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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보여준 파격적 행보가 여러모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며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저는 오월 정신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올해 초 여러분께 손편지를 통해 전했던 그 마음 변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예전에 없는 몇 가지 풍경들로 눈길을 끌고 있다. 우선 국민의힘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5·18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 참석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날 윤 대통령과 함께 KTX 특별열차에 동승해 광주에 내려온 국민의힘 의원들은 100여 명 가까운데, 역대 어느 보수 정권에서도 보지 못하는 풍경이다.

오는 6.1 지방선거에 역대 어느 선거보다 많은 후보를 내세운 국민의힘이 '호남 다기서기'를 통해 표심을 호소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당의 파격적 움직임에 더불어민주당마저 당황해하는 기색이다.

압권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모습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해 참석자 전원이 모두 일어나 옆 사람과 서로 손에 손을 마주 잡고 반주에 맞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는데, 한마디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역대 보수정권하에서 치러지는 5‧18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로 여러 차례 파행을 빚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2010년 5‧18 기념식은 그 파행의 정점이었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빼고 난데없이 기념식 하루 전 가진 리허설에서 경기도 민요인 '방아타령'이 연주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급히 다른 곡으로 대체했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올해 5‧18기념식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나 다름없다.

기념사 원고지 7.2장 분량... 문 대통령의 1/3 수준 그쳐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비교(2017~2022)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비교(2017~2022)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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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외견상 큰 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허탈하기 짝이 없다. 우선 나는 이렇게 짧은 5‧18 대통령 기념사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의 5‧18 기념사는 분량에서도 역대 어느 기념사와 비교된다. 짧아도 너무 짧다.

윤 대통령의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는 모두 1130자로 원고지 7.2장 분량이다. 이에 반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참석한 제37주년(2017년) 기념사는 2689자 원고지 16.5장 분량이었다. 문 대통령 재임 중 3차례 5‧18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그 이듬해 참석한 39주년(2019년) 기념사는 원고지 20.1장, 2020년에 치러진 제40주년 기념식 기념사는 원고지 19.9장 분량이었다.

문 대통령을 대신해 국무총리가 참석했던 두 번의 5‧18 기념사도 이렇게 짧지는 않았다. 이낙연 총리가 참석한 2018년(제39주년) 기념사는 원고지 13.6장, 지난해 김부겸 총리가 참석한 5‧18기념사는 14.8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39주년 기념사와 비교하면 거의 1/3 분량, 국무총리가 참석했던 기념사와 비교해도 거의 1/2 정도다.

물론 기념사 분량을 놓고 단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국민과의 소통 방식이 주로 말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면, 기념사에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느냐는 대통령이 그 사안에 대해 얼마나 무게와 고민을 두고 있는지를 비춰주는 하나의 징표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몇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선 당사자여서 더욱 그렇다. 앞서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발언한 데 이어, 이 문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그 뒤 반려견 토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사실상 국민을 조롱하는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자유'만 12번 강조... 약속한 '헌법전문 수록'은 빠져

그런데 취임 뒤 첫 5‧18 기념사 내용도 허망하기 짝이 없다. 윤 대통령은 1130자 5‧18 기념사에서 '자유'를 12번 언급했는데, 그 중 8번은 '자유민주주의'였다. 반면, 미완의 과제인 최종 발포 책임자에 대한 '진상규명', 42년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행방불명자' 문제, '북한군 개입설' 등 끊이지 않는 '역사 왜곡' 방지 문제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특히 대선 기간 약속했던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문제가 취임 후 참석한 기념사에서 다시 언급될 것이냐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기대와 달리 이날 언급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윤 대통령과 여당이 광주에 총출동하면서 보여준 광주 행보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권 보수 여당이 눈을 의식해서든, 표를 의식해서든 '호남 다가서기'에 나선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다만 윤 대통령의 이번 5‧18 기념사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오랫동안 매달려온 지역사회와 5‧18 유족들의 염원과는 분명 한 참 비켜서 있다. 특히 올해 기념식에 보여준 외형적 행보에 견줘 볼 때 그 허탈감은 더욱 크다.

태그:#5.18 기념식, #광주민주화운동,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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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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