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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60대를 넘기시고 얼마 뒤, 나의 친정 부모님은 아빠의 어릴 적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두 분이 반평생을 넘게 산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신다고 했을 때,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이사는 진행되었고, 아빠가 어릴 때 살았던 작은 고향마을에 집을 마련하셨다.

두 분이 그곳으로 내려가셔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집 앞 마당에 잔디를 심고, 화초와 꽃나무로 이곳저곳을 채우는 일이었다. 정원을 꾸미는 일은 평생 베란다에서만 식물을 키우던 엄마의 오랜 로망이었다. 버스를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거나 자동차로만 찾아갈 수 있는, 마트 하나 없는 시골 마을이지만 그곳에서 당신만의 정원을 일구는 부모님의 하루하루는 평화로와 보였다.
 
부모님의 고향집
 부모님의 고향집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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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의 삶은 십 대까지였고 그 이후 삶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보냈음에도, 부모님의 모습은 새로운 곳에서의 삶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신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도시에서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아파트와 지하철, 고층빌딩 숲 사이에서 도시인으로 반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었는데 말이다.

매일 잔디밭에 난 잡초를 뽑고, 새벽에 일어나 텃밭에서 키우는 깻잎이나 상추를 돌보는 일상에 빠르게 적응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모님은 도시에서 살 때보다 훨씬 더 편안해 보였다. 퍼즐판의 비어있던 한 조각이 자리에 쏙 들어가 완성된 모습 같았다.

친정집이 시골마을에 만들어진 덕에 내 아이들은 요즘 도시 아이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혜택을 많이 누리며 자랐다. 방학이나 명절을 맞이해 외가에 갈 때면 텃밭에서 직접 가져온 음식으로 차려진 유기농 밥상을 얻어먹었고, 야생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처럼 집 앞 개울에서 물놀이를 했다. 가을에는 산에 굴러다니는 밤을 주우러 다녔고, 여름엔 마당에 펼쳐진 텐트 안에서 소꿉놀이를 했다.

시골집에서 엄마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은 마당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텃밭 일만으로도 바쁜 시골의 일상인데, 철마다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을 마당에 심고, 여기 있는 화초를 저기로 옮겨 심었다. 빈 자리에는 어떤 나무를 심을까 고심하곤 하셨다. 그 덕에 엄마의 시골생활은 언제나 지루할 틈이 없다.

엄마의 정원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저 엄마는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잔디밭이 잘 정돈된 자신의 공간을 가꾸는 그 일 자체에 푹 빠져 지내셨다. 식물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안다. 흙과 꽃을 만지며 땀을 흘리는 그 노동 자체에 깊이 매료된다는 것을. 
 
엄마의정원
 엄마의정원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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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정원을 가꿀 정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어릴적엔 꽃도 나무도 심드렁하기만 했는데 하나 둘 키우며 매력에 빠지다보니 화분을 놓을 공간을 생각하게 되고, 좀 더 넓은 베란다를 갖고 싶고, 마당이 있는 집을 보면 부러워하곤 한다.

평생 도시에서 살던 엄마가 시골에서의 삶을 너무나 자연스레 잘 누리시는 것도, 나 역시 화초에 이유 없이 깊이 끌리는 이유는 뭘가. 몸속 세포 안에 자연으로부터 시작된 유전자가 들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꽃에 시선이 가고, 초록색 풀을 보면 눈이 편안해지고, 자연을 찾아다니며 위로와 평안을 얻는 것은 사람이 가진 자연스러운 습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결국 자연과 어우러질 때 안정이 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고궁이나 수목원에 가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서울 도시 한복판에 있는 경복궁이나 덕수궁에 들어가면 분명 방금 전까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된 길을 걷던 내 발밑에서 '자박자박' 하는 소리가 난다. 흙길을 밟는 소리다. 그 소리와 발에 느껴지는 감촉이 참 이상하리만큼 좋다.

그리고 나무가 많이 우거진 곳에 있으면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사라라락', 하기도 하고 '우수수수', 하기도 하는 소리들. 그리고 간간히 섞이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 마음의 평화를 얻기에 그보다 더 좋은 소리가 있을까.

평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역시 그렇게 점점 자연에 스며들어가는 일을 찾아다니게 된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나무가 보이는 창가가 있는 곳이 좋고, 우울한 날이면 화원에 가 작은 화분 하나를 사오는 일이 나에게 위안을 준다.

친구들은 농담처럼 '꽃이 좋아지고 식물을 좋아하는 건 나이 든다는 증거야'라고 말을 하지만, 자연이 좋아지는 게 나이듦의 섭리라면, 사람은 누구나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이 뼛속 어딘가에 새겨진 건 아닐까 싶다.
 
엄마의 정원
 엄마의 정원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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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결국엔 나의 부모님처럼 나만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될 날을 꿈꾼다. '정원사 할머니'로 살아가고 싶다. 흙과 돌을 마당 한켠에 잔뜩 쌓아두고 이런저런 나무들을 심고, 옮기고,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며 매 순간 즐거워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 공간의 한구석에는 창이 커다란 작은 방을 하나 놓아두고, 나무로 작은 선반들을 만들어 책과 화분으로 채워두고 싶다.

누군가 그곳에 쉬러 와주면 좋겠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는 그의 손에 내가 피워낸 수국 화분 하나를 들려보내고 싶다.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내마음 한켠에 차곡차곡 세워두고 있는 꿈이 되었다.

손에 가득 흙을 묻히며 부지런하게 몸을 놀리는 정원사 할머니가 될 생각을 하니 요즘 나의 노년이 꽤 평화롭고 근사하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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