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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을 했던 사람이 '인쇄인들을 위하고 시민들에게 인쇄문화를 알리기 위한' 서울인쇄센터를 지난 3월부터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용역으로 공공 기관을 운영하면서 공간을 꾸리는 일, 시민들을 대하는 순간들을 소소하게 일지 형식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기자말]
"여기 이렇게 문 연 거 처음이다."

지난달 중순쯤이었을까? 센터 책꽂이에 있던 묵은 자료들을 버리려고 수선을 떠는 중이었다. 그때 곁을 지나는 행인이 신기한 듯 내뱉은 말이다. 막 낮 12시가 되었을 때니, 아마 근처 직장인이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던 모양이다.

매일 센터 앞을 지나며 '뭐 하는 곳인가?' 궁금했으려나? 아니면 '서울' 자가 붙은 걸로 보아하니 '공공' 기관인 듯 싶은데 매일 문을 걸어잠그다니, 이래도 되냐고 은근히 비꼬는 말이었을까? 모르겠다. 

센터 직원으로서 억울한 면도 없지 않다. 4월이라고는하지만 문을 열기에는 을씨년스러운 날들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늘 문을 닫는 공간으로 기억되었으니, 그 기억을 씻어낼 만한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벼르고 벼르다가 내 자리도 1층 카운터로 옮기고 마침 요며칠 초여름 날씨라 문을 열었다.
 
요며칠 초여름 날씨라 센터 정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 문을 열었다 요며칠 초여름 날씨라 센터 정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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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니, 센터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정확히는 '그냥 들르는 사람'이 늘었다.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네 그냥 둘러보려고요.' 


그렇게 들어온 이들의 경로는 대체로 비슷하다. 1층 로비에 전시된 주자소 디오라마와 옛 인쇄기를 쓱 둘러보고는 안쪽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중 대부분은 제일 안쪽 종이 진열대까지 가서 종이를 만져본다. 말 그대로 '그냥' 둘러보고 흐르듯 나가는 분들을 잡고선 종이꽃 상자를 선물로 건냈다. 오늘 그렇게 '그냥' 들른 이들이 모두 스물 한 명이다.  

제일 처음엔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어린이 열 다섯 명과 선생님 두 분이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왔다. '갑자기' 동화 구연자가 되어 주자소며 인쇄와 종이에 대해 가이드를 하게 됐다. 오랜만에 내 얘기에 열띤 호응을 해주는 이들을 만나니 아주 신이 나더라. 
 
문을 여니 반가운 손님이. 등원하던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이 센터를 방문해 인쇄의 역사와 인쇄 그리고 종이에 대해 설명했다.
▲ 갑자기 어린이 일일교사가 되었다 문을 여니 반가운 손님이. 등원하던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이 센터를 방문해 인쇄의 역사와 인쇄 그리고 종이에 대해 설명했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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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들르는' 이들은 '그냥' 와서 더 반갑다. 인쇄를 하거나 교육을 받으려는 이들은 문을 열거나 닫아도 올테고, 이미 서울인쇄센터라는 곳을 알고 있는 이들이지만, '그냥' 들르는 이들에게 센터는 낯선 곳이다.

자연히 그들이 느꼈을 '첫 인상'이 궁금하다. 짐작이지만 그 첫인상이 과히 나쁜 것 같지 않다. 그간 센터가 쌓아온 여러 인프라가 초라하거나 빈약해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런 걸 왜 꼭꼭 숨기고 있었지' 정도의 느낌이랄까? 

오전에 온 어떤 이는 종이꽃 상자를 받고선 이내 다시 돌아와 '선물을 받았으니...'라며 음료수를 건넸다. 오후에 오신 어떤 어르신은 자신이 한자를 잘 아신다며 이름 풀이를 해주시겠노라 하셨다. 바빠서 한자 이름을 적어드리진 못했지만, 담에 어르신의 책을 인쇄하러 오신다 했으니 그때 여쭤봐야겠다. 이래 저래 문 열어놓은 보람이 크다. 그래, 세상에 그냥이 어딨나? 그냥 저냥이 이래 저래가 되는 거겠지.

장사하는 사람들 마음이 이해가 갔다. 왜들 그 여름에 더운데도, 냉방비가 올라가는데도, 벌금을 물린다고 하는데도 필사적으로 문을 열어놓으려고 하는지. 불을 켜놓고, 깨끗이 청소를 하고, 문을 열어 놓는 것. 우리는 당신을 반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는 아주 선명한 사인을 지금껏 꺼놓고 있었던 셈이었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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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네트워크(사) 대표. 문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현장에 들어가 지역 이름을 걸고 시민대학을 만드는 'OO(땡땡)은대학' 프로그램을 10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울인쇄센터를 운영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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