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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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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0일 방한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인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던 지한파 정치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대중과의 인연 때문이다. 바이든은 김대중이 2차 미국 망명(1982.12.23.~1985.2.6)할 때부터 친분을 쌓기 시작했으며 1984년경부터 한국 민주화 문제 등에 관해서 상호 이해를 넓혀나갔다. 바이든이 한국 민주화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김대중도서관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김대중과 바이든 관련 사료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사료정리 작업을 하면서 추가적으로 새로운 사료를 발견했고 정리 및 해제 작업을 거쳐서 5월 19일 공개했다.

공개 사료는 1987년 8월 28일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이던 김대중이 바이든 미국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다. 그러면 당시 김대중이 바이든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편지는 어떤 의미일까? 
 
김대중이 바이든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1987년 8월 28일 김대중이 바이든에게 보낸편지1 김대중이 바이든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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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바이든에게 한국의 민주화가 아직 미완의 상태라고 설명하다

1987년 8월 25일 바이든 상원의원의 보좌관인 엘리자베스 셔우드가 동교동 김대중 자택을 방문했다. 당시 대화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민주화 과정이 시작된 한국 정세에 대한 의견교환이 이뤄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김대중은 바이든 상원의원에게 셔우드 보좌관 방문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김대중은 바이든 상원의원에게 한국의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다음 두 가지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한국에서 군의 정치개입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것이 민주화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미국이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미국은 한국에서 민주화가 확고하게 이뤄질 때까지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대중은 미국 망명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국익적 관점에서 한국의 민주화가 미국과 한국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었다.

편지의 주요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군의 정치개입을 우려하는 내용이다.

"한국군의 정치개입은 두 가지 이유로 반대되어야 합니다. (1) 이것은 민주주의 제도와 문민우위 원칙에 위배됩니다. 실제로 지난 27년간 군부가 통치한 두 정권은 용서할 수 없는 인권탄압과 대규모 부패, 노동자에 대한 조직적 탄압 등을 초래했습니다. (2) 한국 정치군인들의 독단적인 행동은 한국과 미국 공동의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군의 정치개입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파괴할 것입니다."

이렇게 군의 정치개입의 문제점을 설명한 김대중은 1987년 6.29 이후에도 이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군의 정치중립이 이뤄지도록 바이든 상원의원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과정이 막바지에 이른 현 상황에서 군의 정치개입 위협이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면, 한국의 민주회복에 있어서 더 이상의 장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의원님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저는 미국 정부가 한국 정치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거부한다는 공개적인 의사표시가 한국 현 정권과 군부 체제를 억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의원님께서 조지 슐츠 국무장관에게 이 부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을 분명히 하도록 하고 주한 미국 대사가 그 정책을 확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촉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와 관련된 의원님의 외교적인 노력은 한국 민주주의 회복의 성패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렇게 군의 정치개입 문제를 거론한 김대중은 6.29 선언의 성격을 바이든 상원의원에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 국민과 정부가 한국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기억하시겠지만 1987년 6월 29일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는 갑작스럽게도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우리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노태우는 TIME과 NEWSWEEK 잡지들의 표지에서 영웅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사실, 만약 영웅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끈질기면서도 평화롭게 시위를 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집권 여당은 우리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투쟁의 승리는 국민의 힘에 의해서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미국은 항상 한국 국민의 편에 서는 것이 타당합니다." 
 
김대중이 바이든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1987년 8월 28일 김대중이 바이든에게 보낸편지2 김대중이 바이든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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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내용을 보면 김대중은 평소 알고 지내던 바이든 상원의원에게 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김대중은 왜 이러한 판단을 했을까?

1987년 6.29 선언 이후 한국 민주화 진전에 대한 낙관론이 나오고 심지어 한국의 민주화가 6.29 선언을 한 노태우의 결단에 의해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미국에서 이와 같은 견해가 상당히 팽배했었다. 당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전두환 정권의 친위쿠데타를 막아서 대규모 유혈사태 없이 한국 민주화 과정이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이와 같은 점을 우려하면서 6.29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군의 정치개입 문제 등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내용의 편지를 평소 인연이 있던 바이든 상원의원에게 보낸 것이다.

김대중의 민간외교와 바이든의 실천이 갖는 의미는

김대중이 바이든에게 보낸 편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바이든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 김대중을 알게 된 이후 한국 민주화를 위한 의원외교활동을 활발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망명 중이던 김대중이 1985년 2월 귀국한 이후 김대중의 대미 창구 역할을 했던 한국인권문제연구소(1983년 김대중의 미국 망명 시기에 설립)는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동생) 상원의원, 바이든 상원의원 등 김대중과 인연이 있는 유력 정치인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다.

그래서 미국 의회가 당시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레이건 행정부를 견제하여 한국의 민주화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고 한 것이다. 김대중의 이러한 구상은 실제 효과를 거두었으며 바이든 상원의원은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여러 활동을 전개했다. 김대중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만 봐도 두 건(2021년 1월 19일 공개)이 확인된다.

바이든 상원의원은 1986년 2월 20일 동료 상원의원 7명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서 신민당과 민추협의 개헌서명운동에 대한 탄압에 항의했다. 그리고 1987년 11월 20일 동료 상원의원 30명과 함께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전두환 정권의 인권탄압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양심수 석방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레이건 행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처럼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부터 한국 문제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둘째, 한국 민주화운동과정에 있어 민간외교의 역할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한 편지를 보면 김대중은 바이든 상원의원에게 조지 슐츠 국무장관이 역할할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1987년 11월 20일 바이든을 포함한 미국 상원의원들이 조지 슐츠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이 있다. 물론 이 편지 작성 및 발송에 있어 김대중의 조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여부는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일정 정도 인과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사료를 통해서 김대중이 민주화를 위한 민간외교를 활발하게 전개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료를 통해서 볼 때 한국 민주화를 위한 김대중의 민간외교는 큰 성과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자유, 민주, 인권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김대중과 바이든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김대중이 바이든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대중이 바이든을 설득하고 협력관계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보면 미국 정치인이 중시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그에 기초해서 정치적 이익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정치인이 한국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과거에는 한국의 국력이 지금보다 약했고 정보통신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중요한 정치인을 만나서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협력관계로까지 발전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김대중은 미국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가치와 정치적 이익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한국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문제 등에 관해서 설명하고 설득했다. 그리고 이것은 바이든의 경우에서 보듯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크게 배워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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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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