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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는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 가장 대적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상대방의 외모와 목소리를 완벽하게 복제하는 능력을 가진 미스틱이 아닐까 싶다. 눈으로 본 모든 사람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니. 반대로 그 능력이 내 능력이라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눈으로 본 옷을 그대로 복제해서 만드는 능력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옷을 만드는 영역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패턴사다. 디자이너가 일러스트로 그려낸 디자인을 보고 사람의 몸에 맞는 옷으로 만들 수 있게 패턴을 만드는 일을 한다. 패턴은 옷의 설계도에 해당한다. 패턴이 있으면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계절 내내 원단만 바꿔가며 만들어 입을 수 있다. 마음에 드는데 기모가 있어서 봄, 여름, 가을에 입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옷이 있다면, 이 능력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잘 입는 바지는 봄/가을용, 여름용, 겨울용으로 각 계절에 맞는 원단으로 만들어 1년 내내 입을 수 있도록 한다. 낡아서 못 입을 지경이 되면 새로 만들어 채우는 식으로 옷장 살림을 꾸린다.

패턴이 없는 옷은 만들지 못합니다

중학교 시절, 가사 시간에 퍼프소매 블라우스를 만드는 실습을 했던 기억이 있다. 각자 자기 몸의 치수를 재고 그에 맞는 상의 기본 패턴을 그리는 법을 배운 후 그 기본 패턴을 변형하는 것이었다.

워낙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기질이 다분했던 터라 가슴둘레를 4로 나누고 여유분을 1~2센치 정도 준다, 같은 패턴 그리는 법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익히기를 포기했다. 옷을 14년째 만들고 있는 지금도 옷의 설계도인 패턴은 사서 만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패턴이 없는 옷은 만들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취향에 맞는 브랜드의 최신 디자인 룩북을 보고 인기가 있을 법한, 혹은 취향에 맞는 옷을 패턴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패터너들이 있고 나 역시 여러 패터너들 중에 내 취향에 맞는 옷의 패턴을 만드는 분에게서 패턴을 사서 만든다.

하지만 살 수 있는 패턴과 내가 만들고 싶은 옷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가끔 아쉬울 때도 있다. 패턴을 그릴 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옷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려면 그 옷 자체를 설계도 삼아 만드는 수밖에 없다.
 
네크라인과 암홀은 룰렛으로 눌러서 표시한다.
 네크라인과 암홀은 룰렛으로 눌러서 표시한다.
ⓒ 최혜선, 해피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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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겨울에 잘 입던 기모 후드티를 봄/가을용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서 궁리를 하고 있다. 유튜브에 보면 패턴 없이 옷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는 영상이 많다. 물론 반팔 티 같은 만들기 쉬운 옷에나 쓸 수 있는 방법이지만.

간단히 설명해 보면 일단 옷을 목 중심에서 세로로 반으로 접는다. 이때 좌우의 어깨점, 겨드랑이 점 등 중요한 지점을 잘 맞추어 접고, 접힌 옷의 좌우 대칭이 맞는지 확인한다. 그런 후 달력 같은 커다란 종이 위에 옷을 놓는다. 어깨는 선을 따라 그리면 되지만 소매가 달려 있는 암홀이라든가, 앞판 네크라인 같은 경우는 완성된 옷의 상태에서는 그대로 따라 그릴 수가 없다.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룰렛이라는 기구다. 밑에는 종이를 몇 겹 겹쳐 놓고 위에는 대칭이 되도록 접은 티를 올려놓은 후 톱니모양의 룰렛을 옷 위에 대고 네크라인이나 암홀을 따라 눌러주면 아래에 받쳐둔 종이에 톱니의 흔적인 점선이 남는다. 이 표시를 따라 그린 후 어깨선, 앞뒤판 옆선 같이 연결되는 지점들을 맞추고 재단자로 선을 정리해주면 된다.

가을이 되기 전에 만들어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 '짜잔~' 하고 복제한 후드티를 보여줘야지, 받을 사람 몰래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이 즐겁다. 아이의 놀람과 기쁨이 담긴 반응을 기대하며 작은 즐거움의 씨앗을 뿌려둔다.
 
좌: 원본 스커트 우: 복제 스커트
 좌: 원본 스커트 우: 복제 스커트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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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남편이 선물해 준 맞주름 스커트를 복제해 보았다. 지금은 중학생 딸아이의 최애 스커트가 되었는데 트위드 원단으로 만들어진 터라 지금 입기에는 좀 두꺼운 감이 있어서다.

스커트의 허리 둘레, 맞주름의 폭과 개수, 스커트 길이, 안감 길이, 안단 등을 재어서 바느질 노트에 적어두었다. 설계도를 만들었으니 만들기만 하면 된다. 설계도대로 직사각형을 재단하고 중심에서부터 맞주름을 잡아 나갔다. 주름을 박은 후 스커트와 맞춰보며 이대로 완성하면 될지 한 단계 한 단계 더듬어가며 완성했다.

티처럼 간단한 옷이나 자로 재어 흉내내어 볼 수 있는 스커트는 이렇게 만들 수 있지만 절개가 많고 안감도 넣어야 하는, 손 많이 가는 옷은 이런 식으로 만들기엔 한계가 있다. 이 경우에는 옷을 한땀한땀 뜯어서 옷 자체를 옷본으로 쓰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애쓰는 나를 응원합니다
 
한땀 한땀 뜯어만든 패턴으로 내가 새로 만든 코트를 마침내 완성해서 입는 순간을 느껴보고 싶다.
 한땀 한땀 뜯어만든 패턴으로 내가 새로 만든 코트를 마침내 완성해서 입는 순간을 느껴보고 싶다.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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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15년 넘게 입은 알파카 코트가 있다. 세로 절개선이 들어 있어서, 겨울 코트지만 부하지 않고 날렵한 핏이 나오는 코트다. 더 중요한 건 몸에 잘 맞으면서도 어깨가 편안하다는 점이다.

모니터 두 개를 나란히 세워놓고 뚫어져라 원문과 번역문을 검토하는 일이 많은 나에게 거북목으로 인한 어깨와 등, 목의 통증은 오랜 친구와 같아서 아무리 예뻐도 어깨를 긴장하게 만드는 불편한 옷은 입을 수가 없다. 너무 많이 닳아 알파카 코트 특유의 털은 다 빠지고 앙상한 천만 드러나 있는 이 옷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입었을 때 핏이 예쁘면서도 어깨도 편한 이런 코트를 또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매번 겨울 옷장을 정리할 때 '내년 1년만 더 입고 버리자'라는 결심을 반복하며, 결혼 후 세 번의 이사에서도 살아남았다.

올해도 같은 고민을 했다. '이 코트를 한땀한땀 뜯어서 패턴을 얻자. 그런 다음 그 패턴대로 재단을 하고 바느질을 하자. 한 번 도전해 보자!'라고 주장하는 자아와, '아서라, 그거 언제 뜯을래, 10년 넘게 입은 옷이 패턴 역할을 잘 해주겠니, 뜯어서 패턴을 얻었다고 쳐, 마음에 드는 원단 찾고, 안감 찾고, 단추까지 구색 맞추려면 재료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할텐데 뜯어놓은 원단과 안감이 쌓여 있는 걸 보는 것도 스트레스다. 진짜 그걸 해야겠어?'라고 브레이크를 밟는 자아가 싸운다.

매번 브레이크를 거는 자아가 이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트를 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가지고 있는 것은 첫 번째 자아가 아직은 백기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땀 한땀 뜯어만든 패턴으로 내가 새로 만든 코트를 마침내 완성해서 입는 순간의 뿌듯함이 그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의 후드티, 딸의 맞주름 스커트, 내 슬림핏 코트를 어떻게 패턴 없이 새로 만들 수 있을까, 이리저리 고민하다 보니 어라? 글을 잘 쓰려면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써 보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데 내가 지금 옷으로 다독, 다작, 다상량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맛있는 것을 먹으면 집에 와서 비슷하게 맛을 낼 수 있다더니 내가 지금 옷으로 그걸 해 보려고 하는 상태구나. 바느질러로서 나도 많이 성장했구나, 침모상궁 부캐의 성장을 쓰담쓰담해 주었다.

패턴이 있는 옷만 만들던 바느질러가 마음에 드는 옷을 똑같이 만들어볼까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알을 깨고 나오려고 열심히 껍데기를 쪼아대는 병아리처럼. 이 껍데기는 절대 깰 수 없는 벽은 아니지만 그리 만만하게 깨지지도 않는다.

하라고 시키는 사람도 없고 안 한다고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 벽을 깨 보겠다고 좌충우돌하고 있는 나를 응원한다. 실패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되 성공하면 기쁨과 뿌듯함을 대가로 얻게 되는 꽤 괜찮은 도전을 하고 있는 나를.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도전들을 하고 있는 당신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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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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