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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 높이 위 굴착기에서 농성 중인 송경동 시인
 2m 높이 위 굴착기에서 농성 중인 송경동 시인
ⓒ 기륭전자 노조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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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거리와 광장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입법의 공간입니다. 영광이죠."

'거리의 시인'. 송경동 시인에게 붙은 이 수식어에 대한 호불호를 물었더니 되돌아온 대답이다.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 이은 그의 시집이 출간됐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출간).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그를 만났다. 시집 4편을 펴낸 50대 중반의 송 시인이 여전히 거리에 남은 까닭이 궁금했다. 소외된 노동현장, 정규직도 아닌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현장을 지킨 그 힘의 근원과 강도를 알고 싶었다.

[첫 시] 봄비... 나의 손을 잡아줬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단다. 국어선생님이 내준 숙제로 <봄비>라는 시를 썼는데, 벼락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용은 한 구절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악동이고 문제아였던 제가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면서 "그 뒤에도 시를 쓰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칭찬이 그리워서 가끔씩은 시를 끄적였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내가 살고 싶어서 시를 붙잡았습니다. 청소년기에 저의 삶은 바닥이었어요.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소년원에서 나온 뒤에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떠돌았죠.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시를 붙잡았습니다. 시는 저의 이야기를 유일하게 들어주는 친구였어요."

시작은 지독한 고독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사회와 역사를 알게 됐고, 소외된 사람들의 서글픔과 아픔, 이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서 "결국 사랑에 대한 갈구, 우리 모두가 사랑받고 존중받는 공동체였으면 좋겠다는 열망과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나의 손을 잡아준 게 시였다"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도, '너 이 자식, 예전에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왜 다르게 살려고 해'라고 질책하는 최대 감시자"라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낸 시집에서 현재 시인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시로 <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을 꼽았다.
 
생각해보니 조명이 집중된 자리나
특출하고 빼어난 것들만 좇아 살아온
내 뒤안길이 모두 그렇게 가벼웠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저급한 인간인지를
내가 얼마나 얄팍하고 얍삽한 인간인지를

- <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 중에서
 
그간 열정적으로 거리에 섰던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기자로서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이렇듯 그는 스스로를 견책해왔다.
 
송경동 시인의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집 표지
 송경동 시인의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집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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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 풍경] "대통령상? 영장이라면 모를까"

전남 벌교 출신인 송 시인은 2001년에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는 "그간 많은 사건에 연루되었다/더 연루될 곳을 찾아 바삐 쫓아다녔다"(<연루와 주동> 시 중에서). 그 대가는 연행과 구속이었다.
 
축구 선수도 야구 선수도 아닌 내가
국가로부터 여섯 번씩이나
헹가래를 받아보았으니 원 없다

'저 새끼, 연행해'... 진압조가 올라와 밀쳐 던진 나를
아래에서 토스 받아 럭비 선수들처럼 뛰던 경찰들

- <잊지 못할 여섯 번의 헹가래> 중에서
 
그를 더 괴롭혔던 건 검찰이었다. 기소된 건만 20~30건은 된단다. 그는 "한 재판이 종료되려면 7~8년씩 걸리는데 그 자체가 엄청난 탄압"이라면서 "재판 받는 게 일상이 되다보니 간이 부었는지 어떤 날은 결심 선고 날인데도 까먹고 못간 적도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20년간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치열했고, 사회적 여파도 상당했기에 운동권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그 와중에 시집을 냈고, 신동엽 창작상, 천상병 시문학상 등도 수상했다. 이쯤 되면 시적 성취에 대한 평가에 더 욕심을 낼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 미당 서정주 문학상을 발로 걷어찼다. 2021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상을 거절했다.
 
얼마 전
대한민국 예술상을 받아보라고 연락이 왔다
대통령상이라고 했다 영장이라면 모를까
김진숙이나 복직시키지 비정규직 양산법이나 없애지
개성공단 열고 남북열차나 잇지
몇년 전 약속했던 차별금지법
예술인권리보장법이나 통과시키지
단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안 받겠다고 했다

- <대한민국 예술원 풍경> 중에서

그는 "한쪽에서는 서정주를 최고의 시성으로 추앙하는데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했고, 80년 광주를 짓밟은 전두환에게 '일해'라는 호를 지어주며 탄신 송시까지 쓴 인물"이라며 "중앙일보가 그를 기리는 문학상으로 문인들을 줄 세우고 문단을 어지럽혔는데, 제가 거부한 뒤에 사회적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상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통령상인 대한민국 예술상을 받는 건 가문의 영광일 수 있지만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청와대 앞에서 한진중공업 김진숙 동지의 복직을 요구하며 47일 동안 단식투쟁을 마친 직후에 제안이 왔다"면서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특별법을 요구하며 싸우는 문화예술인들, 차별금지법 제정과 비정규직 악법 철폐를 외치는 이들을 놔두고 대통령 상 받으러 가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인
 송경동 시인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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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숲속 홍길동' '윤활유'...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시인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었다.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다>는 시에는 그가 지금도 닉네임들로만 기억하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숲속 홍길동'은 발전소 노동자 정규직이었는데, 안정된 직장을 팽개치고 카메라를 들고 이주노동자·장애인 투쟁 현장 등을 전전하며 다큐를 찍었다. 생활고에 허덕이던 그는 인천 반지하 셋방에서 자결했다. 그에게 남은 돈은 2700원.

성씨를 모르는 '혁'도 허름한 여인숙 방에서 피를 쏟은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용산철거민 참사 당시 빈집 점거를 함께 했던 '촛불전국연대' 운영진이었고, 2009년 대한문 앞 노무현 분향소를 최초로 짓고 시민상주 역할을 했던 이다. 만성혈전증으로 하혈을 해서 기저귀를 차고 노점을 한다는 혁은 죽기 얼마 전, 송 시인에게 전화를 했단다.

"감을 떼다 팔아보고 싶은데/충북 영동에 아는 사람 있으면/소개 좀 해달라고".

마지막 등장인물은 '윤활유'다. "2008년 광우병 촛불항쟁 당시/항쟁의 중심이었던 '안티MB' 카페지기였다/항쟁 후에도 MBC정상화 투쟁 등/촛불 시민운동의 주요 리더로 현신했다"는 이다. 그는 "시간이 흘러 일당 칠만원 받으며/일요일도 없이 조경 일을 다니"다 간암으로 사망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가
왁자지껄 한자리에 모였던
잔치 같던 날도 있었다
2008년 10월 21일
기륭전자 앞에 기습적으로 망루를 쌓고 오를 때
숲속 홍길동은 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뛰어다녔고
혁이는 건설일용노동자 출신답게 망루 위로 뛰어 올라가
수많은 채증 카메라 앞에서 구속을 각오하고
아시바를 받아 쌓던 단 한 사람이었고
윤활유는 치고 들어오는 용역깡패들을 막아서다
원투 펀치에 한 눈이 피투성이
실명되는 부상을 입고 앰블런스에 실려갔다
나도 그 자리에서 표적 연행되었다가
구속영장 기각으로 간신히 나오긴 했지만
나는 지금껏 비겁하게 살아남았고
오늘도 여전히 비루하게 살아가고 있다

-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시에서 발췌
 
한 편의 기록 영화같다. 송 시인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썼다는 시, 지금도 눈물이 나서 차마 읽을 수 없다는 시다.

[시낭송] "추모시 만큼 쓰기 힘든 시가 없다"
 
13일 오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송경동 시인의 손을 꼭 잡고 유성기업 고 한광호 노동자의 '꽃상여 행진'이 시작되는 서울시청앞 분향소에 도착하고 있다.
▲ 백기완과 송경동 13일 오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송경동 시인의 손을 꼭 잡고 유성기업 고 한광호 노동자의 "꽃상여 행진"이 시작되는 서울시청앞 분향소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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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송 시인을 아끼고 좋아했다. 백 선생은 송 시인과 함께 찾아간 기자에게 "송경동, 나는 이 자식이 쓴 시가 가장 좋아! 최고의 시인이지"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2019년 2월 19일, 송 시인은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추모 헌시를 낭송했다. 그의 목소리가 서울광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내 배지만 부르고 내 등만 따스하려 하면
몸뚱이의 키도 마음의 키도 안 큰다 하셨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줌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하느니
'딱 한발 떼기에 일생을 걸어라' 하셨죠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야 한다 하셨죠

- <백발의 전사에게> 중에서

백발의 갈깃머리를 휘날리며 거리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해방을 외쳤던 백 선생이 살아 돌아오신 것 같았다. 그의 시집에는 여러 편의 추모시가 들어있다. <아무도 그 새벽을 떠나오지 않았다>(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 7주기 추모식), <세월호를 인양하라>(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제), <진상을 규명해야지요>(고 김용균 청년비정규직 영결식) 등이다.

"추모시는 전선시입니다. 서정시나 연예시로 분류되는 시들보다 좀 딱딱하고 목소리가 높아서 시의 영역에서 밀어내려는 경향도 있지만, 모든 좋은 시는 쓰러져가는 것, 죽어가는 것, 사라지는 것, 묻혀가는 것들의 가치를 담습니다. 추모시는 사회적 주검까지 담아야 하고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어야 하기에 오히려 쓰기 힘든 시이기도 하죠."

추모제나 영결식에서 낭송한 그의 애도시는 100여 편에 달한다. 그는 또 "문예지들은 아무래도 제가 불편한지 청탁이 없는데 오히려 1년에 20여 편 정도의 현장 낭송시 청탁이 들어온다"면서 "무대 위에 올라가 낭송을 해야 하는 투쟁시인데, 그간 100여 편 정도 썼다"고 말했다.

그가 이런 투쟁시를 낭송하는 자리는 기성 문단에서 볼 때 시적인 공간이 아니다. 김지하 <오적>, 박노해 <노동의 새벽>, 백무산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등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최루탄과 지랄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수많은 투쟁시가 낭송되기는 했다. 시를 공유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시를 혼자 읽는 시대이다. 광장에서 읽히는 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광장과 거리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송경동 시인이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6월항쟁 25주년행사 국민추진위 주최로 열린 '2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송경동 시인이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6월항쟁 25주년행사 국민추진위 주최로 열린 "2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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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시대] "전면적, 총체적인 후퇴... 싸움의 전선 복구시켜야"

문학평론가 김명환 서울대교수는 이 시집에 쓴 해설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이후 "그(송경동)가 외면하지 못할 사건들이 터질 것이고, 또 어떤 풍파에 휘말리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에게 '윤석열 정부에서의 노동, 어떻게 달라질 것 같냐'고 물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부터 성토했다.

"노동법 개악 등으로 자산가 계급들만 행복한 재벌공화국을 완성시키려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반기를 들었던 민중들이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시대적 과제였죠. 하지만 여러 적폐청산 과제를 외면하며 촛불항쟁으로 어렵사리 세운 공공의 가치와 윤리도 허물어버렸습니다. 이게 윤석열 정부를 불러왔죠. 꺼리길 것 없이 취임식 앞자리에 재벌 총수들을 즐비하게 앉히고 특별만찬까지 베풀고... 윤 정부가 아주 기고만장하게 날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줬죠."

그는 "윤석열 정부는 약탈적 돈의 가치만이 최상이자 전부인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전선을 전면화, 총체화하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그나마 획득해 온 평화와 평등의 가치 지대를 급격히 허물고, 초토화시키려 할 것"이라면서 "사회적 세력이 약화됐지만, 무너진 저항선을 시급히 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쓰기에 앞서 행동하는 시인, 시처럼 살아가는 시인. 이런 그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4.19 혁명 직후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고 외쳤던 김수영 시인, 그가 남긴 이 말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송 시인은 가장 닮고 싶은 시인으로 해방 이후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등의 시집을 펴낸 혁명시인 김남주를 꼽았다.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돼 모진 고문을 당했고 15년 형을 선고받았던 김 시인의 시 중 송 시인과 함께 떠오르는 4행의 짧은 시는 '종과 주인'이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주인은 종을 깔보자/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렸다/바로 그 낫으로"

'거리의 시인' '광장의 시인'으로 불리는 송 시인은 사회적 부조리와 불의, 불평등에 맞서며 지금도 온몸으로 시를 쓰고 있다. 김해자 시인은 이런 '투사 시인'의 시집 뒤표지에 그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우리 사회에) 한낮의 거리에서 한바탕 큰 꿈 꾸다 간 전봉준과 대작하며, 이제 대놓고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다는 이런 시인 몇쯤 있어야 이 시대의 울화증 삭이지 않겠나."
 
▲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거리의 시인' '투사 시인'으로 불리는 송경동 시인을 인터뷰했다. 송 시인은 최근 4번째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출간)를 냈다. 시인의 치열한 삶과 서정적 투지가 빛나는 시, 그리고 길거리 싸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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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송경동 (지은이), 창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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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들과 함께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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