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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길가에 피어 있는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워본 기억이 있다. 여름이면 손톱 위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첫눈이 올 때까지 붉은색이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믿었다. 가을 들판에 흔들리는 코스모스길을 걸었던 기억, 초여름 길가에 가득 퍼지는 라일락꽃의 향기 같은 것들.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는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다. 생일이나 공연과 같은 인생의 이벤트 때에도 우리는 꽃선물을 종종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때, 꽃은 마법을 부린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무덤가에도 꽃을 둔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꽃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가 삶의 순간마다 있을 것이다.

흔하디 흔해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일상에서 피고 지는 꽃들을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관심을 갖고 알아가려 애쓰다 보면 꽃이 가진 무한한 매력과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올라와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되었던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꽃을 자신의 삶에 깊이깊이 가져와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며 꽃의 사랑스러움을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손끝으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을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사람들, 보태니컬아트라고도 하는 그림을 그리는 식물 세밀화가 다섯 명이 만들어낸 책 <인생 참, 꽃같다>를 읽었다.
 
인생 참, 꽃 같다
 인생 참, 꽃 같다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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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자마자 '너무 예쁜 꽃바구니 같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넘기는데 분명 향기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꽃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매 페이지마다 단아하고 어여쁜 꽃들이 가득했다. 글을 읽기 전,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책 속의 꽃그림을 살펴보는데 그저 후루룩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꽃그림들이 너무나 섬세하고, 고왔다.

다섯 명의 작가들이 사계절 정원, 도시 정원, 작가 정원, 아빠 정원, 시골 정원이라는 테마로 각자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안내한다. 책을 펼치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천천히 읽다보니 저마다 안내해주는 각자의 정원에 들어가 꽃을 소개받고, 어떤 식물인지 살피고, 그와 동시에 그 꽃들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들을 따라다니는 기분에 젖어들게 된다.

분명 어디에선가 보았던 것 같은데 이름이 생소한 꽃들도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며 '아, 그때 그 길가에 피었던 그 꽃이 맥문동이었구나, 수잔루드베키아라는 꽃이었구나!' 하고 배울 수 있었다. 능소화와 채송화 같은 꽃들은 이미 알고 있어 반갑고 친숙하면서도 너무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그림들을 보며 한번 더 놀라기도 했다.

작가분들은 이런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얼마나 살피고, 바라보고, 표현하는 연습을 해낸 걸까? 나뭇잎과 줄기, 꽃잎과 씨앗들을 정성을 다해 그려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보태니컬아트의 세상에 푹 잠겨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림과 함께 담담하고 다정한 필치로 적어 내려 간 개인들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차분하게 내 마음을 이끌었다.

꽃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꽃을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도 드러나 있었고, 꽃과 연관된 오랜 기억들과 추억들도 펼쳐졌다. 나만의 정원과 텃밭에서 자라나는 화초를 가까이 바라보며 느낀 감정들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기다리고 또 보내주는 마음들도 책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책을 손에 들고 어루만지고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고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작가분들은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손끝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향기가 날 것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어 책 속에 정성스레 담았다. 책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꽃선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향기로운 꽃선물을 보내고 싶을 때, 가끔 이 책이 생각이 날 것 같다. 꽃다발 같은 이 책을, 향기로운 선물을 보내고 싶은 내 삶의 꽃 같은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싶다. 

인생 참, 꽃 같다 - 식물세밀화가 5인이 가꾼 예술정원

신소영, 윤규희, 박주경, 이상숙, 고순미 (지은이), 티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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