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5 13:56최종 업데이트 22.05.25 14:02
  • 본문듣기
24절기 중 소만(小滿)이 되면 모내기가 시작된다. 어진 왕의 최고 덕목은 물 관리라 했다는데 1년 농사의 가늠은 물의 풍요를 전제로 하니 봄에 오는 비는 생명줄이다. 과거 오로지 자연에만 의존해야 하는 천수답일 때에는 논마다 둠벙(웅덩이의 방언)이 있었지만 점차 수로를 만들거나 관정을 파 농사를 하고 있다. 
  

못자리 만들기(옥천군 동이면 지양리) 연로한 주민들이 대나무 골재로 뼈대를 세우고, 비닐을 씌우는 옛날 방식의 못자리를 하고 있다. ⓒ 최수경

 
방조제나 양수장 등 대규모 관개사업이 발달하면서 윗 논과 아랫 논의 물대는 순서는 무의미해졌다. 그러나 요즘도 논에 물대는 시기에는 갈등이 따른다. 엊그제까지 못자리를 같이 만든 이웃사촌들이 논 물대는 일로 언쟁을 한다.

도시는 먹는 물이 문제 
  

모내기 한 논에 비친 아침 해(서천군 시초면) 올해처럼 가물 때에는 물 끌어와 논물 대는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자칫 모내기가 늦어질까 봐 전전긍긍이다. ⓒ 최수경

 
농촌이 농업용수로 시름한다면, 도시는 먹는 물이 문제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안전한 물 사용에 관심이 높아졌다. 먹는 물과 관련해 수돗물 불신은 불안감으로 이어져 가정용 정수기가 보편화되었다. 정수기는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필수 가전제품의 반열에 올랐다.

정수기는 정기 관리가 필수다 보니 대개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시기를 정하는 약정 계약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직접 필터를 관리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신제품 할인 혜택 등이 있어 계약 기간이 끝나도 렌털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화된다.
  

먹는 샘물이자 생활 용수로 사용되던 동네 공동우물 공동관리를 통해 마을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고,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 공동우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의 공동우물. ⓒ 최수경

 
가정용 정수기는 기본적으로 몇 개의 필터로 수돗물 냄새와 물에 포함된 유해 물질을 걸러내는 시스템이다. 정수기를 거치면 수돗물이 육각수, 자화수가 되어 몸에 좋다고 광고를 한다. 또 기능이 고도화되면서 미세 플라스틱도 거르고, 유해 세균을 99.99%까지 살균한다고 광고한다.

사용자는 이를 검증하기 어려우니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수 능력은 미네랄이라고 할 수 있는 광물질까지 걸러낼 수밖에 없다. 물속에 있는 미네랄과 미량의 원소는 물 맛에 영향을 주며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수 원소를 제공해 건강에 도움을 준다.
  

가정에서 생활필수품이 된 정수기 우리 몸의 95%가 물로 되어 있는 만큼 물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 최수경

 
내가 내는 물이용 비용을 계산해 봤다. 우리 집 수도세는 1만 5천 원 정도, 정수기 렌털 비용은 3만 3천 원, 여기에 24시간 작동하는 정수기 전기료를 감안하면 월 5만 원 이상이다. 며칠 집을 비워 물 사용을 안 해도 지불해야 하는 고정비용이다.

먹는 샘물의 경우 지하수로 지층대 내의 광물질들과 접촉하고 반응해 수돗물보다 많은 광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먹는 샘물도 고정비용이 3만 원 이상이다. 양산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다.
  

배달해 마시는 먹는샘물 대형 생수통은 페트병 생산과 폐기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 최수경

 
샘물 떠먹던 시대에서 수돗물 받아먹는 시대를 거쳐 정수기와 먹는 샘물 시대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수돗물이 만들었다. 과거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과 같은 상수원 오염 사건으로 수도관이나 물탱크 관리 등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인천 수도관에서는 2019년에 검붉은 녹물이, 2020년에는 애벌레가 나왔다.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관리 노력과 홍보에도 이런 일로 인해 시민들은 수돗물 음용을 꺼리게 된다. 내 건강을 위해서라면 물에 더 많이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것을 기회로 기업은 수돗물과 차별화해 안전하고 편리하며 디자인까지 다양한 먹는 물을 팔고 있다. 
  

대전의 수돗물 '이츠수' 대청호 광역상수원을 원수로 한 음용수 수도물을 홍보하고 있다. ⓒ 최수경

 
정부와 지자체가 수돗물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국 먹는 물의 관리는 개인 몫이 되었다. 과도한 가계 비용이 발생하고, 플라스틱 양산으로 인한 탄소 배출 비용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다. 
 

대청댐 전경 대전·세종·충남북 일원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80년에 건설된 대청댐 ⓒ 최수경

 
정부는 수량 확보를 위해 대규모 댐을 만들고, 오염원을 원천 차단하도록 토지를 매입하는 등 수변 구역을 규제하고 있다.

수변 구역 주민들은 정부가 아예 물가 사람들을 쫓아내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한다고 탓한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맞물려 수변 구역의 애환은 수돗물 혜택을 받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대청호로 인해 육지 속의 섬이 된 옥천군 군북면 막지리 마을 도선은 마을 주민들이 가장 쉽고 빠르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 최수경

  

수몰지역의 애환을 그린 시(충북 옥천군 군북면 막지리) 경로당 한 편에 걸린 마을의 역사를 드러내는 시 ⓒ 최수경

   

계곡수를 이용한 간이상수도 상수도관이 들어오지 않는 지역은 계곡수를 받아 마을 상수도로 이용한다. ⓒ 최수경


정부는 수변 벨트를 조성해 불법 농경을 막아 수생태계를 살리고 수질을 보호하려고 한다. 또 하천 유입 지점에 수변 저류지를 조성해 비점오염원(넓은 면적에 걸쳐 다수의 공급원에서 오염물질이 배출되는 곳)을 제거하고, 마을 단위 하수종말처리장과 오수처리 시설들을 설치한다. 농업에도 비점오염 예방을 위한 최적관리 기법을 도입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환경부에서 조성한 수변 정화습지(옥천군 지오리 서화천 생태습지) 대청호로 유입하는 소하천에 대형 저류지들을 만들어 비점오염원 감소 등 수질관리를 한다. ⓒ 최수경

 

풀깎이와 오리농법을 시작하는 논(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풀깎이와 오리농법 등 친환경 농사는 몇 배의 품이 들어간다. 수변지역 주민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물 이용에 있어 더 신중해야 한다. ⓒ 최수경

 
얼마 전 성주를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낙동강 변에 펼쳐진 대단위 참외 생산 단지를 보고 놀랐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3할을 담당하는 곳인 만큼 '참외가 난다'라기보다는 '참외 공장'에 가까웠다.
 

강변의 대규모 비닐하우스(성주군) 지하수 사용량이 가장 많은 대단위 시설재배지는 물 관리에 따른 갈등이 잦다. 물이 타오르는 불을 끄는 것이라는 음양오행과 다르게 물이 불을 만드는 셈이다. 물 관리와 물 이용에 지혜가 필요하다. ⓒ 최수경

 

비닐하우스마다 수분받이용 양봉 집이 나란히 있다. 벌의 수분 활동은 생태계 서비스에서 지지 서비스의 하나로 인간과 생물이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종의 번성 그리고 그 종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 벌들이 참외농가의 수분받이로 이용되면서 일회용 도구가 됐다. ⓒ 최수경

 
수없이 늘어선 비닐하우스마다 관정을 파고 지하수를 뽑아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 수자원 정책은 댐 건설에 의한 지표수 개발 중심인지라 지하수는 대체나 보조 자원에 불과했다. 1993년 지하수법 시행까지 지하수는 땅 주인 맘대로였다. 난개발로 퍼 올린 지하수는 허드렛물로 사용되어져 지하수 수질 오염과 수질 고갈이 문제가 되었다.
 

비닐하우스뿐만 아니라 농경지 대부분이 관정을 이용해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1993년 지하수법 시행까지 무분별하게 관정을 파면서 지하수 고갈 및 오염이 심각하다. ⓒ 최수경

 
지구 상의 물은 해수와 담수로 나뉜다. 지구상의 물이 100리터라면, 해수가 97.5리터다. 나머지 2.5리터 가운데 0.03리터만 지표수다. 그나마 지표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등 건조로 인해 점차 줄고 있고 수질도 변하고 있다.

관리된 수돗물이 우리 집 수도꼭지를 나올 때 먹는 물로 선택받으려면, 우선 안전한 수돗물이라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취수원의 안정성과 정수시설과 급수시설을 개선하는데 예산이 부족하다면 기금을 조성해서라도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시설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안정성이 확보된 수돗물에 대한 교육 홍보를 통해 정수기 사용으로 발생하는 개인비용을 줄일 수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지하수,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면... 
 

수몰로 강가의 높은 곳으로 이주해 사는 주민들(옥천군 군북면 석호리) 고향과 농경지 등을 물속에 잃고 여전히 불편을 고수하며 사는 수변 지역민들의 애환은 크다. ⓒ 최수경

 
그러나 더 시급한 것은 지표수 중심의 수자원 개발 정책의 변화다. 지역 특성에 맞는 지하수를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면 댐으로 인해 발생하는 토지 자원의 낭비를 막고, 수몰 지역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아울러 땅과 물을 살리고자 한 수변 지역 주민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도시민들의 화장실 변기를 씻어내는 물은 빗물을 모아 재사용하도록 중수도 정책을 활성화 해야 한다.

음양오행에서 물은 타오르는 불을 끄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물로 갈등한다. 물이 불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역행을 바로잡으려면 물을 바로 사용하면 된다. 지하수, 빗물, 지표수를 쓰임새에 맞게 관리하고, 시민도 물을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사용해야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