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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유일한 가톨릭 교회인 장충성당.
 평양의 유일한 가톨릭 교회인 장충성당.
ⓒ 이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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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와 김영삼의 집권기 남북관계는 혼돈과 격정의 시기였다.

1988년 7월 7일 노태우의 대북정책 특별선언(7.7선언) 발표, 1989년 3월 25일 문익환 목사 방북, 6월 30일 임수경 양 평양축전 참가 등이 이어졌다.

임수경 양 방북과 관련해서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수난이 따랐다. 평양에 간 임 양을 보호하고자 사제단은 문정현 신부의 미국에 있는 동생 문국현 신부를 사제단 대표로서 평양에 파견키로 한 것이다. 미국 영주권이 있는 문국현 신부가 평양에서 활동 중이던 임 양과 함께 휴전선을 넘어 서울로 귀환하였다. 

마침내 광복절인 15일 오후 2시 20분, 태극기를 몸에 두른 임수경과 문국현은 손을 꼭 붙잡은 채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평양으로 가는 길은 열흘이 걸렸지만 돌아오는 길은 너무 짧았다. 단 몇 초 만에 두 사람은 반세기 분단의 장벽을 통과했다. 그들은 분단 이후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최초의 민간인으로 기록됐다. 

분단선을 넘는 그 순간, 임수경과 문규현은 곧바로 체포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반국가단체의 지령 수수 잠입 탈출, 찬양고무 혐의 등이 적용돼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옭아맨 바로 그 국가보안법으로 각각 징역 5년형이 확정돼 복역하다가 1992년 말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주석 5)

이 사건으로 남정현 신부 등 네 명의 사제가 구속되었다. 함세웅은 구속은 면했으나 정신적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임수경이 감옥에 있을 때 면회를 가고 뒷날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는 후원회장을 맡았다. 

청주여자교도소에 있을 때 종종 면회를 갔어요. 가톨릭 신자니까요. 성체를 모시고 갔는데, 힘들어하더라고요. 신앙으로 이겨내라고 했는데 고초를 많이 겪었어요. 임수경이 국회의원 할 때 제가 후원회 회장이 되었어요. 상징적으로 해달라고 해서 후원회 회장을 맡았지요. (주석 6)

임수경ㆍ문국현 방북사건은 사제단을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발분의 계기가 되었다. 1994, 95년 북한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사제단은 모금을 해서 자선단체인 홍콩 까리타스(CARITAS)를 통해 이재민을 도왔다. 길이 트이면서 북쪽 천주교 중앙협의회를 상대로 자전거ㆍ목욕시설ㆍ쌀 등을 보냈다. 자전거는 중국산 제품을 구입, 그곳에서 바로 보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통일위원회가 이런 일을 많이 수행했다. 함세웅은 1998년 8월 북한의 장충성당 건립 10주년을 맞아 그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김승훈ㆍ문정현ㆍ지수현ㆍ안충석ㆍ박승원ㆍ문규현ㆍ박기호ㆍ전종훈 신부와 함께 평양으로 갔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천주교 신부 9명의 방북이다. 김대중 정부 이어서 가능했다. 정부의 승인 절차를 밟은 행사였다. 

예상대로 북한에서 활동은 자유롭지 못했다. 당국의 철저한 통제로 여러 차례 항의하고 관계자들과 언쟁을 했지만 '자유여행'은 허락되지 않았다. 8월 15일 장충성당에서 미사가 열릴 때 함세웅은 강론을 길게 하였다. 그쪽 관계자들이 미사 내용을 체크했으나 발언을 막지는 않았다. 

김승훈 신부님이 주례를 하시고 저는 강론을 했어요. 북한에서 봉헌하는 첫 번째 미사니까 강론을 좀 길게 했어요. 이 사람들이 하도 모르니까 교리를 좀 가르치겠다는 생각도 하면서요. 일제로부터의 해방된 광복절의 기쁨도 이야기하고, 성모승천축일인데 성모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주었고요.

루카복음에서 성모님에 관한 부분을 골라서 마리아의 믿음, 예수님 돌아가셨을 때 십자가  밑에 계셨던 성모님의 고통은 찢긴 민족의 아픔과 똑같다… 이렇게 성모 마리아의 축일과 민족사를 함께 엮어 교리를 설명했어요. 그분들에게는 아직 해방신학 같은 것 이야기하면 안 돼요. 그저 성경대로만 해도 해방적 의미가 다분하지요. (주석 7)


주석
5> 유시춘 외, 앞의 책, 276~277쪽.
6> <함세웅 신부의 시대증언>, 530쪽.
7> 앞의 책, 53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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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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