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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지만원씨가 광수 1호라며 지목한 사진 속 실제 인물인 시민군 김군 차복환씨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회에 참석해 증언하고 있다.
 5.18 당시 지만원씨가 광수 1호라며 지목한 사진 속 실제 인물인 시민군 김군 차복환씨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회에 참석해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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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회에서 송선태 위원장이 3년 간 조사활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TV 모니터에 띄워진 지만원씨는 해당 사진 속 인물을 두고 북한군을 지칭하는 '광수 1번'이라고 부르며 '북한의 농업상 김창식'이라고 주장해왔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회에서 송선태 위원장이 3년 간 조사활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TV 모니터에 띄워진 지만원씨는 해당 사진 속 인물을 두고 북한군을 지칭하는 "광수 1번"이라고 부르며 "북한의 농업상 김창식"이라고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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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씨가 (나를 북한군) '광수 1호'라고 했는데, 사과를 받고 싶다." 

5.18민주화운동에 '북한특수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지난 2월 진행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극우인사 지만원씨가 '광수(광주 투입 북한 특수군) 1번'이라 이름 붙인 사진 속 실제 인물이 등장했다. 

12일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회에서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한 차복환씨는 사건 발생 42년 만에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며 지씨를 향해 사과를 요구했다.

차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 페퍼포그 차량에 탑승해 기관총을 잡은 시민군으로, 차에 오른 그의 모습이 당시 이창성 중앙일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로 각인됐다. 

그러나 지만원씨는 해당 사진 속 인물을 두고 북한군을 지칭하는 '광수 1번'이라 부르며 '북한의 농업상 김창식'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차씨의 등장으로 '북한군 개입설'은 명백한 거짓으로 재확인됐다. 

이에 대해 차씨는 "작년까지 내가 1번 광수라는 걸 몰랐다"면서 "지난해 5월 17일에 집사람이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을 보고 시민군 김군이 나 같다는 말을 해 처음 인지했다"라고 밝혔다. 이후 차씨는 5.18기념재단을 찾아 자신이 당사자라고 알렸다.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10월 5.18기념재단으로부터 해당 제보를 넘겨 받아 7개월에 걸쳐 제보 진위를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12일 차씨와 함께 진실을 공개했다.

차씨가 등장하기 전까지 '김군'은 1980년 5월 24일 광주 남구 송암동과 효덕동 일원에서 계엄군 간 오인 교전을 전후로 현장에서 사살된 뒤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진상조사위가 당시 계엄군들과의 면담을 비롯해 사실 확인 작업을 거친 결과, 당초 김군이라고 알려진 사람은 효덕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연행되던 중 계엄군에 의해 사살된 뒤 주민들에 의해 인근 야산에 가매장된 후 같은해 5월 29일 광주시청 관계자들에 의해 수습된 '1963년생 자개공 김종철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석방하라 김군'은 김대중"    
 
▲ 지만원씨가 지목한 사진 속 인물, “바로 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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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당시 차씨는 만 20세에 불과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차씨는 당시 광주에서 상패를 만들어 군부대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5월 18일 비상계엄 이후 시민들이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속옷 차림으로 군인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시민들이 죽고 있다. 도와달라"는 가두방송이 이어지자 그는 5월 21일 집을 나서 시민군에 합류했다. 

1980년 5월 22일 차씨는 군용트럭을 타고 화순지역 예비군 무기고에서 다른 시민군들과 무기를 탈취한 뒤 광주로 돌아왔다. 차씨는 도청에서 군복과 군화를 받아 갈아입고 차량도 페퍼포그차로 갈아탔다고 한다. 그리곤 머리엔 '석방하라. 김군'이라고 적힌 띠를 직접 써서 둘렀다. '김군'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뜻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차씨는 "당시 전남에서 김대중은 특별한 존재였다. 이름을 직접 쓰기가 그래서 그렇게(김군)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복 역시 "'죽어도 좋다'는 서약을 한 160여 명의 시민들이 특공조가 돼 도청에서 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복을 입은 차씨는 페퍼포그차 상단 기관총 사수자리에 섰다. 문제는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총을 아예 다룰 줄 몰랐던 신출내기였던 것. 1980년 5월 22일 찍힌 '김군 사진'에서 차씨 앞에 놓인 탄띠가 기관총에 걸쳐진 이유다.  

차씨는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시민군은 계엄군 탱크가 몰려오자 후퇴해 조선대로 가 사격연습 등을 하며 전열을 정비했다. 이때 차씨는 집에 두고 온 동생들이 떠올라 총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로 차씨는 가족들의 만류로 시민군에 다시 복귀하지 못했다. 수일 뒤 차씨는 도청으로 가 죽어있는 시민군 동료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차씨는 죄책감에 광주를 떠나 살았다. 당시 항쟁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한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언론에서 5.18 이야기가 나오면 애써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렇게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난해 5월에야 차씨의 부인이 다큐멘터리 <김군>을 보면서 자신이 '김군'이자 '광수 1호'로 불린 사실을 알게 됐다. 

"북한군 침투설은 허위"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회에서 송선태 위원장이 3년 간 조사활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회에서 송선태 위원장이 3년 간 조사활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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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진상조사위는 '5⸱18 북한특수군 광주 침투설'은 허위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송선태 진상조사위 위원장은 "일부 탈북자들이 제기한 북한특수군 침투 주장은 국내외 각종 기록조사 및 대면조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국정원이 이미 이들 일부 탈북자들의 주장에 사실관계가 결여되어 있거나 신뢰성이 낮다고 평가한 바 있다. 미 국무부나 CIA 문서에서도 5⸱18과 관련한 북한특수군 침투는 없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라고 일축했다.

"광주에 직접 침투했다고 최초로 주장한 정모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본인은 평양에 있었다며 기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진술을 했다. 다른 탈북자들의 주장도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준으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날 진상조사위는 이밖에도 ▲광주역 일대 발포명령 진상규명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사건 ▲광주진압작전에 투입된 계엄군과 경찰의 피해 현황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강제징집 및 삼청교육대 입소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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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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