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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기자말]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 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 <그럴 때가 있다>, 창비, 2022년, 14~15쪽


세상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쪽에서 울리면 다른 한쪽까지도 울리는 '인드라의 구슬'처럼. 코로나19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유행병이 수년간 전 지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망가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양적완화와 저금리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한 물동량의 감소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했고 삶은 그만큼 더 힘들어졌습니다. 더군다나 올해 초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코로나로 지친 삶을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50여 년, 아니 20~30년 전만 해도 이러한 일들,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받아들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지구는 그렇지 않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삶이 나의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까닭, 세계화 때문일까요. 만약 세계화가 문제라면 세계화를 끊고 고립주의를 택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방법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전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세계화는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제 관계에는 냉정이 먼저 작용합니다.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타자를 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타국민의 괴로움을 잘 알지만, 꾸준한 관심을 이어가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국내 문제가 산적한 오늘, 우리의 시선을 타국으로 돌리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관심'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마음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타자를 위하고 그 삶을 지지하는 '마음'
 
이정록 시인의 시집
 이정록 시인의 시집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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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의 땅들, 불모지가 아닙니다. 그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피부색이나 언어, 종교, 문화는 다르지만, 모두 뜨거운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입니다. 동물의 권리까지 주장하는 오늘, 나와 멀리 떨어져 있고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과 아우성을 외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겠습니까.

화자는 말합니다. '매끄러운 길인데 /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라고요. 화자의 진술처럼 저는 누군가의 눈물이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내 삶의 작동방식 속에도 '상호작용' 하고 있다고.

너무 억지 주장입니까. 단순히 시적인 '감정의 발화'로 이 문장을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제가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까닭, 저 원망과 아픔의 마음이 다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우리가 저 마음을 부정한다는 것은, 숫자와 데이터로만 세계를 보려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영혼이 없는 유기체일 뿐이고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과 인간, 크게 다를 것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영혼이 없는 유기체인 인간에게 종교란 망상일 뿐일 테죠. 우리가 근거하고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립니다.

인간이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까닭,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자를 위하고 그들의 삶까지도 지지해주려고 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을 화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촛불이 깜박, /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 순간, 아득히 먼 곳에 /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라고요.

저 불씨는 나로부터 지구 반대편까지 건너갔다가, 내가 언젠가 불씨를 잃어버렸을 때 건네주려고 올 것입니다.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의 역사는 지속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이정록 시인은...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를 쓰며, 충청도 사투리를 가장 맛깔스럽게 시로 표현하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시집으로 『의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그럴 때가 있다

이정록 (지은이), 창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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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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