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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캐나다 밴쿠버아일랜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한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나는 교환학생 3수생 출신이다. 면접을 세 번 봤다는 뜻이다. 누군가 "대학 가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가보는 일'이라고 대답해 왔다. 그러나 교환학생이 되려면 높은 학점과 토플(TOEFL) 성적이 필요했기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은 전부 제쳐두고 공부에 매진했다.

뚜렷한 목표가 확실한 결과를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영어시험인 토플의 경우 '고고(高高)익선', 즉 점수가 높을수록 유리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낮은 점수로 지원한 첫 번째 도전은 장렬히 실패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신 첫 면접보다 더 큰 좌절을 안긴 것은 원하는 미국 파견학교에 당당히 합격한 두 번째 면접이었다. 훨씬 높은 학점과 토플 성적, 완성도 높은 자소서 등으로 교환학생이 되었지만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학교에서 대면 면접을 보던 2020년 2월 당시에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한 달여 뒤인 3월 말 미국의 일일 확진자 수는 전 세계 최다를 기록했다(2020년 03월 27일자 BBC, '코로나19: 미국, 코로나19 환자수 중국 제치고 전세계 최다 기록).

모두가 그랬듯 나 역시 여름이 되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간절함이 무색하게도 미국 코로나 확진자 수는 연일 고공행진이었다. 교내 교환학생 프로그램 일체를 담당하는 국제교류팀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 합격생들에게 파견 취소를 제안했고, 나는 학교가 제안한 대로 결국 취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절망스러웠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음에도 내가 손 쓸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밀려왔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 미국에 있었을 텐데'라며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곱씹었다. 꿈은 다시 멀어졌고 나는 여전히 한국에 있었다.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출국 예정이었던 2학기에 휴학 신청서를 냈고, 미뤄두었던 대외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2021년 2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교환학생 선발 면접을 보았다. 토플 성적은 2년이 지나면 무효가 되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지원해야 했다.

높은 영어시험 점수를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 노력이 아까워 도전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아시아인 혐오, 흑인 차별 철폐 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잉대응 등이 이슈였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미국이 아닌 캐나다 학교로 지원했다.

미국에서 캐나다로 지원... 발목을 잡은 건
 
출국 전 비행기에서 찍은 노을. 강렬한 붉은 빛이 마치 날 향한 응원 같았다.
 출국 전 비행기에서 찍은 노을. 강렬한 붉은 빛이 마치 날 향한 응원 같았다.
ⓒ 이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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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연락을 받은 뒤엔 모든 절차가 순조로웠다. 밴쿠버 섬의 나나이모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한 밴쿠버아일랜드대학교(Vancouver Island University, 아래 VIU)에 가게 되었고, VIU측 담당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비자 준비도 착실히 해나갔다.

그러나 1년 전의 좌절감은 불안으로 모습을 바꿔 다시 찾아왔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졌다. 기숙사 신청도 잘 했고 출국 항공권도 샀는데, 왜인지 다 거짓 같았다. 코로나19 국내 확산세는 여전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코로나에 걸려서 캐나다에 가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1년 전과 같이 교환학생 파견을 취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시달렸다.

코로나 확진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내 신변 전반에 관한 불안으로 커져갔다. 어느 날 갑자기 크게 다치거나 아플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한 번 얼굴 보자던 지인의 연락도 모두 거절하고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이불 밖은 위험해'의 극단적 예시를 보여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했던 1년 전의 트라우마는 나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무기력함과 불면증 등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그때까지 원인을 몰랐던 것이다. 그저 출국 준비 때문에 바빠서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다. 결국 친구의 권유로 심리 상담을 받아보았다.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내 불안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한 발짝 내딛으면 잡을 수 있는 꿈이 다시 멀어질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교환학생 면접에 합격하기 위해 2년 동안 준비한 것들이 무용지물이 될 것 같다는 마음도 있었다.

심리 상담을 받기 전에는 사람들의 "털어놓기만 해도 해결되는 부분이 있다"던 경험담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상담 후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말대로 내 상황을 상담사에게 털어놓기만 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후련해졌다.

이후 불면증도 사라져 출국 준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캐나다로 떠나는 날, 비행기에 올라타서도 교환학생으로 출국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건 매일 밤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불안한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꿈을 이루는 순간의 설렘과 떨림이었다.

전염병이 풍토병으로 바뀌는 '엔데믹' 시기에 있는 지금, 그때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은 꽤나 흐릿해졌다. 그럼에도 무사히 캐나다로 출국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끝내 꿈을 이루게 됐다는 희열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비단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좌절과 우울, 불안 등 1년 전의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각 지자체마다 마련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해 볼 것을 추천한다.

▲ 보건복지부 정신건강복지센터 운영 소개
https://www.mohw.go.kr/react/policy/index.jsp?PAR_MENU_ID=06&MENU_ID=06330401&PAGE=1&topTitle=

태그:#캐나다, #교환학생, #유학,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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