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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해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장이 12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3.15의거창원사무소에 김경영, 김광열, 권찬주, 서행남, 하용웅 선생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백남해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장이 12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3.15의거창원사무소에 김경영, 김광열, 권찬주, 서행남, 하용웅 선생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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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저항하며 일어났던 '3‧15의거' 때 행방불명됐다가 창원마산 앞 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올라 '4‧11민주항쟁'이 일어나도록 한 김주열(1943~1960) 열사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회장 백남해, 아래 사업회)는 12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3‧15의거창원사무소(아래 '진실화해위')에 김경영, 김광열, 권찬주, 서행남, 하용웅 선생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김주열 열사는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있다. 그러나 3‧15의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권찬주 여사를 비롯한 인물들은 유공자가 아니어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경영 선생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인양했던 어부다. 김광열 선생은 김주열 열사의 형이며, 권찬주 여사는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다. 서행남 선생은 3‧15의거 당시 경찰에 연행돼 폭행을 당했고, 하용웅 선생은 남원 출신인 김주열 열사에게 옛 마산상고(현 용마고) 입학을 적극적으로 권했던 사람이다.

사업회는 이들 인물이 3‧15의거 과정에서 역할을 했지만 지금까지는 '어머니'나 '형', '어부' 등으로만 알려져 있다며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권찬주 여사는 당시 전 국민이 아는 유명인사였다는 것. 사업회는 권 여사와 관련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 즉 '모성애'라는 보편적 정서로 대한민국 어머니의 표상이 되어 전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이 단체는 "3‧15의거, 4‧11항쟁, 4‧19혁명이라는 위대한 역사에 대해 권찬주 여사가 끼친 영향과 역할에 대해 평가되거나 인정된 바 없다"며 "1960년 3~4월 혁명의 전 과정에서 권찬주 여사의 공적이 이 과정을 통해 제대로 인정받기 바란다"고 했다.

당시 남원에 거주했던 권찬주 여사는 큰아들(김광열)로부터 둘째아들(김주열)의 실종 사실을 듣고, 그해 3월 18일 마산으로 와 아들의 사진을 들고 "내 아들 찾아주시오"라고 호소하고 다녔다.

사업회는 "권 여사의 활동은 단연 전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여러 방면 활동은 당시 전국의 언론을 통해 상세히 알려졌다"고 전했다.

그해 4월 13일 경찰이 빼돌린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남원에 도착했을 때 권 여사는 "내 아들의 시신을 이기붕의 집 마당에 묻어달라"라고 말했다.

사업회는 "3‧15 부정선거의 핵심을 정확힌 꿰뚫은 권찬주 여사의 한 마디는 전 국민의 가슴에 슬픔과 분노를 폭발시킨 말이었다"며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가 아니라 3‧15의거, 4‧11항쟁, 4‧19혁명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역할을 한 개인 권찬주의 공적이 진상규명을 통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국가적 차원 명예회복 필요"
 

김광열 선생에 대해, 사업회는 "1960년 3월 15일 밤, 마산 3‧15의거에 동생 김주열과 함께 참여했다"며 "따라서 김광열의 당일 행적에 대해 3‧15특별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자 한다"고 했다.

여러 과정을 설명한 사업회는 "김광열은 동생의 죽음으로 누구보다 가장 고통을 받은 사람 중의 한 명이고, 결국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며 "그냥 김주열 열사의 형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의지로 동생과 함께 3‧15의거에 참여했고, 동생의 참혹한 죽음으로 평생 정신적으로 힘들게 살았기에 국가적 차원의 명예회복을 위해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경영 선생은 그해 4월 11일 오전 11시경 창원마산 신포동 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김주열 시신을 인양했던 어부다. 우연히 현장 근처에 있었던 그는 경찰의 요청에 의해 시신을 인양했고, 그가 자신의 나룻배에서 직접 끌어올린 김주열의 전신 모습이 허종 기자의 사진만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업회는 "김경영 선생의 인양작업이 4‧11항쟁과 4‧19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며 "그의 역할이 단순 인양자에서 공로자로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용웅 선생은 김광열 선생의 친구로, 김주열 열사의 마산상고 입학을 적극 권했으며, 마산상고 교사와 협의 절차를 거쳐 김주열 입학고사 접수까지 직접 했던 인물이다.

사업회는 "만일 김주열 열사가 마산상고로 유학 오지 않았다면 개인 김주열에게 그런 비극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용웅 선생은 이 때문에 평생 자책감과 회한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책 <아! 김주열 나는 그를 역사의 바다로 밀어 넣었다>를 쓴 하용웅 선생에 대해, 사업회는 "김주열 열사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데 그가 큰 역할을 했기에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행남 선생은 3‧15의거 당시 19세 청년으로, 시위에 참여해 3월 15일 밤 오동동파출소에 연행되었고, 연행 당시 경찰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사업회는 "3‧15의거 참가자로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대상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창원 마산중앙부두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에 세워진 '김주열 열사 동상'의 설명판.
 창원 마산중앙부두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에 세워진 "김주열 열사 동상"의 설명판.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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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회는 이들 인물과 관련한 언론보도, 책 등 증거 자료를 함께 진실화해위에 제출했다.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고문은 "권찬주 여사는 3‧15의거의 불씨가 끄져 가자 아들을 찾기 위해 온갖 활동을 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고, 4‧11민주항쟁과 4‧19혁명이 있기까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다른 분들도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며 "그래서 국가 차원의 진실규명이 필요해 합당한 예우를 하고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는 전체 회의를 열어 이들에 대한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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