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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커피'의 의미는 달랐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커피는 예나 지금이나 진한 에스프레소, 미국인들에게 커피는 한동안 원두로 내린 블랙 커피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1990년대 말까지 커피는 과립형 커피를 뜨거운 물에 녹이고 설탕과 우유 제품을 적당히 넣어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였다. 지금은 한국인에게 '커피'는 아메리카노다. 커피의 의미가 바뀐 지 20년 정도 되었다.

요즘 카페에 가면 메뉴에 적힌 커피의 종류가 엄청 많다.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 커피 전문가들에게 낯선 이름도 적지 않다. 짜장면과 짬뽕 선택하기도 어려운 세상에 커피조차 이제는 선택이 어려워졌다.

알고 보면 카페에서 제공하는 커피는 두 종류로 정리된다. 하나는 간단한 도구로 여과시켜 만드는 드립 커피다. 도구가 여러 종류이기는 하지만 맛은 비슷하다. 다른 하나는 에스프레소 머신이라는 기계로 고압을 이용해 빠르게 내린 에스프레소 음료를 활용한 커피들이다. 에스프레소를 그대로 내놓는 진한 커피거나 여기에 물과 여러 이물질을 섞어서 만든 배리에이션 커피들이다.

에스프레소 원액보다 많은 물을 섞어서 제공하는 것이 아메리카노이고, 여기에 큐브형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인데, 대부분의 카페 메뉴 첫 줄에 올라 있는 것은 공통적으로 '아메리카노'다.

제2차 세계대전과 커피

한국인이 커피 하면 떠올리는 아메리카노의 기원에 관해서는 많은 주장들이 있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신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기록을 남겼으면, 이런 기록들 중에서 가장 빨리 기록을 남긴 사람이 아메리카노의 원조가 되었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한 커피 맛이 싫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마시는 평범한 일을 한 사람이 자신의 시도가 세계 최초의 아메리카노 원형이라고 생각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밥을 하고 밥솥에 남은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면서 이게 인류 최초일 거야 하고 기록한 숭늉의 원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메리카노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고 수없이 많은 주장만 있다.

아메리카노의 기원과 관련하여 떠도는 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커피 역사를 읽다 보면 커피의 발전에 전쟁이 준 영향이 적지 않은데 아메리카노도 마찬가지로 전쟁의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라는 말이 반쯤은 맞다.

1930년대 중후반 미국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등장과 수정 자본주의 정책의 채택으로 세계 대공황의 충격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 방임주의를 버리고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의 일상적인 삶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해서 자국 산업 보호에 국가가 앞장섰다. 나아가 사회보장법으로 국민의 일상적 삶을 안정시킨 덕에 소비는 회복되고 경제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커피 소비도 증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식민지를 갖고 있지 못했고, 소비 시장이 작았던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차례로 민족주의로 무장한 독재 정권을 탄생시켰고, 이들은 해외 팽창으로 경제를 살리고자 하였다.

1935년 10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공격하여 다음 해에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였다. 1939년 9월 1일 히틀러가 폴란드 국경을 넘어 진격했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자신들의 블록을 만들어 보호무역을 추진하던 나라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21년 만에 다시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커피 시장은 유럽에서 시작된 세계대전으로 다시 혼란에 빠졌다. 전쟁 소식으로 커피 생두의 거래는 급락하고 가격은 추락했다. 히틀러는 전쟁 시작 1년 전에 이미 커피 수입을 제한하기 위해 커피 광고를 중단시켰고, 이 영향으로 1939년 1월에는 커피 수입량이 40% 감소하였다. 전쟁 직전에 이르러서는 군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국의 커피 생두와 원두를 국가가 몰수하였다.

독일의 전쟁 도발에 가장 충격을 받은 커피 생산국은 중앙아메리카의 과테말라였다. 전쟁 발발 당시 과테말라에 거주하는 독일인은 5000명 규모였고 대부분 커피 농장이나 커피 가공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커피 무역 또한 독일인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전쟁 초기에 들려온 히틀러 군대의 승전 소식에 과테말라 거주 독일인들 중 다수가 히틀러 지지를 표시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곧 후회하게 될 성급하고 무식한 선택을 하는 인간이 많다. 히틀러주의자들은 전쟁 중반 이후 미국에 체포되고 구금됨으로써 전쟁 이후 이 지역 커피 산업의 주도층이 바뀌는 출발점이 되었다.

1920년대 이후 불어닥친 사회주의 열풍, 급속하게 증가한 공산주의 세력, 여기에 나치화 위험성이 더해진 상황이었다. 전쟁 발발로 유럽으로의 커피 수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유일한 커피 시장으로 남은 것은 이웃 미국이었다. 커피 수출이 어려워진 것은 중남미 모든 국가가 같았다.
 
콜롬비아 커피
 콜롬비아 커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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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14개 생산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미주커피회의가 1940년 6월 10일에 소집되었고, 긴 논의 끝에 미주커피협정(Inter-American Coffee Agreement)을 맺었다. 결론은 생산국별로 수출량을 할당하는 것이었다. 세계 커피 소비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던 미국이 수입할 1590만 자루 중 브라질이 60퍼센트 가까이 그리고 콜롬비아가 20퍼센트를 조금 상회하는 분량을 수출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미주커피회의 기간에도 전쟁은 확대되었고, 커피 가격은 계속 하락하여 파운드당 5.75센트까지 내려갔다. 1941년에 발효한 이 협정 덕분에 전쟁 기간 미국에서의 커피 가격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중남미 커피 생산자들도 최악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인의 1인당 연 커피 소비량이 7.5킬로그램으로 역대 최고 수준에 오른 것이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이었다.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지역과 미국의 관계가 최선의 상태를 유지한 것도 아이러니하게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다. 전쟁과 커피가 가져다준 희한한 선린우호관계였다.

아메리카노의 탄생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의 참전이 본격화되면서 커피 가격이 불안해졌다. 군의 커피 수요 증가 그리고 선박을 이용한 커피 이동의 불안감 증가가 합해져 커피 시장의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졌고, 이는 커피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였다.

미국이 선택한 것은 일반인에 대한 커피 배급제였다. 커피 배급제는 두 가지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첫째는 기호품을 모든 시민들에게 공평하게 배급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족한 물품이던 커피를 군대에 우선 배정하자는 것이었다. 1942년 11월에 시작된 커피 배급제는 유럽에서 전세가 연합국에 유리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1943년 7월까지 유지되었다.

국가는 배급제를 선택하였고, 미국 국민은 커피를 묽게 마시는 습관을 선택했다. 적은 양의 커피에 많은 양의 물을 섞어서 마시는 방식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익숙해진 묽은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전쟁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전쟁에 이긴 미국은 패전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군대를 보냈다. 이들에 의해 새로운 커피 문화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국 군인들은 이탈리아의 쓴 에스프레소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들에게 에스프레소와 함께 뜨거운 물이 제공되었고, 미군들은 원하는 만큼의 물을 섞어 마셨다. 이탈리아 바리스타가 본 미국식 커피였다. 그들은 "카페 아메리카노 Caffe Americano"로 불렀다. 미국의 커피라는 뜻이다. 물론 커피같지 않은 커피라는 승전국 군인을 향한 조롱의 의미도 있었다.

전쟁터에서 일상으로 회복한 미국 군인들은 묽은 커피를 선호했다. 당시 미국에서 개발되어 인기를 끌고 있었던 커피메이커는 원두 가루로 묽은 커피를 내리는 기계였다. 음료 이름이 아직 아메리카노는 아니었다. 그냥 커피였다.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직원들이 다회용 컵에 음료 담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2021.9.28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직원들이 다회용 컵에 음료 담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2021.9.2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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묽은 커피에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스타벅스였다. 1982년 스타벅스에 합류한 텀블러 세일즈맨 하워드 슐츠는 1983년 이탈리아 출장에서 에스프레소를 활용한 커피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 문화를 경험하였다.

잠시 스타벅스를 떠났던 슐츠는 '일지오날레'라는 이름의 카페를 차렸다. 메뉴 첫 줄에 '아메리칸 커피 American Coffee'가 등장하였다. 슐츠는 1987년에 스타벅스를 인수하였고 드디어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아메리칸 커피가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얻었다. 더 이상 '아메리칸 커피'도 '묽은 커피'도 그냥 '커피'도 아닌 '아메리카노'가 정체성을 얻는 순간이었다.

스타벅스의 세계 진출로 아메리카노는 많은 세계인이 공통으로 마시는 커피의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이탈리아를 포함한 에스프레소 문화의 본고장 유럽에서 커피의 대명사는 여전히 에스프레소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Mark Pendergrast(2010). Uncommon Grounds.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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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 교수이며 커피인문학자이다. 대표적인 저서로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2021),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2019),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2015), <20세기 한국교육사>(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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