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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4월 박정희 대통령과 큰영애의 경주보문관광단지 시찰 (출처: 국가기록원)
 1979년 4월 박정희 대통령과 큰영애의 경주보문관광단지 시찰 (출처: 국가기록원)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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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때이니만큼 요즘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라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어록이 구글링 검색어로 인기다. 물론 관련 전문가들의 말처럼, 공기업의 경영효율성과 책임경영을 위해서는 공기업의 민영화를 무조건 터부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제5공화국 전두환 군사정권 때 골프장도 민영화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군부 독재정권은 '경제를 민간주도로 끌고 간다'는 정책에 따라 정권 초기부터 수십 개에 달하는 정부투자 및 출자 공기업들을 대거 민영화하겠다고 나섰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따라 시작된 비상계엄이 '5.17 비상계엄확대조치'를 거쳐 1년 3개월 계속되다가 1981년 1월 25일에야 해제됐다. 12대 대통령 선거는 그해 2월 25일 처음으로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방식을 통해 보안사령관(현 군사안보지원사령관) 출신 전두환 소장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20년이 넘도록 정치군인들의 권력 찬탈은 계속됐다.

당시 재벌기업들은 벌써 골프장 건설에 열을 올렸다. 재벌기업들이 골프장의 신설 또는 증설을 재촉한 이유는 그때도 지금처럼 '골프인구의 급증, 골프장의 부족'이었다. 동아일보 1981년 12월 14일자에 보면, 신군부 정권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대비한다면서 당시 전국에 23개 골프장을 60여 개로 대폭 신설할 계획을 세웠다.
 
"14일 교통부가 마련한 골프장 증설계획에 따르면, 주로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의 골프장을 현재의 16개소에서 49개소로 3배 이상 대폭 늘리고, 부산지역과 제주지역도 각각 현재 2개소에서 7개소로 역시 3배 이상 대폭 늘린다는 것이다. 교통부는 골프장 시설확충을 촉진하기 위해 골프장의 사업계획승인제도를 대폭 간소화하고..."
 
우선, 신군부 정권은 민영화 로드맵에 따라 국제관광공사, 한국종합화학, 농어촌개발공사의 자회사에 대한 매각을 추진했다. 국제관광공사는 공기업 소유 7개 호텔 중 5개를 매각하기로 했다. 대상은 경주조선호텔을 비롯한 뉴설악관광호텔, 금오산관광호텔 등 5개였다.(매일경제신문, 1981.10.17) 1982년 4월 초 발 빠르게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에 들어간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는 1차로 경주조선호텔과 경주 보문cc 등을 공개 입찰했다.
 
"26일 관광공사에 따르면, 수지를 개선하고 관광자원 개발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자체운영하고 있는 보문골프장과 경주조선호텔 및 부산비치호텔 지분을 오는 4월 초순경에 일괄 공개입찰할 방침이다."(매일경제신문, 1982.3.26)
 
경주보문관광단지 레저시설의 하나로 1979년 10월에 오픈한 경주 보문칸트리클럽은 채 3년이 되기도 전에 '수지 개선'을 이유로 민영화될 처지에 놓였다. 유신독재시기에 골프장의 신설은 억제됐지만, 예외적으로 관광종합개발지구 또는 지정관광지, 관광휴양지에는 골프장 입지를 승인하도록 했다. 경주보문관광단지내 골프장 건설사업은 1976년 말에 가서야 국무회의에서 최종 승인됐다.

지금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있는 1976년 12월 8일 최경록 교통부 장관에 의해 제출된 '골프장 건설에 따른 일부 농지사용 계획(안)'에 따르면, 골프장 건설을 위한 계획용지 63만6740평 중 1단계 사업으로 18홀의 골프장 부지 40만6220평은 국유재산의 현물출자에 관한 법률에 의거 정부로부터 현물출자를 받아서 착공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눈여겨 볼만한 점은 골프장 부지의 30% 이상이 농지였다는 것이다. 정부의 사업계획상 소요예산은 내자 7억 원과 외자(IBRD 차관자금) 174만 달러(약 8억 7천만 원)으로 총 15억 7천만 원을 계상했다. 최초의 '공공 골프장' 건설계획이 시행에 옮겨졌다.

세계은행(IBRD) 차관까지 투입해서 10개년 이상 장기계획으로 추진되던 박정희 정부의 경주관광종합개발사업은 마무리되기도 전에 관광단지 내 골프장과 호텔을 매각하는 사태를 맞게됐다. 동아일보 1982년 4월 26일자에 보면, '라이프그룹 조내벽 회장이 164억여 원을 들여 국제관광공사의 경주 보문골프장 및 경주조선호텔을 인수하는 한편 부산의 조선비치호텔의 주식 일부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된다. 라이프그룹에 매각된 60여만 평 부지에 18홀의 보문cc는 즉시 경주조선cc(현 경주신라cc, 천마코스)로 개명됐다.
 
"지난 24일 2차 공개입찰에 단독 응찰한 라이프(그룹)은 경주관광개발공사에서 소유하고 있는 60만 7천 평에 18홀이 조성된 보문칸트리클럽을 73억에, 국제관광공사가 55%, 대림산업이 45%의 지분을 각각 공유하고 있는 객실 300석 규모의 경주조선호텔을 87억 9천 9백만 원에, 조선비치호텔 주식 일부를 3억 3천 8백만 원에 각각 인수했다"(매일경제신문, 1982.4.26)
 
신군부 정권 아래에서 재벌그룹과 대형건설업체들은 골프장 사업에 편승해서 투기 붐을 과열시켰다. 이미 삼성그룹(이병철 회장)은 안양cc와 동래cc를, 삼호그룹(조봉구 회장)은 수원cc와 제주오라cc를 갖고 있었고, 대농(박용학 회장)은 관악cc, 동원탄좌(이연 회장)는 로얄cc, 동아자동차(하동환 회장)는 오산cc, 명성그룹(김철호 회장)은 명성cc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경향신문 1982년 9월 10일자에 보면 당시 '골프장 붐'을 확인할 수 있다. 골프장 건설의 열기가 더해갈 전망으로 효성그룹(조석래 회장)이 신갈cc 개장을 서둘렀고, 국제그룹(양정모 회장)은 경남 양산에 36홀짜리 원효cc 공사를 개시했다. 기존의 삼성그룹과 명성그룹이 또 다른 골프장 건설을 서두를 뿐만 아니라, 극동건설, 삼천리산업, 삼화제관, 성진개발, 쌍용그룹, 진흥기업 등도 골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재벌그룹들이 새로운 골프장 신·증설에 눈독을 들이게 되자, 심지어 국책사업 경주보문관광단지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보문골프장까지 눈길이 미치게 됐다. 자본 입장에서 민영화시킬 수만 있으면, 가히 누워서 떡먹기식 장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골프장 1개(30만 평 기준)를 건설하는데, 최소한 70억 원 이상이 들었다.
     
경주 보문골프장과 경주조선호텔을 인수하자마자 라이프그룹 조내벽 회장은 '정득만 전 경주관광개발공사 사장을 그룹 계열회사인 경주조선호텔·컨트리클럽 사장에 선임'했다.(조선일보, 1983.5.7.) 1975년 발족된 경주관광개발공사는 국제관광공사의 자회사였고, 1978년 소장으로 예편한 정득만 사장은 개발공사 사장직을 맡아오고 있었다. 그는 골프 구력 10년에 핸디 2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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