를 하듯 중얼거렸다. 

"OO이 킥보드는 마이X로 킥보드. 유명한 킥보드. 중국 거랑은 달라. 좋은 브랜드~(어쩌고저쩌고)"

나는 그제야 브랜드 운운하는 앞선 대화가 킥보드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아챘다. 당연히 중국제 어쩌고 하는 킥보드는 우리 딸의 킥보드를 두고 한 말이었다. 주변에 다른 킥보드는 전혀 없었으니까.

1학년인 딸은 상황이 이해되지도 않고, 브랜드의 사정을 모르니까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나는 혼자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어린이에게 무례하다고 주의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숨을 고르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내가 오해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남학생의 킥보드 발판에 인쇄된 로고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쇼핑몰에 등재된 가격대나 블로그에 올라온 사용기 등을 보니 킥보드 카테고리에서는 상위 등급으로 쳐주는 브랜드가 맞았다. 수도권 일대에 오프라인 매장도 여럿 있었다. 20만 원이 넘는 킥보드와 양산형 저가 중국제 킥보드의 구분이 대화의 요지임이 분명했다.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교실에도 값비싼 운동화를 신는 아이들이 왕왕 자랑을 한다. 이 신발이 얼마나 희귀하며, 중고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사실을 신나게 떠벌린다.

내가 특별하다는 느낌이 너무 커서 타인이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나이인 것이다. 자랑이 지나쳐서 듣는 사람이 불쾌함을 호소할 지경이 아니면 담임인 나는 그저 내버려 두었다. 좀 지나면 제풀에 꺾이겠지 하고 말았다.

나는 이번에도 모른 척했다. 남자아이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딸이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학년에게는 2백만 원짜리 킥보드가 눈앞에 있어도, 바퀴 굴러가는 놀잇감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나이가 어려서 좋은 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바란다

그 아이들이 말한 대로 우리 딸의 킥보드가 중국산인지 국내산인지 모르겠으나, 저가형인 것은 맞다. 교직원 복지몰 사이트에서 상단에 뜬 제품을 별 고민 없이 구매했으니까. 가격도 5만 원 안쪽이다. 이후 몇 년간 아무 문제 없이 즐겁게 타고 다녔다. 성능에 문제가 없고, 디자인도 무난하다.

딸에게 내가 만약 "저 오빠가 타고 있는 킥보드가 마이X로 킥보드야. 잘 나가는 브랜드래. 비싼 거야. 다음에는 저것 사줄게"라고 하면 킥보드 타기가 즐거울까? 글쎄, 결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딸은 다른 사람의 킥보드 브랜드나 흘깃거리지 않을까. 무의미한 킥보드 상품 세계의 위계를 따지면서 말이다. 브랜드나 가격을 비교하고 신경 쓸 시간에 발을 한 번이라도 더 굴려 질주하는 편이 훨씬 즐겁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부터 과도한 '장비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네 뒷산 오르면서 히말라야에서 써도 될 법한 등산 장비 풀세트를 갖춘다거나, 백핸드 연습도 안 된 상태에서 페더러 라켓과 테니스화를 신는 아마추어 동호인이라든지. 이런 모습을 보면 어딘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취미 장비를 갖추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이므로, 내가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입장은 못 된다. 그렇지만 남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장비에 몰입해서 타인의 수수하고 소박한 장비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는 그리 달갑지 않다. 

나와 두 딸은 공원에서 신나게 킥보드를 몰았다. 고급 브랜드 제품에 비해 바퀴 베어링의 부드러움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지만 아무렴 어때, 바닥을 한 번 더 박차면 해결된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동안 해 질 녘 바람이 얼굴에 흐른 땀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한정판 운동화를 검색하기에 앞서 아무 신발이나 신고 일단 뛰어보는 애들이었으면 좋겠다. 신상 제품을 검색하고 부질없는 희귀도를 비교하느라 한 번뿐인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우선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즐겨봤으면 한다. 

문득 마이X로 킥보드를 탄 남학생에게 고마워진다. 덕분에 본질에 충실하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다시 한번 떠올리고, 실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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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교육과 환경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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