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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 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 [편집자말]
산에 가면 나는 눈앞이 깜깜해진다. 앞에 두고도 알지 못하는 식물이나 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산에 함께 간 내 친구는 나에게 취나물을 알려줬다. 취나물의 생김새며 모양을 자세히 알려줬지만, 그때뿐이었다. 알 것 같다가도, 다시 뒤돌아서면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그냥 초록 식물이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산에 다녔더니 겨우 취나물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오직 취나물만 생각하며,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더니 취가 보였다. 채도, 명도가 참으로 다양한 그 모든 갖가지 초록 중에서도 취가 확실히 눈에 쏙쏙 들어왔다.
  
 약 한 달간의 주말 레슨(?)끝에 취하게 된 감식안. 이제야 취가 보인다
▲ 찾았다 취!  약 한 달간의 주말 레슨(?)끝에 취하게 된 감식안. 이제야 취가 보인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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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마음에 두면 보이는 법. 인생의 매직아이를 체험한다. 가끔 이게 취 맞나? 긴가민가할 때는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꺾어서 향기를 맡아보면 된다. 취의 독특한 향기는 거의 대체 불가다.

취는 향으로 말한다. 물론 맛도 쌉싸래하며 달짝지근하니 좋다. 하지만 취는 뭐니 뭐니 해도 향이다. 겨울 땅을 뚫고 나온 취의 강한 생명이 향기에 죄다 응축되어 있는 것 같다. 취를 먹다 보면 그 향기에 취할 것 같다. 취를 꺾은 손가락도 취 향기에 취하는 듯. 그래서 이름도 취인가.

대체불가, 취의 향기 

취나물을 먹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향기를 해하지 않는 것이다. 취는 첫째도 향, 둘째도 향. 그래서 진하고 자극적인 양념은 피한다. 물론 워낙 취의 향이 독특하고 강하기 때문에 마늘이나 고추장, 된장으로 양념을 해도 취의 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취의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양념을 되도록 적게 쓰는 게 좋다.
  
취나물의 본질은 처음도 취, 마지막도 취이다.
▲ 엄마가 무친 취나물 취나물의 본질은 처음도 취, 마지막도 취이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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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취나물을 무칠 때 거의 양념을 쓰지 않는다. 조선간장 약간과 마늘, 다진 파 정도이다. 우선 끓는 물에 취를 아주 살짝 데친다. 살짝 넣다 빼는 정도. 찬 물에 가볍게 헹군 뒤 가볍게 짠다. 너무 세게 누르면 으깨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조선간장과 다진 마늘을 약간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무친 뒤 다진 파를 넣고 살짝 무친다.

퍽 간단해 보이지만 어느 과정에나 다 '적당히' '약간' '살살'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간다. 힘 조절이 관건이다. 무치는 손길이 너무 약해서도 안 되고 강해서도 안 된다. 양념도 너무 과하지 않고 또 너무 싱겁지 않게. 요리하는 사람의 실력보다는 식재료 자체가 빛날 수 있도록 힘을 빼야 한다. 식재료가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요리하는 사람은 적당히 빠져줘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음식을 해본 사람은 안다. 양념을 적게 쓰고 식재료 본 재료의 맛을 온전히 내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은 악기 하나만 가지고 라이브로 노래 부르는 가수 또는 관객들 앞에서 1인극을 하는 배우처럼 자신의 내공과 실력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다.

양념은 잠시 빠져주실래요 
 
취나물도 좋지만 삼겹살에 취를 싸먹으면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째 입안으로 굴러오는 기분. 꼭 무쳐먹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이 조합도 추천합니다
▲ 취나물과 삼겹살의 환상궁합  취나물도 좋지만 삼겹살에 취를 싸먹으면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째 입안으로 굴러오는 기분. 꼭 무쳐먹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이 조합도 추천합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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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맛이나 빛깔보다는 향으로 음식을 탐하게 되는 것 같다. 봄을 홀리는 쑥, 취, 냉이, 달래, 이런 향기 진한 나물들을 먹을 때 봄이 내 안으로 들어옴을 실감한다. 내 몸도 적당히 푸르러 진다.

더불어, 힘 빼는 법도 배운다. 봄나물이 어려운 이유도 이것이다. 봄나물은 대개 힘을 빼는 요리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힘 빼는 법을 잘 몰랐다. 물론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삶이든 요리든, 갖은 양념을 다 넣어야 맛있는 줄 알았다. 인생은 양념 맛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로 양념은 빠질 줄 알아야 한다. 양념은 그저 양념일 뿐.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 취나물 같은 재야의 고수를 만난다면 힘 빼고 양념 다 덜어내고, 그 인품의 향기에 취하는 것도 인생의 기쁨이란 생각이 든다.

[정선환 여사의 취나물]

1.취는 흙과 먼지만 털어낼 정도로 가볍게 씻는다.
2.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취를 살짝 건졌다가 꺼낸다.
3.찬물로 가볍게 헹군 뒤 두 손을 이용해서 물기를 짜낸다. 이때 너무 세게 눌러서 취나물이 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취나물 (200g 기준)에 조선간장 0.7큰 술, 다진 마늘을 넣고 무친다.
5. 참기름과 다진 파를 넣고 깨소금을 넣어서 함께 무친다. 취의 향기를 살리기 위해 향기가 강한 참기름은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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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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