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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전국교구장 <2015년 사목교서> 발표 소식을 1면에 게재한 <평화신문>과 <가톨릭신문>
▲ 87체제의 산물 <평화신문>의 보수화 천주교 전국교구장 <2015년 사목교서> 발표 소식을 1면에 게재한 <평화신문>과 <가톨릭신문>
ⓒ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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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태어난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의 성과가 좋았다.

품위 있는 글과 민주화에 따른 기사가 실리고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가 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사망한 사건에 대해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임박한 시점에 이를 보도하여 여론을 환기시켰다.

<평화신문>이 1988년 7월 10일자를 시작으로 네차례에 걸쳐 "통혁당사건의 무기수 신영복씨의 편지"를 실으면서 글에 공감한 시민들의 성원이 빗발쳤다. 그리고 옥중서간집이 이해 8월 15일 출간되었다. <평화신문>의 연재는 보통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평화신문>의 신영복 편지 연재는 드레퓌스 사건을 폭로한 프랑스 에밀 졸라의 용기와 비교된다.
 
유태인 출신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1850~1935)는 독일 측에 기밀문서를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군부의 가짜 서류, 증언이 이어지고 불공정한 재판에서 그는 유죄판결을 받고 1895년 1월 기니 소재의 '악마의 섬'으로 유형되었다.
 
드레퓌스의 형 마티브가 동생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보내고, 해당 문건의 필적이 다른 장교의 것으로 드러났다. 에밀 졸라와 조레스를 비롯한 양심적 지식인들이 재심을 요구하는 등 진실 규명에 나서면서, 프랑스에서는 양심적인 드레퓌스주의자들과 진실을 묻으려는 반드레퓌스주의자들의 대결이 전개되었다. 이 싸움은 진보세력과 보수반동세력 간의 대결이 되었다.
 
동서 어디서나 독재자와 여기 부역하는 공권력은 진실을 밝히기보다 거짓을 말하거나 필요하면 범인을 조작하려 든다. 진실이 드러나도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조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진실을 영원히 땅속에 묻으려 한다.
 
독재권력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쉽지 않다. 자기희생이 요구되고, 조작된 가짜 증언, 권력과 유착된 언론의 진실 은혜가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인류사에서 얼마나 많은 진실이 묻히고 거짓이 행세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형장에 서거나 옥살이를 했는지. 역사는 이에 침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수이지만 용기 있는 지성인과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진실의 맥은 이렇게 하여 지켜지고, 정의는 여전히 인류의 소중한 보편적 가치로 존중받는다. (주석 9)

양심적인 지식인 에밀 졸라가 진보적인 신문 <로로르>에 보낸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의 일부다.

저는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법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사법부가 완전 무결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제가 말할 것을 명세했습니다. 이것은 제 의무이기도 합니다. 공범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상을 잃어버린 먼 곳에서 결코 저지르지 않은 범죄의 대가로 고통을 겪고 있는 저 불행한 자의 망령이 밤마다 저를 찾아올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 각하를 위해 저는 이 진실을 온 세계로 외칠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 정직한 한 인간의 외침을 세계로 전할 것입니다. 각하의 명예를 생각해볼 때 저는 각하가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누구 앞에서 제가 범인의 악행을 규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각하 앞이 아니라면? (주석 10)
 
<평화신문>은 신영복의 글을 연재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처음에 신 선생의 글을 <평화신문>에 싣기에 앞서 다소 망설였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평화신문>이 소외되거나 인권이 유린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실어 어둡고 그늘지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터에 감옥에서 보낸 편지, 그것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무기수(이렇게 말하는 것을 용서받을 수 있다면)의 글을 싣는다고 짜증 섞인 항변은 없을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우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메시지로서,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조용한 호소력이 신 선생의 글에는 있었던 것이다. 신문에 실린 편지를 읽고 울었다는 사람도 있고 온몸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심금에 와닿는다고 하는 사람도, 신 선생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사람도, 주소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주석 11)

<평화신문>은 신영복의 첫 저서가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초판 서문에서 이 신문에 실을 때의 고뇌와 책 출간의 의미를 덧붙였다.

이제 우리가 감히 앞을 자르고 위를 쳐서 겨우 신 선생의 참뜻을 일부(교도소 검열을 거친 것이기에 사전에 여과된 것까지 치면, 더욱 그렇다) 만을 전한 것이 늘 죄송스럽더니 이제 신 선생 편지의 전문이 비교적 다 살려진 채로 세상에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온다고 한다. 우리가 못다한 일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제 <평화신문>을 통해서 겨우 신 선생의 절제된 체취와 사색의 일단만을 보아온 독자들이 보다 가깝게 신 선생 내면의 사색을 접근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더구나 지금은 신 선생이 밖에 나와 있지 않은가. (주석 12)


주석
9> 김삼웅,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214~215쪽. 철수와 영희, 2012.
10> 앞의 책, 220쪽.
11> <평화신문>, 1988년 8월 15일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초판 서문.
1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7쪽, 돌베개, 2008(초판49쇄).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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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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