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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3월 고1·2·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24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시험 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2022학년도 3월 고1·2·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24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시험 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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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건넨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교복을 입고 학교 갈 생각에 중학교에 가고 싶었고, 중3 때는 야간자율학습(야자)을 하고 귀가하는 고등학생이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는 거다. '케바케'일 테지만, 교복과 야자가 로망이었다니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지금이야 아예 폐지되거나 대개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 야자는 인문계고등학교의 '필수 교육과정'이었다. 운영 시간이 약간씩 차이가 있었을 뿐, 전국에 야자를 실시하지 않은 학교는 거의 없었다. '자율'이라 쓰고, '강제'라고 읽었던 시절이다.

예외 없이 참여했던 데다 하루라도 허락 없이 빠지면 불호령이 내려지던 때라 야자는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불호령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말인즉슨 체벌, 아니 매질이었다. 과거 '0교시'까지 운영되던 때엔 '별을 보고' 등하교했고, '집에 다녀오겠다'는 게 교사와의 인사말이었다. 

그랬던 야자가 지금 제 의미를 되찾아가고 있다. 교사의 강압이 일절 배제된 채 아이들의 자발적 선택에 따라 운영된다. 주중 요일별로도 참여 여부를 따로 선택할 수 있는가 하면, 원하는 경우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교실이나 도서관 등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앞으로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작되는 2시간 남짓의 야자를 둘로 쪼개 자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조차 허용할 계획이다. 예컨대, 야자 1교시에는 자습하고, 2교시에는 운동하는 것까지 배려하겠다는 거다. 아이들에게 운동장이나 체육관 등의 학교 시설을 야간에 개방하면 된다. 

사실 이는 교사들에게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교과 수업이든 비교과 활동이든 아이들이 있는 곳엔 반드시 교사가 입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 일과 중 벌어진 안전사고의 책임은 온전히 교사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서다. 야자의 '정명'을 위해, 나아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사의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하굣길 그들이 향하는 곳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자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완전 자율로 바뀐 데다 요구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데도, 참여를 희망하는 아이들은 시나브로 줄어드는 추세다. 현재 야자 참여 인원은 모두 합해 봐야 채 절반이 못 된다. 그나마 주중 하루도 빠짐없이 야자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열에 두세 명 정도다. 

덩달아 방과 후 수업조차 참여 희망자가 줄어들고 있다. 올해부터 수익자 부담 원칙이 사라져 별도의 비용 지출이 없는데도 수강을 기피하고 있는 모양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 4시 40분, 인근 병설 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교문을 나서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하굣길 그들이 향하는 곳은 집이 아닌 학원이다. 학원에서 하루 중 '두 번째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시간부터 이르면 10시에서 늦으면 자정까지 학원 수업을 듣는다고 하니,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시간으로만 치면, 학원이 야자의 '대체재'인 셈이다.

야자 참여 희망자를 조사하는 건, 사실상 학원 수강 여부를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다. 야자에 참여한다는 건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중 특정 요일에 불참한다는 건 당일 학원 수업이 있다는 의미다. 학원 수업 일정에 따라 학교의 야자 참여 여부가 결정되는 현실이다.

더 황당한 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앞둔 즈음에는 학원 수업 일정이 수시로 바뀌어 야자 출결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원에서 특강과 보강 수업이 있다며 야자를 빼달라는 통에 교무실은 북새통이 된다. 혹여 안 된다고 말할라치면 학부모의 항의 전화가 곧장 걸려온다. 

시험 문항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건 교사인데, 아이들이 학원의 '족집게' 강의에 애면글면한다는 게 우습다 못해 안쓰럽다. 듣자니까, '영험한 족보'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족보란, 인근 학교에서 근래 교내 시험으로 출제됐던 걸 그러모아 편집한 일부 학원의 교재를 의미한다. 말이 교재지, 불법과 편법 사이의 교묘한 줄타기다. 

"학원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 한다."
"공부하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학교 선생님들에게 찾아가 질문하고 도움을 청해라."
"교실 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라. 친구들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다."


수업 시간에 입이 닳도록 건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이들은 귓등으로 듣는다. '공자님 말씀'이라는 듯 하나같이 심드렁한 표정이다. 학부모들은 더하다. 모두가 학교에 남아 야자에 참여하도록 강제할 게 아니라면, 당신의 자녀만 학원에 안 보낼 순 없지 않으냐고 하소연한다. 

"학원에 다니지(보내지) 않으면 불안해요."

상담할 때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이구동성 건네는 답변이다.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두세 번 돌렸다는 이야기, 용하다는 학원을 찾아 이사를 떠난 이웃과 월급의 절반을 자녀의 학원비로 써서 명문대에 보냈다는 무용담까지,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레퍼토리가 내내 이어진다. 사실상 학원 이야기가 상담의 시작과 끝이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중학교와 다르다는 말 정도론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자발적 동기 부여와 자기 주도적 학습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현실과 동떨어진 조언으로 여긴다. 학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담배나 약물 중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친 비유에도 그들은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학원 공부에 의존한 아이들의 진학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24년의 교직 경험을 들려주어도 당최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자칫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망치고 끝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을러대도 요지부동이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가 반 25명 중에 단 7명뿐이고, 그마저 고등학교 와서 끊은 경우다. 

'불안'을 먹고 몸집을 키우는 학원들 
 
매일 아침 현관문에는 학원의 광고 전단이 나붙는다. 하나같이 불안을 부추기는 선정적인 문구를 싣고 있다.
 매일 아침 현관문에는 학원의 광고 전단이 나붙는다. 하나같이 불안을 부추기는 선정적인 문구를 싣고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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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 끝 모를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근본적으로, 부실한 사회 안전망에다 온존한 학벌 구조와 승자독식의 사회 탓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바다. 각자도생의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철부지 초등학생들조차 맹목적인 불안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더욱 기막힌 건, 학원들이 이러한 사회적 병폐에 기대어 돈벌이를 획책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노골적인 광고를 무시로 뿌려대고 있다. 이쯤 되면 학벌 구조 혁파를 위한 온갖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온 반교육적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자녀의 즐거운 학교생활, 학원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혹시, 설마, 지금도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면.'


오늘도 현관문 앞에 나붙은 학원들의 광고 전단을 찢으며 출근한다. 등굣길 딸아이가 혹여 보게 될까 싶어서다. 얼마 전 학원에 안 다니는 친구가 없다며 내심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학원에 가는 대신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도록 야자를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순간 허탈하게 느껴졌다. 

초중고 12년도 모자라, 명색이 지식인이라는 대학생조차 자격증과 취업을 위한 학원에 전전하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비아냥거림에 가슴을 친다. 이럴 거면, 법으로 과외와 학원 수강을 전면 금지하면 좋겠다는 허황한 생각마저 든다. 폭압적인 전두환 정권의 교육 정책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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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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