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1 13:57최종 업데이트 22.05.1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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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 연합뉴스

 
서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고 했던가.

최근 어느 시민단체가 자체분석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SK그룹이 최상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여러 언론들도 이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물론 이 단체는 나름의 기준에 의해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농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필자는 SK의 다른 모습을 알고 있다.

농촌 파괴하는 ESG 기업?

최근 SK그룹은 공격적으로 ESG를 홍보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까지 맡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기후위기, 탄소중립 같은 단어들을 수시로 언급하고 다닌다. 언론들은 그런 최 회장 말을 인용해 기사를 쏟아낸다.

SK건설이 이름을 바꾼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는 회사가 만든 영상에서 "(건설업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지 못하고 생태계를 이롭게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졌다. 저희는 고심했고 변하기로 했다"라고 말한다.

이런 얘기들만 보면 SK그룹이 친환경 기업으로 변신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활동하는 '공익법률센터 농본'은 지난해 2월 설립돼 농촌·농민·농사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각종 개발사업, 환경오염시설들이 추진되면서 고통받는 농촌 주민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 중에 한 군데가 충북 괴산군 사리면이다.
 

괴산 메가폴리스산업단지 조성 예정지 ⓒ 괴산군


지난해 사리면의 한 마을 이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리면에서 SK에코플랜트(이전 SK건설)가 지역토건업체, 괴산군과 손을 잡고 '괴산 메가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그 안에 지정폐기물을 포함한 산업폐기물을 묻는 매립장까지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인해 보니 무려 지하 36미터까지 파고 194만톤에 달하는 산업폐기물을 묻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사업이 친환경이 아니라는 건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사업지 부근에는 어린이집, 초등학교, 많은 민가가 있었다. 이런 곳에 산업폐기물을 묻겠다는데 반대 안 할 주민들이 있을까? 그런데 SK는 외부에서 지역사회 공헌을 하겠다며 홍보하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당연히 이 사업에 사리면 주민들이 반대하자, 괴산군 공무원들까지 나서 토지주들에게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는 군으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는 단체가 반대주민들에게 연대의사를 밝히자, 공무원이 단체 관계자에게 '사업비을 끊겠다'고 '갑질' 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반대 대책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불법건축물을 단속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관 합동 산업단지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지역주민들의 의사표현 자유마저 억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서울에서 SK 최태원 회장은 고상하게 ESG를 이야기하고 있다. 농촌 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탄소흡수원인 임야를 파괴하며, 기후위기가 낳을 식량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반인 농지를 파괴하고, 농촌의 땅과 물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벌이면서 말이다.

이것은 마치 다국적기업이 제3세계 국가에 가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주민들의 인권을 탄압하면서, 본국에서는 고상하게 ESG를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도시 속 SK, 농촌 속 SK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4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필자는 또 다른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려고 하는 농촌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주민들로부터 받은 서류에서 'SK'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아마도 사업이 좀 더 추진되면 자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SK그룹은 최근 공격적으로 산업폐기물·의료폐기물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에도 충청지역의 폐기물업체들 몇 곳을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인수했다. 지난 4일에는 SK에코플랜트가 무려 1925억 원을 주고 '제이에이그린'이라는 폐기물업체의 지분 70%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과연 어떤 SK가 진짜 모습일까?

서울에서 최 회장이 기후위기니 탄소중립이니 떠드는 게 SK의 참모습일까? 아니면 농촌을 파괴하고 농지와 임야를 훼손하면서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는 것이 SK의 참모습일까?

그런데도 서울에 있는 언론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최 회장이 탄소중립 얘기를 하면 받아쓰기에 바쁜 언론들이, SK그룹이 농촌지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벌이는 사업들이 어떤 심각한 문제들을 낳고 있는지, 과연 이런 식으로 돈을 벌면서 '친환경'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농촌은 '식민지'와 같은 상황이다.

이것은 지방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균형발전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최소한 지방 대도시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대기업이 지자체와 유착해서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개발사업을 벌이고, 지하를 수십미터까지 파고 어마어마한 양의 산업폐기물을 묻겠다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땅을 강제로 빼앗기고 평화롭게 살던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서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느 자리에서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서울의 화려한 행사장에서 보는 모습이 진실일까? 아니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변방이 되어버린 농촌에서 보는 모습이 진실일까?

상식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게 참모습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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