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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기자말]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면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뛰면서 마스크를 살짝 내리니 상쾌한 바람 냄새와 한강의 물 냄새가 콧속으로 쑥 들어온다.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있던 기운이 솟는다. 주말에는 남편도 함께 뛰었다. 오랜만에 달린 느낌이 좋았는지 남편이 말했다.

"이제 실외에서 마스크도 벗을 수 있는데 마라톤 대회도 대면으로 열리지 않을까?"

혹시나 하고 찾아봤는데 대면으로 열리는 대회가 있다! 2022년 서울신문하프마라톤 대회가 접수중이다. 남편과 나는 바로 10킬로미터 부분에 신청했다.

2019년, 처음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을 때 대학교 축제 같은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집합 장소 여기저기에 이벤트 부스들이 있고 즐길 거리들이 많았다. 여러 부스를 들른 내 양손은 줄만 서면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선물과 간단한 미션을 완수하면 받을 수 있는 선물로 풍성해졌다. 곧 달려야 한다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집합 장소를 가득 채웠다.

코로나 유행 이후 마라톤 대회가 다 버추얼런(대회 기간 중에 참가자 각자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뛰는 것) 대회로 바뀌어서 아쉬웠는데 다시 대면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니 신이 났다.

대회 열리기 전까지 이틀에 한 번씩 뛰었다. 오랜만에 뛰는 거라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렸다. 런닝앱 코칭을 들으며 자세를 바로 잡고 달리기 전과 후에는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코로나 이후 첫 대면 마라톤 대회
 
마라톤 집합 장소.
 마라톤 집합 장소.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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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5월 21일, 서울신문하프마라톤 대회 날이 밝았다. 코로나 유행 이후 일반인 대상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대면 마라톤 대회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전 7시 반쯤 남편과 집에서 나와 집합 장소인 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최 측에서 기념품으로 나눠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반가워 웃음이 난다.

도착해 보니,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보는 게 얼마만인가. 부디 이렇게 코로나가 종식되길. 난 에너지 음료를 나눠주는 이벤트 부스와 꽝 없는 뽑기 이벤트가 있는 곳에 줄을 서 다양한 기념품을 받아 챙겼다. 간단히 몸을 풀고 나니 개회식이 시작된다. 내빈들의 축사 및 개회사가 끝나고 참가자들과 함께 준비운동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런닝화가 불편하다. 걸을 때마다 오른쪽 운동화가 복숭아뼈에 닿으면서 아프다. 2주 전에 구입해서 달릴 때마다 신던 신발이 하필 왜 지금, 이 시점에? 사실 달리기 연습하면서 왼쪽 정강이 근육이 당겨 좀 불편했었다. 자세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며 신경을 쓰던 차에 운동화마저, 복숭아뼈마저 불편하다니. 급한 대로 주머니 속 휴지를 꺼내 운동화 안에 끼워 넣었다. 훨씬 낫다.

오전 8시 56분. 10킬로미터 참가자들이 먼저 출발선 앞으로 이동했다. 10킬로미터 참가자는 총 1500명이다(5킬로미터 참가자도 1500명, 하프 참가자는 버추얼런으로 진행됐다). 이어폰을 끼고 달릴 때 들을 음악을 미리 틀어놓는다. 진행자의 '5, 4, 3, 2, 1 출발!' 소리에 맞춰 살살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바른 자세를 다시 한번 되뇐다. 허리를 세우고 어깨에 힘을 빼고 보폭은 너무 넓지 않게. 내 앞에 안정적으로 천천히 뛰는 사람을 한 명 정해서 그 사람과 발을 맞춘다. 하나, 둘, 하나, 둘.

항상 생각한 것보다 1킬로미터는 멀다. 체감상으로는 한참 전에 지났어야 하는데, 내가 1킬로미터 팻말을 못 보고 그냥 지나쳤나 하고 의심할 때쯤 팻말이 나온다. 2킬로미터도, 3킬로미터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번 마라톤 코스는 평지가 아니다. 노을 공원을 올라가는 부분에 살짝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보폭을 좁게 하면서 '걷지만 말자' 하고 계속 생각했다.

걸으면 다시 제 페이스로 뛰기가 힘들다. 다행히 정강이도 복숭아뼈도 아프지 않다. 중간중간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 좋은 소름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돋는다. 덩달아 내 삶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연상되면서, 그들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지 하는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으로 기운을 낸다.

3킬로미터를 조금 지났을 때 벌써 반환점을 지나서 오는 1등이 보였다. 그 뒤로 2등, 3등. 그들을 보며 나도 힘을 낸다. 그러다 힘이 들면 급수대만 지나서 쉬자, 하고 또 힘이 들면 반환점만 지나서 쉬자, 하고 또 힘이 들면 항상 뛰던 7킬로미터만 지나고 쉬자, 하다가 어느새 8킬로미터 지점을 지났다. 내 바로 앞에 1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가 뛰고 있다. 저 사람만 따라 뛰면 1시간 10분쯤에 피니시 라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분 뒤에서 발을 맞추며 뛰었다. 사실 이번 마라톤 목표는 10킬로미터를 1시간 10분 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잘 뛰는 사람이 생각하기엔 보잘 것 없는 목표지만, 오랜만에 뛰는 거라 무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습할 때 정강이도 아팠고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코스라 목표를 '완주'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그런데 1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를 만나다니!

포기했던 목표를 다시 끄집어냈다. 팔을 앞뒤로 휙휙 젓는다. 자동으로 뛰는 속도가 빨라진다. 9킬로미터 지점을 지났을 때는 1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를 앞질렀다. '마지막 1킬로미터니까 힘을 내자' 하는 생각으로 힘껏 달렸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마라톤처럼 내 인생의 피니시 라인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죽기 전에 내 모든 힘을 다해 마지막 스퍼트를 낼텐데.

함께 뛰는 사람들을 보며 기운을 낸다

결승점이 보일 때부턴 입술을 꽉 깨물고 더 빨리 달렸다. 고작 10킬로미터를 뛰어놓고 괜히 울컥한다. 통과할 때 시계를 보니 1시간 6분이다. 야호! 한 번도 걷지 않고 완주했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다시 피니시 라인으로 갔다.

남편이 결승점을 통과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목을 빼고 남편을 기다렸다. 저 멀리 지친 남편이 보인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남편과 만나 조금 쉬다가 간식과 메달을 받아 챙겼다. 간식을 먹으며 뛰면서 본 것과 느낀 것을 나눴다. 힘들지만 즐겁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난 처음 2, 3킬로미터가 힘들다. 아직 3킬로미터인데 언제 다 뛰나, 이렇게 뛰어서 언제 피니시 라인까지 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함께 뛰는 사람들을 보며, 응원을 받으며 기운을 낸다. 힘들지만 전율이 오는 순간들이 있다. 짧은 하루,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듯, 마라톤도 작은 걸음들이 모여 결국 결승점을 통과하게 된다.

조바심을 내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 금세 지친다. 힘을 빼고 박자에 맞춰 같은 페이스로 뛰는 게 중요하다. 인생은 언제 결승점을 통과할 줄 모르니 더 그렇게 달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내 페이스를 내가 알고 조절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너무 에너지를 쏟아도 너무 에너지를 아껴도 후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더불어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내 인생의 페이스메이커인 가족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바로 다음 마라톤 대회를 찾아봤다. 축제같이 흥겨운 분위기도, 뛰면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도, 완주 후 숨을 몰아쉬며 경험을 나누는 시간도 모두 즐겁다. 달리기만큼 가성비 좋은 운동이 또 있을까. 즐겁게 평생 달리기 위해, 뛰는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달리기 고수의 레슨도 예약했다. 

마라톤 정보는 '마라톤 온라인(www.marathon.pe.kr)'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마라톤 대회에 한 번도 참여해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우선 '5킬로미터'부터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마라톤 대회 현장에 오면 분명히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장담한다.

덧붙이는 글 | 추후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태그:##2022서울신문하프마라톤,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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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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