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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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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반지성주의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는 현재 논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그 방향이 어디로 가든지 상관없이 반지성주의 논쟁을 평가하고, 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지성'이 과연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반지성주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미국의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저서인 <미국의 반지성주의>에 나타난 지성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호프스태터는 그의 저서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지성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지적 능력과 지성을 구별한다.

그에 따르면 지성은 지적 능력과는 다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지적 능력은 아주 좁고 직접적이며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작용하는 두뇌의 우수함을 가리킨다. 즉 지적 능력은 명확하게 한정된 목표의 틀 안에서 움직이며, 어떤 사안을 재빨리 파악하고 처리하고 정리하고 조절하며, 특정 상황의 '직접적' 의미를 포착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에 비해 지성은 '두뇌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이고 사색적인 측면'으로, 지성은 의미를 고민하고, 모든 것에 대해 깊게 숙고하고 의문시하며, 앎을 이론화하고 비판하며 항상 자유로이 상상한다. 지성은 직접적인 평가를 다시 살펴 평가하고, 여러 상황의 의미를 넓은 시각에서 그리고 포괄적으로 탐구한다. 지적 능력이 동물의 한 자질로서 높이 평가되는 반면, 지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독특하게 표명하며, 인간의 한 자질로서 높이 평가되고 또한 그로 인하여 비난도 받는다. 

지성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에 기반하여 볼 때 이른바 지성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지성인은 일정한 정신적 자질, 즉 모종의 자발적 성격과 내적인 결단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식을 '위해' 산다는 것, 즉 진리에 헌신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 헌신과 흡사하다. 이에 비하여 전문직 종사자는 지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식에 '의존해서' 산다. 그들은 정신노동자이고 기술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직업적 역할이나 직업적 기능이 지성인을 만들지는 않는다.

둘째, 지성인은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이다. 지식인이 모종의 제한된 선입견이나 완전히 외적인 목적에만 봉사하게 되면 광신이 지성을 삼켜버린다. 정신적 삶에서 위험한 것은 특수하고 제한된 지식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일이다.

셋째, 지성인은 외적인 목적, 주어진 목적에 무조건적으로 봉사하거나, 이에 한정하여 사고하는 이가 아니다. 그/그녀는 실용성을 벗어나 진리를 추구하고 사유하는 이이다. 지성인은 원칙적으로 실용적이지도 비실용적이지 않다. 말하자면 지성인은 초실용적이다.

넷째, 지성인은 진리 추구에 경건하면서도 마치 어린 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하다. 이러한 장난기로 인하여 지성인은 자유롭게 그리고 폭넓게 생각한다. 그/그녀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대립하기도 하는 다양한 견해들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상상력을 통해 자신과 반대되는 감정이나 지식을 이용하고 심지어 끌어안기까지 한다.

다섯째, 지성인은 도덕성을 갖는다. 지성인은 맹세하고 책임지고 참여한다. 사고하는 삶이 인간 활동의 최고 형태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매개 수단이다. 지성인은 그것을 통해 가치들을 인간 사회에서 주장하고 다듬고 실현하고자 한다. 지성인의 사명감은 합리성에 따라 행동하는 그들의 능력과 정의나 질서를 추구하는 그들의 열정으로 구성되며, 세상 사람들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저서인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통하여 지성이 무엇이며, 지성인은 어떠한 존재인지 살펴보았다. 호프스태터에 따르면 지성인은 특정 직업적 지위를 가진 이가 아니라는 것, 좁은 범위의 한정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좁은 범위의 특정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엘리트도 아니며, 편협하게 생각하는 이도 아니며, 지식을 오로지 이익을 위해, 자신만을 위해 추구하고 사용하는 이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비하여 지성인은 진정한 마음으로 진리에 헌신하고, 실용성에서 벗어나 있으며, 좁은 시각을 벗어나 세상을 넓게 보고 사유하며, 자유롭게 서로 대립하기도 하는 다양한 견해들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상상력을 통해 자신과 반대되는 감정이나 지식을 이용하고 심지어 끌어안기까지 하는 이이며, 합리성에 따라 행동하며 정의와 같은 가치들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이이다.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한국사회의 부패가 엘리트들의 카르텔을 통해 이뤄진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김누리 교수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미성숙한 엘리트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둘을 결합시켜 보면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는 미성숙한 엘리트들의 카르텔로부터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은 세상을 보는 일종의 창이다.

이번 반지성주의 논쟁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엘리트들이 자신은 과연 호프스태터가 말하고 있는 지성인인지, 그리고 미성숙했다면 무엇이 미성숙했는지를 고민하고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 반성의 대상에는 나도 포함된다. 우리는 지성인인가?  

* 참고문헌: 리처드 호프스태터(저), 유강은(역)(2017). 미국의 반지성주의. 서울: 고유서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필진 장원순 (공주교대) 교수의 기고글입니다.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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