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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2년 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김현주씨의 글입니다.[편집자말]
대전에서 결혼하고 큰아이를 낳고 몇 년간 경력이 단절된 상태에서 직장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대구에서 한 은행에 근무했었고, 출판사나 학원 경력도 있었지만 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구인 사이트를 찾아보았지만, 콜센터 상담 인력을 구하는 광고만 무성했습니다. 주 5일 근무에 단순한 업무라는 광고 문구에 떨리는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 5분도 되지 않아 연락이 와 깜짝 놀랐습니다. XX카드라는 이름은 나를 잠시나마 설레게 했습니다. 앞으로의 내가 흘릴 눈물을 모른 채 말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카드회사 콜센터 상담사 수진이 수습사원 수진을 교육하는 모습.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카드회사 콜센터 상담사 수진이 수습사원 수진을 교육하는 모습.
ⓒ (주)더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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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고 한 달간 160시간의 교육을 받고 매일 시험을 봤습니다. 한 달 교육비로 40만 원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교육 날 최종테스트에 통과해야만 입사할 수 있다고 해서 새벽까지 공부하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함께 교육받던 교육생의 인원이 줄어들어 결국 20명이 됐습니다. 입사를 한 건 단 2명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나중에는 동기도 없이 혼자 남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콜센터 일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교육 이수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콜을 받기 시작하니 교육 때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고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교육받은 대로 문의하는 고객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공부하는 느낌이었죠.

'~요·죠체' 사용을 적당히 해야 하고 공감 호응을 잘해야 했으며, 계이름 중 솔의 음성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마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누군가에게 조정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화장실 갈 때도 체크하고 가야 했습니다. 관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항상 짜증이 나 있는 듯했습니다.

"공부하고 오셨어요?"
"이것도 모르시면 어떻게 해요."
"다른 분들은 이 정도 하면 잘하세요."
"제가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찾아보신 거 맞아요?"


나이 어린 관리자의 이런 말들이 비수가 돼 몰래 울 곳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저와 같은 신입도 울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잠시 위로가 됐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만 바보가 아니구나.'

맘을 다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관리자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자리를 이렇게 길게 비우면 어떻게 하냐고요. 다시 눈물 삼키며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맘을 다잡아 봅니다.

콜센터 15년차, 워킹맘

그렇게 세월이 지나 콜센터 경력만 15년이 됐습니다. 요즘 신입 상담사들이 질문하면 제 콜도 포기하고 업무를 알려 줍니다. 그때의 서러움이 떠올라서요. 제가 이렇게 힘겨워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건 결국 주변의 좋은 동료, 언니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모든 워킹맘이 그렇듯이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습니다. 아직도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있습니다.

둘째 아이의 출산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평소 어린이집 선생님이 제 아이 때문에 1시간이나 일찍 출근해 주었는데, 그날따라 버스가 고장 나 제시간에 오지 못해 어린이집 앞에서 발은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콜센터는 컴퓨터를 켜고 시스템을 켜는 시간까지 꽤 걸리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8시 40분까지 도착해야 했고 교육도 많아 항상 일찍 출근해야 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반드시 전화를 받기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더 늦어지면 지각을 할 테고 지각해서 감점받으면 조원들 볼 낯도 없고 점수도 깎인다는 생각에 4살 된 아이를 잠시 어린이집 앞에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뛰어서 택시를 잡아 회사를 향했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습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도착에 아이를 만났다는 전화가 걸려 왔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사진은 tvN 드라마 <미생> 속 워킹맘의 모습
 사진은 tvN 드라마 <미생> 속 워킹맘의 모습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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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출입 목걸이를 걸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들어가는데 옆에 정규직 콜센터 상담사가 아이의 손을 잡고 직장 내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들어오는 장면을 봤습니다. 정규직만 가능한 직장 내 어린이집이었습니다. 같은 건물에서 같은 회사를 위해 일하지만, 그 안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하루에 적게는 100여 콜, 많게는 200콜 넘게 받았습니다. 화장실도 실적을 보며 '이 콜만 받고 가야지' 하다 잊어버릴 때도 많았습니다. 물을 많이 먹으면 화장실을 가야 하니 조금만 마셨습니다.

목이 아프게 전화를 받고 고객에게 욕을 먹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고객에게 무조건 친절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 시험을 보고, 점수로 매일매일 나열되는 나의 일이었습니다. 가정에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지경이었습니다. 

"여보, 콜센터 일 그만두면 안 될까? 당신 너무 힘들어 보여."

어느 날 남편이 꺼낸 말이었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묻자 돌아온 남편의 답에 참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 원래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데, 요즘 아이들이나 나한테 말도 잘 안 하고 지쳐서 그런지 짜증을 많이 내기도 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 같아. 그만두고 좀 쉬는 게 어떨까. 애들한테 좋지 않을 것 같아."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던 모습이 스쳤습니다. 가족여행을 한 번 가려 해도 금요일이나 월요일 휴가를 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으면서도 열심히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하고 견디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남편의 말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종일 콜에 시달리다 보면 아이들에게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아 나쁜 엄마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일부터 출근 안 해. 이제 엄마가 많이 놀아줄게. 그동안 미안했어."

아이들이 저를 안고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할 말 하는 상담사
 
사진은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와 콜센터노동자 등이 4월 20일 오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6.1지방선거 정책요구안을 발표하고 "콜센터 노동가치 인정하고 노동환경 개선하라"고 촉구하는 모습.
 사진은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와 콜센터노동자 등이 4월 20일 오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6.1지방선거 정책요구안을 발표하고 "콜센터 노동가치 인정하고 노동환경 개선하라"고 촉구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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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큰 아이가 성인이 됩니다. 전 다시 콜센터로 돌아와 일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콜센터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아직도 휴대폰을 강제 수거하고, 화장실을 제한하는 콜센터가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계속되는 경쟁이 이런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콜센터 상담사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지만 상담사들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통화하는 상담사는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입니다'는 멘트가 가슴을 아리게 할 만큼 우리 사회가 상담사를 무참히 짓밟았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상담사로 살면서 무조건 참는 상담사가 아니라 할 말은 하는 상담사가 되려고 합니다. 물도 마음껏 마시고, 화장실도 눈치 보고 가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일하는 엄마로,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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