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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쯤 기독교 축일인 '부활절'이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남을 찬양하는 날이다. '부활'이라는 뜻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이거나 때로는 쇠퇴하거나 폐지한 것이 다시 활성화되는 일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최근 증류식 소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증가와 함께 양조장들의 증류식 소주 생산 종류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소비나 관심의 증가를 처음 일어난 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증류식 소주를 많이 마셔왔고 또한 1996년에 이미 증류식 소주의 부활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많이들 알고 있듯이 소주의 제조 기술은 연금술의 증류 기술로부터 시작되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증류 기술이 13세기 고려시대 때 몽고(원나라)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로 온 1만여 명의 원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 병참기지인 개성, 안동, 제주도 등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먹을 소주를 빚게 되면서 소주의 제조법이 전해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지봉유설(1614년)'에는 이때 소주가 오직 약으로만 쓸 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귀했고 쉽게 마시기 어려웠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이후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술의 제조방법들이 만들어지면서 소주 역시 다양한 제조법이 개발되고 발달하였다.

1846년 조선후기 홍석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해 집필한 '동국세시기(1849년 경)'에 따르면 "소주는 독막(지금의 공덕동) 주변의 삼해주가 좋고, 평안도 지방의 감홍로와 벽향조, 황해도 지방에는 이강고, 호남지방에는 죽력고와 계당주, 충청도 지방에는 노산춘 등이 좋은 술로 선물용으로 서울로 올라온다"라고 했다.

한국인이 희석식 소주를 즐겨 찾는 이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이 즐겨 먹었던 소주가 크게 변화한다. 당시만 해도 소주 제조장이 전국적으로 2만 8천여 개에 달했으며 여기에서 매우 다양한 소주들이 생산되고 판매되었다. 이 당시 상당수의 소주 제조장들은 추운 북쪽에 많았다. 백미(白米), 고량(高粱), 좁쌀(粟), 수수(蜀黍) 등을 이용해서 제조했던 전통방식의 재래식 소주였다.

하지만 1919년 평양과 인천에 조선 최초의 주정식 소주 공장이 세워졌다. 평양에는 '조선 소주'를 인천에는 '조일 양조'를 설립했다. 이후 일본인들이 당밀(糖蜜)을 주된 원료로 공장에서 대량 생산했던 주정식(酒精式) 소주, 곧 신식소주에 의해 조선의 증류식 소주들은 서서히 몰락하게 된다. 쌀과 수수 등의 곡물을 이용해서 발효 후 증류 하는 방식으로는 당밀이나 고구마를 이용해 가격을 낮추고 연속식 증류기를 통해 대량 생산을 한 주정식 소주와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의 입맛이 주정식 소주에 길들여지는 과정을 밟게 되어 지금까지 전통적 방식으로 제조하는 몇몇 소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주정식 소주(희석식 소주)를 먹게 되었다.
 
조일양조의 금강소주 광고(1925년4월14일)
▲ 조일양조 소주광고 조일양조의 금강소주 광고(1925년4월14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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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은 해방이 되고서도 지속되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이 계속 상승하고 소주의 단순한 맛과 향에 대해서 불만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나온 것이 '프리미엄 소주'이다.

1996년 3월 보해양조가 국내 처음 '프리미엄 소주'라는 간판을 내걸며 '김삿갓' 소주를 출시했다. 100% 천연 벌꿀로 맛을 낸 '벌꿀 소주'로 기존 소주는 옥수수나 타피오카를 사용했는데, 쌀보리를 원료로 한 원료주정을 고급화시켜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풍미를 강조했다. '김삿갓'은 출시 한 달 만에 150여만 병이 팔려나갔고, 당시 소주 가격보다 2배 비싼데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

이렇게 프리미엄 소주가 잘 팔리는 것을 보고 두산경월(현 롯데주류)도 1996년 6월 '청산리 벽계수'를 출시하며 고급소주 시장에 뛰어 들었다. 출시한 뒤 2개월 만에 10만 상자까지 판매량이 치솟았다.

이후 거의 모든 소주 회사에서 '프리미엄 소주'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금복주는 그해 5월 '독도'를 출시했고 보배소주의 '이몽룡', 한라산 소주의 '백록담', 대선소주의 '암행어사', 백학소주 '정이품', 대구 금복주의 '영의정', 이듬해인 1997년 보해가 '곰바우', 두산경월이 '청색시대'를 내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제품명들이 처음 나왔던 '김삿갓'을 벤치마킹해서인지 비슷한 느낌의 상표명이라는 것이다.

'김삿갓' '이몽룡' 등 프리미엄소주 열풍 불었지만
 
1996년 당시 생산되었던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들
▲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1996년 당시 생산되었던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들
ⓒ 최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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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리미엄 소주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소비가 감소했다. 또한 당시 제품은 새로운 소주 수요층으로 젊은 층과 여성을 끌어들인다는 목표로 맛의 차별화를 위해 벌꿀을 감미료로 사용해서 소주의 쓴맛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잠시 이들 소주에 관심을 가졌던 술꾼들이 벌꿀을 감미료로 한 고급 소주의 맛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소주는 소주다워야 한다'는 인식의 벽도 일부는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고급보다는 기존에 마셔오던 값싼 소주를 선호한다는 점도 작용을 했다. 이후 다시 희석식 소주의 시대를 지내오다 잠시 과일 소주의 붐을 거치게 된다. 이제 다시 '증류식 소주'라는 원래의 이름으로 프리미엄 소주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리는 고려시대부터 쌀과 곡물을 이용해 만든 증류식 소주(현재의 프리미엄 소주)를 발전시켜왔고 600년 이상의 오랜 기간 동안 마셔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짧은 시기에 증류식 소주를 버리고 희석식 소주로 옮겨 간 것이다.

이후 1996년에 아주 짧은 시기였지만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있었고 이제 다시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소주들은 1996년처럼 감미료를 넣어 만든 것들보다는 원료나 증류방법 또는 숙성 등을 통해 제품의 차별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기에 1996년과 같은 급격한 소비 감소는 없을 것이라 본다.
 
전통주갤러리에 전시중인 증류식 소주
▲ 다양한 증류식 소주들 전통주갤러리에 전시중인 증류식 소주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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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다. 아마도 이 증류식 소주의 열풍도 언젠가는 식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관심이 1996년의 짧은 관심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양조장들의 제품개발에 대한 노력과 소비자들이 소주를 즐길 수 있게 문화를 같이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증류식 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다르게 향과 맛을 즐기는 술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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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연구를 하는 농업연구사/ 경기도농업기술원 근무 / 15년 전통주 연구로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 진흥 대통령상 및 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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