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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의 프리퀀시 이벤트 안내판
 스타벅스의 프리퀀시 이벤트 안내판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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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쿠폰이 생겨 스타벅스에 갔더니 대대적으로 '2022 여름 프리퀀시' 이벤트를 홍보하고 있었다. 음료 17잔을 마시면 바캉스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주는 이벤트다. 스타벅스 프리퀀시 이벤트는 거의 매년 화제였다. 그러나 올해는 벌써 이벤트가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주변에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작년에는 이벤트 달성 굿즈를 얻으려고 주변이 꽤 시끄러웠다. 친구들끼리 한 명에게 스탬프를 몰아주기도 하고,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포장을 뜯지 않은 굿즈가 비싼 값에 재거래되기도 했다. 1년 만에 분위기가 사뭇 바뀌었다. 나 역시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품 디자인이 성에 차지 않는 사람도 있고, 바뀐 품목이 별로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환경에 관심이 부쩍 높아진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탓도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굿즈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약간 바뀐 것이다. 쏟아지는 굿즈 행렬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도 늘고. 

굿즈에 목매던 시절

나도 굿즈에 목매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컵을 좋아해서 머그나 맥주잔, 위스키잔 따위를 가리지 않고 모으곤 했다. 한 번은 김훈 작가 머그컵이 갖고 싶어서 책을 샀다. 이순신 장군에게 심취해 있던 무렵이었다. 김훈이 쓴 <칼의 노래>를 읽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칼의 노래>는 예술이었다.

이후 한동안 김훈 책만 읽었다. 이런 형편이었으니 김훈 굿즈 머그컵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나. 집에 머그컵이 열댓 개를 헤아렸지만 중요치 않았다. 나는 도서관에서 미리 빌려 읽은 에세이 <라면을 끓이며>를 다시 구입했다. 그리고 머그를 손에 넣었다. "역시 만질 수 있는 것이 좋아"라며 감격에 겨워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머그컵은 관심사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굿즈 덕질의 흔적인 김훈 머그와 투썸 플레이스 머그
 굿즈 덕질의 흔적인 김훈 머그와 투썸 플레이스 머그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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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언젠가는 카페 투썸플레이스 케이크에 꽂혀서 매일 케이크를 먹으러 다녔다. 한 달만에 살이 2킬로그램이나 오르는 걸 실시간으로 감지하면서도 끊을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어떤 것에 중독된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굿즈 수집은 중독 행위의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다. 

이번에도 결국 투썸플레이스 머그를 굿즈로 획득했다. 나에게 굿즈란 '나는 이것을 좋아합니다'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에 가까웠다. 굿즈라는 증거가 없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달콤한 음식이 으레 그렇듯 케이크 취미는 금세 사라졌다. 투썸 플레이스 방문 횟수는 뜸해졌지만 굿즈는 여전히 탐났다. 손에 착 감기는 시즌 텀블러를 쥐고 있으면 없던 디저트 욕구도 스멀스멀 차올랐다. 내가 굿즈에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복도식 구형 26평형 임대아파트에 살았었다. 베란다가 넓게 빠지고, 복도도 큼지막해서 전용 실내 면적이 좁은 집이었다. 거실에 붙어 있는 부엌은 몹시 아담하였다. 우리는 별도의 수납장을 구입하지 않고 빌트인으로 설치된 상부 찬장을 사용했다. 

부부 두 사람 짐만 있으면 기본 찬장으로도 충분히 수납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도시락통, 식판 놓을 자리가 부족해졌다. 그릇 겹쳐 쌓아 두기 기술로도 한계에 이른 날, 물건 추려내기를 했다. 집안의 모든 수납장 문을 열고 모든 내용물을 꺼냈다.

마법의 주머니처럼 계속 물건이 나왔다.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여유분으로 사둔 플라스틱 약병 50개, 샐러드 가게 개업 선물로 받은 투명 물병, 결명자차 끓이는 용도로 두 번 쓴 주전자가 튀어나왔다. 

상태가 심각한 곳은 책상과 서가였다. 우리 부부는 책과 문구류, 음료(차, 커피, 술)를 좋아한다. 그런 성향 탓에 '화석이 되어가는 굿즈 쓰레기'도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일상적 필기가 불가능한 목공용 연필, 노트 굿즈가 예뻐서 구입한 조니 워커 레드 라벨, 알라딘 서점에서 포인트로 구매한 도라에몽 컵... 끝을 나열할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굿즈가 발굴되었다. 

김훈 굿즈 머그컵도 이날 발견했다. 모두 1년 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이 우리 집에 잊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그러나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작업은 지난했다. 

"이 예쁜 에코백은 동아서점에서 <당신에게 말을 건다> 사고서 받은 거잖아. 절대 버릴 수 없어."

인연과 사연이 묻은 굿즈는 차마 처분하기 어려웠다. 굿즈를 없애버리면 추억까지 사라져 버릴까 봐 겁이 났다. 그렇지만 그 감정 때문에 들여다보지도 않을 거면서 공간만 잡아먹는 굿즈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었다. 굿즈에게 미안하지만, 어쩌면 굿즈는 예쁘고 귀여운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랑하는 굿즈만 남기고 나머지는 기억 속에 소중하게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부부는 하나 버릴 때마다 스무 번씩 들었다 놨다 번민하면서 어렵사리 쓰레기 종량제 봉투 20리터를 채웠다. 청소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잠시 멈춰서면 환경이 보입니다
 
물건을 사면 안에 굿즈가 기본값으로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거절하는 편이다.
 물건을 사면 안에 굿즈가 기본값으로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거절하는 편이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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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물건이다. 띠부띠부씰 스티커가 갖고 싶어 포켓몬빵을 사고, 아이스박스가 탐나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 사실 지금도 가슴속 깊은 곳에는 중고거래를 해서라도 손아귀에 넣고 싶은(예를 들면 뾰로통한 얼굴의 무라카미 하루키 배지 같은 것) 굿즈가 있다.

그렇지만 이제 굿즈가 어떤 식으로 방치되고 최종적으로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 나는 호기심이 강해서 새로운 물건을 보면 만지고 싶고, 가지고 싶다. 그렇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자제하고 있다. 내 굿즈 수집 욕구보다 환경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믿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굿즈 문화는 재밌지만,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만든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추가 비용을 내지 않고 무조건 지급하는 굿즈도 정중하게 반납하려 애쓰고 있다. 가끔 의아해 하는 상점 주인분도 계시지만 환경 때문이라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웃으며 수긍해준다. 

텀블러 사용과 용기내 캠페인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번거로운 취향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곧 사회적 지지를 받아 주류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었다. 그럼 유행처럼 번지고, 쉽게 소모되는 굿즈 문화도 잠시 멈춰서서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겨우 굿즈 하나 거부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변화는 늘 작은 부분에서 발생한다. 스타벅스가 종이 빨대를 기본 제공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이 빨대와 다회용 스테인리스 빨대를 쓰게 되었는지 떠올려 보라. 원 플러스 원 우유팩도 테이프나 비닐 용기로 묶여 나오던 것이 어느새 종이띠 포장으로 대세가 넘어왔다. 

환경에 민감한 분들이 많아질수록 굿즈를 거부하는 흐름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기업도 지나친 굿즈 남발에 경각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포장 용기가 많이 나온다고 배달음식을 안 시켜먹는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굿즈 거부는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굿즈를 사랑하고, 굿즈 수집을 취미로 하시는 분께서는 나의 의견이 불편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비틀어 바라보면 어차피 굿즈 문화는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 오히려 수준 이하의 유행편승형 굿즈는 줄어들고 양질의 굿즈는 남을 테니 장기적으로 괜찮지 않을까. 

굿즈(goods)라고 정말로 모두 굿(good)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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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교육과 환경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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