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편집자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실수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주문받은 음료와 전혀 다른 음료를 만들어서 폐기 처분한 아르바이트생의 실수부터, 상급자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정작 중요한 첨부 파일은 누락하는 경우 등 실수의 종류도 다양하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팍팍해졌다지만, 이런 '애교 수준'의 실수라면 꾸지람을 듣는 정도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입사원의 실수라면 그가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건설적인 질책을 통해 배우는 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드물지만 직원의 실수 탓에 회사에 말 그대로 엄청난 손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다. 값비싼 원료나 기기에 손상을 입힌다거나 잠깐의 게으름을 이기지 못해 점검하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회사의 선처를 구하기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 실수로 발생한 손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금전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

먼저 회사가 입은 금전적인 손해를 배상해야 할 민사적인 책임이 발생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위약 예정의 금지, 즉 근로자에게 어떠한 손해에 대한 배상을 사전에 약정하는 것만을 금지하고 있을 뿐 실제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사후적으로 배상을 구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개별 직원은 자신의 실수, 즉 '과실'이 전체 손해에서 차지하는 비율만큼을 배상해야 할 책임을 진다. 개인의 부주의 등 과실이 크면 클수록 그 금액은 늘어난다. 거꾸로 통상의 주의 의무를 다했는데도 '운 나쁘게' 발생한 사건이라면 금전 책임 또한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대법원은 사업의 성격과 규모, 가해 행위의 발생 원인과 성격, 이에 대한 사용자의 예방 대책 마련 여부 등을 종합하여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2009.11.26. 선고, 2009다59350 판결)고 판시하였다.

이는 근로계약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개별 직원의 행위는 개인의 행위임과 동시에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위이므로, 직원의 실수 즉 과실은 결과적으로 그에 대한 올바른 지시를 하지 못한 사용자 및 관리자의 책임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원이 말 그대로 '고의'로 시설을 파손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 과실 비율을 산정함에 있어 지휘·명령 체계상의 상급자들 또한 일종의 '연대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해당 업무지시 자체가 적절하였는지, 해당 직원이 지켜야 할 업무 절차가 제대로 갖추어졌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과실을 정하게 될 것이다.

업무상 과실에 대한 징계

우발적인 실수라고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직원은 근로계약상 성실의무 위반 내지는 개별 사업장의 취업 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과실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화장품 생산 공장에서 1번 라인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은 A라는 직원이 있다 치자. A는 자신이 맡은 라인의 기계가 오작동하지 않는지 실시간으로 살피는 한편, 매일 작업이 종료되면 기기를 청소하고 파손된 곳이 있는지 회사에 보고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만일 A가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하는 생각으로 작업 후 점검을 하지 않고 보고서에는 점검했다고 허위로 기재하면 자신의 직무를 성실하게 다하지 않은 잘못이 인정된다.

만일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갑작스레 기기가 파손되어 수리비가 몇억 원 단위로 나온다면, 거기에 라인이 가동되지 못해 추가 손실까지 발생한다면  사용자는 단순히 금전적인 배상뿐만 아니라 개별 노동자가 근로계약상 해야 할 정당한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징계할 수 있다. 특히 이 경우 허위 보고 내지 보고 누락 등의 사유를 들어 더 높은 수준의 징계도 가능하다.

실제로 법원은 최근 업무상 과실 사건으로 인한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3월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이상훈 부장판사)는 대우건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수압시험 당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설비에 누수가 생겨 공사가 6개월 이상 지연된 데에 현장소장이었던 근로자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과거 새마을금고 상무가 이사회 의결 없이 임의로 5억 원을 투자하였다가 약 4000만 원의 손해가 발생하여 징계 해고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징계의 '양정' 즉 비위 행위의 수준보다 징계의 수준이 과하다는 점을 들어 부당 해고임을 인정(대법원 1999.4.23. 선고, 98두618 판결)했다. 

손해액 등 비위 행위에 따른 회사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면, 징계하더라도 견책이나 감봉 등 낮은 수준의 벌을 검토하여 일종의 경고 신호로 사용하는 편이 타당하다. 실수의 정도가 중대하고 피해도 매출액 대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정직 등 중징계를 검토하되 그럼에도 해고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류하는 편이 좋다.

다만 개인의 실수가 1회에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경우에는 더 높은 수준의 징계도 가능하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2018년 업무상 부주의에 따라 징계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자기 과실로 사고를 유발한 노동자를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는 결정(중앙2018부해306)을 내린 바 있어, 그 연속성이나 개선의 정 등을 추가적인 고려 요소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원 잘못으로 회사가 받은 벌금

직원의 실수가 단순히 사업장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가령 정화 장치를 통하지 않고 오·폐수를 하천이나 해양에 투기하는 행위를 저질렀다면 해양오염방지법 등 개별 법령에서 정하는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

상당수 법령에서는 행위자 외에 그 법인을 처벌하는 이른바 '양벌 규정'을 채택하고 있다. 개별 직원의 무단 방류로 회사가 벌금형에 처해지게 된 경우, 그 벌금 상당액을 불법 행위의 당사자인 직원에게 구할 수 있는지 문의가 많다.

법원은 이러한 벌금이 대외적으로는 '회사의 잘못'이어서 사업 그 자체에 부과된 벌금인 만큼, 비위 행위를 한 당사자 직원에게 그 배상을 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대법원 2007.11.16. 선고, 2005다3229 판결)하였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양벌 규정에 의한 사용자의 처벌은 종업원의 처분과는 독립하여 그 자신의 종업원에 대한 선임·감독상의 과실로 인하여 처벌되는 것"이므로, 결국 사용자가 해당 직원에게 비위 행위를 하지 않도록 조치할 감독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에 따른 사용자 자신의 과실 행위를 종업원에게 돌릴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경우 회사는 벌금 그 자체에 대해서는 배상을 구할 수 없다. 다만 이로 인해 실제적으로 제3자에게 발생한 손해액 등 민사상의 손해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은 검토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우 회사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고 직무상 수행해야 할 업무를 명백히 태만히 했으므로 해당 직원을 징계할 수 있다.
   
 손해액에 대해 직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일부 금액을 배상하기로 원만하게 합의된 경우라 하더라도 이를 임금에서 직접 공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하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 원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2022.1.7
  손해액에 대해 직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일부 금액을 배상하기로 원만하게 합의된 경우라 하더라도 이를 임금에서 직접 공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하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 원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2022.1.7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임금 직접 공제, 원칙적으로 위법

손해액에 대해 직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일부 금액을 배상하기로 원만하게 합의된 경우라 하더라도 이를 임금에서 직접 공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하다.

근로기준법은 임금 지급의 전액불 원칙을 규정하면서 원칙적으로 상계를 금하고 있다(제43조 제1항). 가령 월 급여액이 300만 원인 직원이 200만 원의 배상을 하기로 정해졌다 하더라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그달 임금을 100만 원만 지급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

이 경우 법원은 임금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는 상계, 즉 해당 직원의 동의를 얻어 상계한다면 전액불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대법원 2001.11.27. 선고, 2000다51544 판결)고 보고 있기에, 단순히 배상액을 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면 등을 통해 해당 금액을 급여에서 제한다는 데 직원의 동의를 사전에 구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 금액이 많아 월 급여액을 초과하는 경우라면,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여러 월에 걸쳐 급여에서 상계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특히 임금 지급의 전액불 등 4대 원칙이 노동자의 생활상 최소생계비를 보전하는 데 있음을 고려할 때, 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많은 금액을 일시에 상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일 실수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전술한 내용들은 이미 발생한 업무상 과실에 따른 조치와 관련된다. 특히 사용자로서는 노동자의 과실이 큰 사건의 경우 다른 노동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배상이나 징계 등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다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언처럼, 회사로서도 직원으로서도 이와 같은 다툼이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등 길어지면 지치고 서로 신뢰를 상실하는 일종의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애초에 업무상 과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실수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한편 다른 직원들에게도 투명하게 공개하여 잘잘못을 따지고, 직원의 귀책이라면 엄중히 문책하되 회사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세워야 한다. 특히 해당 실수가 과거에도 반복된 전례가 있다면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여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런 점에서 노사협의회 등 사내 협의체를 통해 업무상 과실 사례를 공식 논의하는 것이 좋다. 애초에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도록, 또 그 배상의 주체가 자신이 되지 않도록 회사도 노동자도 모두 문제 해결 및 예방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좋다.

태그:#노무사, #업무상과실, #손해배상, #징계, #근로기준법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