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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대
 영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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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통신사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한양에서 일본 에도까지 다녀왔다. 왕복 4500㎞이니 만 리가 넘는 먼 길이다. 한양에서 부산까지는 육로로, 부산에서 오사카까지는 해로로, 오사카에서 에도까지는 육로로 간다. 그러므로 부산은 해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영가대(永嘉臺)에서 해신제(海神祭)를 지내고 부산포를 떠나 대마도로 가면 일본땅이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당시 배로 24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복원된 통신사선으로는 3~4시간이 걸린다.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는 조선과 일본 간 평화사절단이었다. 교린이신(交隣以信)과 교린이성(交隣以誠)이라는 어젠다를 통해, 이웃으로 믿음과 정성으로 교류하면서 평화를 추구했다. 그것이 후대에 와 성신교린(誠信交隣)으로 통합되었다. 사절단이 구현한 또 다른 결과는 문화교류였다. 서예와 그림, 음악과 춤, 마상재(馬上才) 등을 보여주고 전해줌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문화가 일본에 전달되었다. 그래서 통신사는 K-컬쳐 전파의 원조로 여겨진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이끄는 취타대
 조선통신사 행렬을 이끄는 취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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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의 통신사 행렬 공식 명칭은 '평화의 문화사절단 행렬'이다. 이 행렬은 5월 5일(목)과 7일(토) 오후 3시부터 30분간 두 번 진행되었다. 전통복장을 한 통신사 일행이 용호만 (매립)부두 옆 잔디밭에서 출발해 분포로를 따라 용호별빛공원까지 행진했다. 참여 인원은 120명 정도로, 온라인을 통해 참가신청을 받았다. 참가 희망자가 많아 단 2분 40초 만에 접수가 끝났다고 한다.

통신사 행렬의 가장 앞쪽에서는 취타대가 대열을 이끌었다. 그 뒤로 조선통신사 표지판과 깃발을 든 기수단이 따랐다. 그 다음은 국서(國書)를 실은 가마가 따랐다. 국서란 조선 국왕이 일본의 관백(關伯)에게 전하는 공식문서다. 관백은 일본의 왕을 대신하여 정무를 총괄하는 쇼군(將軍)을 말한다. 쇼군은 막부의 최고통수권자로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將軍)의 준말이다. 국서 뒤로는 관리가 따르고, 그 뒤로는 여자 어린들이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따랐다. 여기까지가 행렬의 전반이다.
 
정사 가마
 정사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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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의 후반은 농악대가 이끌었다. 농악대는 태평소와 사물놀이패로 이루어진 간단한 조합니다. 그 뒤를 정사(正使) 가마가 따랐다. 가마에 탄 어린 정사를 중고등학생 정도의 청소년 가마꾼이 호위하고 간다. 가마는 바퀴를 달아 끄는 형태로 만들었다. 원래는 정사, 부사, 종사관 삼사(三使) 가마가 따라야 하나 규모를 축소하는 바람에 정사 가마만 만들었다. 정사 뒤로는 군관과 관리들이 따라간다.

그 뒤로 부사와 종사관이 관복을 입고 따라 걸어간다. 이들을 따라 여자 어린이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따라간다. 특이한 것은 취타대, 태평소 주자, 정사를 제외한 모든 행렬참가자들이 마스크를 썼다는 사실이다. 마스크 쓴 통신사 행렬, 축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행렬의 마지막 부분은 군관과 농악대 그리고 탈을 쓴 춤꾼들이 따랐다. 이들은 조선시대 통신사를 따라갔던 악사와 무동(舞童)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선을 타기까지 행사는 계속되었다
 
농악대와 탈을 쓴 춤꾼
 농악대와 탈을 쓴 춤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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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용호 별빛공원에 들어온 다음 통신사선이 있는 부두를 한 바퀴 돌면서 행진을 했다. 취타대와 농악대가 한데 어우러지고, 탈을 쓴 춤꾼들이 현대적인 춤으로 화답했다. 공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축제를 즐긴다. 그리고는 천천히 통신사선을 향한다. 이들이 실제로 통신사선을 타고 오륙도까지 갔다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배 앞에 이르자 정사가 가마에서 내린다. 이렇게 해서 육지에서의 행사가 끝났다.
 
통신사선에 승선하는 사행원들
 통신사선에 승선하는 사행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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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들이 배에 타는 승선의식이 진행된다. 먼저 취타대가 통신사선 앞 도크에 들어가 길군악을 연주한다. 부두와 도크 사이에서 조선통신사 표지판을 든 관리들이 통신사행원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전통 복장을 한 남녀 관리와 군관들이 양쪽으로 도열한다. 그 사이를 통신사 사행원들이 지나간다. 이들이 승선을 마치자 취타대와 관리들은 퇴장한다. 이번 통신사선 승선체험은 통신사 행렬에 참여한 어린이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통신사선에서 바라 본 오륙도
 통신사선에서 바라 본 오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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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탄 통신사 사행원들은 관복과 한복 위에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그리고 배가 광안대교 옆으로 해서 해운대 마린시티를 배경으로 바다로 향했다. 이번 축제에서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통신사선 승선체험을 이끈 사람은 목포에 있는 해양문화재연구소 홍순재 학예연구사다. 그는 통신사선을 만들고 운영하는 주무관이다. 2018년 제작에서부터 진수 그리고 운행까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를 위해 목포에서 부산까지 하루 종일 배를 타고 왔다. 그리고 행사 기간 내내 매일 한 차례씩 용호만에서 오륙도까지 배를 운행했다.

3년 전 조선통신사 축제와 비교해 보면
 
2019년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
 2019년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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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는 5월 3일(금)부터 6일(월)까지 부산항과 용두산 공원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조선통신사 국제 학술심포지엄, 춤으로 표현된 조선통신사, 인형으로 표현된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 평화의 행렬, 조선통신사선 승선체험, 전별연 및 네트워크 파티, 거리공연, 필담창화(筆談唱和), 관광물산전 등이 진행되었다. 이때는 교류와 화합 그리고 체험과 관광에 중점을 둔 행사였다. 국제적인 행사답게 일본의 공연팀도 상당수 참가했다.

2019년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는 전체적으로 학술성, 예술성, 대중성이 어우러진 의미 있는 행사였다. 조선통신사 승선 체험, 춤으로 표현된 조선통신사 이야기는 당시 처음 선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했지만 부산시와 부산시민이 함께 한 대대적인 축제였다.
 
2019년 조선통신사 축제 일본 참여자들의 모습
 2019년 조선통신사 축제 일본 참여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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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2022년 부산 조선통신사 축제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대폭 축소되어 진행되었다. 장소도 용두산공원에서 용호 별빛공원으로 바뀌었다. 행사도 어린이 중심으로 변형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본에서 연고 도시 예술단이나 연지연락회 임원들이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규모로 예산을 축소해서 짜임새 있게 진행되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행사 홍보가 부족해 부산 지역 축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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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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