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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자동차 타이어 제조업체이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2021년 9월 국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타이어 브랜드에 대해 평판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 타이어는 당당히 업계 1위를 차지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2020년 글로벌 타이어 기업 6위에 올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한국타이어는 산업재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기업이기도 하다. '죽음의 공장', '백혈병 공장', '집단 돌연사' 등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한국타이어라는 브랜드의 이면에는 노동자의 죽음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나 수식어처럼 따라붙었다. 

고무타이어 제조업의 유해·위험성

타이어 제조업은 넘어짐, 미끄러짐 등의 안전사고가 다발하는 산업, 중량물 취급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과 요통의 발생이 많은 산업으로 분류된다. 동시에 고무타이어 제조업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암성 물질로 규정하고 있는 산업으로 직업성 암 발생률이 높은 산업이다. 과거 1940년대부터 고무제조업은 높은 농도의 흄(수증기)이나 유기용제에 노출되는 직무로 악명 높았고, 1950년대부터는 고무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방광암, 백혈병, 폐암, 위암 등 암 발생위험이 높게 나타난다고 보고되었다. 이런 결과들이 누적됨에 따라, 1982년 국제암연구소는 고무산업 자체를 사람에게 발암성인 물질(Group1)로 규정하였다.

왜 고무산업 자체를 발암성 물질로 규정했을까? 고무는 생산품의 원료로, 고무산업에서는 수많은 화학물질을 취급한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제조공정에서는 많은 부산물, 반응물이 발생한다. 또한 생산제품과 공정의 온도에 따라 원료물질뿐 아니라 발생되는 부산물 등이 달라지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무를 생산하는 과정은 크게 여러 원료를 배합하는 배합과정, 혼합기에 원료를 섞고 원료에 따른 고온을 유지해주는 혼합과정, 앞의 혼합과정을 마치고 나온 고무를 열과 압력으로 성형이 잘되게 해주는 밀링과정, 재단과 성형과정, 좀 더 강한 고무재료나 방수, 방습을 위한 후처리과정, 검사과정 등이 있다.

이런 제조과정의 유해·위험성 때문에 한국안전보건공단의 안전보건자료실 '고무(타이어)제조업' 관련 자료에서는 타이어 제조 과정의 주요관리 대상으로 '스티렌 부타디엔고무, 카본분진, 유기용제(톨루엔), 고열, 소음'을 지목했다. 또한 ▲고무타이어 제조공정에서 화학고무와 각종 첨가제에서 나오는 분진과 이들이 화학반응을 하여 나오는 가스 ▲니트로스아민, 나프틸아민, 방향족 탄화수소 등의 발암물질이 고무 제조과정에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어, 사업장에서 이런물질이 사용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한다. ▲고무의 탄력과 수명을 길게 하기 위해 새로운 합성고무와 다양한 첨가물질들이 개발되고 사용되는데, 유해 물질들은 어떤 물질들이 나오는지, 그 유해성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며 보건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고무타이어 제조업에서 진행된 암과 관련된 해외의 선행 연구의 결과를 소개하며 ▲혼합이나 배합(compounding)공정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위암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했으며 ▲가류나 경화(curing)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폐암이, ▲타이어 제조 작업(tire-building)을 하는 노동자들은 백혈병에 걸릴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았다고 적시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7년 삼성반도체 고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으로 반도체 제조공정의 유해·위험성이 세상에 폭로되던 시기보다 한해 빠른 2006년 한국타이어에서도 백혈병을 비롯한 직업성 암과 노동자들의 돌연사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바 있는데, 당시의 문제 제기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터무니없는 의혹만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역학조사에서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위험 실태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 중인 한국타이어지회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 중인 한국타이어지회
ⓒ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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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의 유해·위험한 작업환경 문제가 2006년~2007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계기로 언론에 보도된 이후 행정당국의 개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여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적발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하 산보연)은 역학조사를 실시하여 2008년 2월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300페이지가 넘는 당시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산보연은 공장 내에서 벤젠 등 유해 화학물질들이 검출되는지 측정한 결과, 대부분 검출되지 않거나 검출되더라도  기준치 이내의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역학조사 자료는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심장질환 사망률이 일반 국민과 비교하여 5.6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언급하긴 하지만, 이 또한 '돌연사와 작업환경과의 직접적 관련성은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2007년 역학조사 과정에 대해 한 노동자는 "역학조사 하루 전 작업자들이 기계 앞에 놓고 작업을 해 왔던 (화학물질) 통을 다 회수하거나, 창문도 다 열고 청소도 했다"며 실제 노동과정과 전혀 다른 조건에서 역학조사가 진행됐다는 사실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일부 폭로하기도 했다.

역학조사 전문가 자문위원회에서도 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부 언론이 입수하여 드러낸 2007년 역학조사 평가위원회 회의록과 전문가 자문위원회 회의록에는 자문위원들의 문제 제기도 담겨있다. 자문위원들은 작업환경 개선조치가 많이 된 상황에서 측정한 것의 문제, 당사자인 작업자들과는 왜 인터뷰 조사를 하지 않았는지 등의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사위원들은 '회사 쪽의 비협조와 자료 입수의 어려움 등으로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답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결국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위 회의의 결과는 역학조사 최종 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한 '고무노조'

한국타이어의 위험천만한 노동재해 현실은 여러 부실 관리의 결과였다. 고무타이어 제조업의 유해·위험성에 대한 회사 차원의 안전·보건조치가 전무했던 현실, 이를 지도·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조차 사고와 질병 발생 이후 땜질식으로 개입하는 부실 행정지도의 문제, 산보연의 역학조사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던 것 등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는 노조에 의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노총 고무노조는 2017년 11월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발생 후 고용노동부의 행정명령으로 전면 작업중지가 실시되자, 대전지방노동청 앞에서 작업중지 명령을 철회하라는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또한 작년 말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7년 고용노동부의 '직업성 암 인정 기준 확대' 움직임에 '고무타이어 제조업'이 포함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사측 대신 고용노동부 관료에게 접대와 로비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고무노조는 작년 회사 설립 후 59년 만에 첫 번째로 시행된 역사적인 양대노조 공동의 임·단협 파업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한 직권조인 결과로 사실상 탄핵¹에 이른다. 그리고 2022년 7년간 소수노조로서 한국타이어에서 노동자의 생명, 안전, 건강권 투쟁에 앞장섰던²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가 교섭권을 갖는 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시동을 걸게 됐다.

안전과 건강은 우리가 지킨다

'노동조합이 있어야 더 건강하다', 최근 몇 년간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조합들이 노조 가입을 권유하며 실시하는 캠페인의 내용 중 하나다. 국외뿐 아니라 국내의 많은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작년 발표된 한 학술연구 논문은³ 노동조합조직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산업재해의 발생을 줄이고 산업재해 은폐를 감소시키며, 노조조직률 1% 증가가 산업재해 발생확률을 0.7%, 산업재해 은폐확률을 4.1% 줄인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조직률에 따라  노조의 힘이 강해지면 사용주에 대한 설비투자나 교육훈련을 강제하는 힘이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타이어 '어용노조'의 그간의 역사는 노동조합이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전혀 상반된 결과로 드러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제야 노동조합의 교섭 대표 지위의 교체로 한국타이어가 '죽음의 공장'이 아니라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로 거듭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실로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1) 더욱 놀라운 것은 직권조인을 단행한 고무노조 위원장이 직선제로 선출된 첫 번째 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전까지는 현장 팀마다 2~3명의 대의원을 뽑고, 그 대의원들이 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식의 간선제였고, 그 과정에 회사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투표용지 인증샷을 요구하는 등 관리했던 정황이 여러 차례 언론에 폭로되기도 했었다.
2) 2014년 11월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설립 후 소수노조이지만 앞장섰던 건강권 활동은 특집 2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3) 김정우,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산업노동연구>, 2021 27권 1호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손진우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민주_노조, #노동조합, #노동_안전_보건_활동, #한국_타이어, #금속_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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