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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팔경의 하나인 연미정은 월곶진 성곽안에 자리하고 있다.
▲ 연미정 강화팔경의 하나인 연미정은 월곶진 성곽안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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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고장마다 관동팔경, 단양팔경에서 따온 듯한 OO팔경을 지정해 많은 관광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여행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역사의 고장 강화도 마찬가지다. 이곳 역시 강화팔경이 있는데 초지진, 전등사, 마니산 등 대부분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 많다. 

허나 유독 한 곳 만은 생소하고 낯설어 보인다. 제비 연(燕), 꼬리 미(尾)를 써서 연미정이라 불리는 그곳은 민통선 부근 외진 곳에 자리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이은 드라마 촬영으로 존재감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한반도의 대동맥 한강이 서울을 지나면서 세를 점점 불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임진강과 합류하며 장구한 대하(大河)가 되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 하류 끝의 한강 물줄기를 일컬어 조강이라 부르는데 남한의 김포와 북한의 개풍 땅 사이를 흐르다 어느덧 강화의 염하(鹽河)를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간다.   
  
그 염하와 조강이 만나는 지점에 연미정이 자리한 것이다. 연미정은 사실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와 마찬가지로 강화의 돈대를 구성하는 월곶진 안에 위치해 그 요새 안에 들어가야지 그 진면모를 비로소 살필 수 있다. 정자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돈대 앞 물길이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이라 지어진 것이다.

남북 물줄기가 합쳐지는 한강하구, 그리고 연미정

예전에는 서해에서 서울로 향하던 배가 모두 연미정 아래에 닻을 내렸다가 조류를 맞춰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지며 정묘호란 당시 후금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연미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월곶진 성벽을 올라가야 하는데 주변의 검문소와 군부대로 인해 끝나지 않는 분단의 아픔이 느껴진다. 위축되는 기분을 다독이며 월곶돈대의 성문과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 언덕 위의 요새를 향해 천천히 걸어본다.     

마치 열쇠 구멍처럼 생긴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니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한그루와 그 아래 사방으로 탁 트인 아늑해 보이는 정자 한 채가 우리를 반겨 준다. 그렇다. 이곳이 바로 강화팔경 중 하나인 연미정이다. 원래 느티나무 2그루가 연미정의 양옆에 자리했지만 태풍 링링으로 인해 넓고 단단했던 느티나무 한그루는 쓰러져 버렸고 지금은 밑동만 남은 채 황량하다.  
 
연미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북녘땅이 훤하게 보인다.
▲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북녘땅의 풍경 연미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북녘땅이 훤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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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예나 지금이나 장구하다. 북으로는 고려의 500년 도읍지인 개경 땅이 훤하게 보이고 동쪽으론 염하와 그곳으로 흐르는 한강하구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정자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섬 유도는 1996년 홍수 당시 북한의 소 한 마리가 떠내려왔지만 비무장지대라 남, 북 모두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소는 나날이 야위었고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남, 북이 극적으로 합의해 우리 군이 구출했다. '평화의 소'라 이름 붙여진 이 소는 제주도 출신의 '통일염원의 소'와 부부의 연을 맺고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한눈에 닿을 것 같지만 계속 멀어져 가는 북녘땅을 바라보며 평화를 기원해 본다.     

이제 북으로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다시 남쪽을 향해 내려가 보기로 하자. 강화대교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곳은 강화 전쟁박물관이 함께 있는 갑곶돈대다. 강화역사박물관이 고인돌 근처로 이사가기 전까지 이곳에 위치했고 강화대교를 바라볼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라 강화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처음 오는 여행지로 선호하는 곳이다. 

허나 이곳의 모습은 좀 아쉬웠다. 한옥 콘크리트 양식의 박물관과 정자, 그리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성벽들은 유적지라기보단 세트장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뒤편 조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섭정이라는 정자는 콘크리트와 페인트칠로 덮여 있었다. 올라가서 본 전망도 생각보다 시원치 않다. 
 
강화대교 바로 남쪽에 있는 갑곶돈은 성역화 작업을 거쳐 새롭게 복원되었다.
▲ 갑곶돈대 강화대교 바로 남쪽에 있는 갑곶돈은 성역화 작업을 거쳐 새롭게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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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갑곶돈대 한편엔 400년이 넘은 탱자나무가 향긋한 오렌지 향을 풍기고 있다. 지금도 해마다 탐스럽게 탱자가 열린다고 한다. 특히 강화도 곳곳에 탱자나무가 많이 심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성벽 밑에 심어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초입에 있는 강화 전쟁박물관은 강화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주제로 각종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니 함께 둘러볼 만하다.
 
용진진에 오르면 염하라 불리는 강화해협과 더러미포구가 눈에 띈다. 예전의 번창했던 항구는 초라하게 남아있다.
▲ 용진진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용진진에 오르면 염하라 불리는 강화해협과 더러미포구가 눈에 띈다. 예전의 번창했던 항구는 초라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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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돈을 나와 다시 남으로 향하다 보면 더러미 선착장과 장어마을을 지나치게 된다. 지금은 한갓진 마을이지만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수많은 배가 드나들었던 번창한 항구였다. '더리미'라는 지명도 '작은 마을들이 하나씩 더해지면서 새로운 마을을 이루게 됐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리가 생기기 전 이곳 사람들은 김포 쪽 나루에서 밀물 때를 기다려 나룻배에 몸을 싣고 강화도를 왕래했지만 강화교와 강화대교, 초지대교가 연이어 들어섰고, 이로 인해 물길이 바뀌면서 풍성하게 잡히던 어류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강화의 관방유적 중 하나인 화도돈대는 방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 화도돈대 강화의 관방유적 중 하나인 화도돈대는 방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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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래로 용진진,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를 거쳐 광성보로 이어지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엇비슷해 보이는 돈대들도 세세히 살피다 보면 축조 방법이나 지형, 바라보는 전망들이 다 다르다. 장소마다 주차가 힘든 곳이 더러 있으니 강화나들길이라 불리는 트레킹 코스를 통해 함께 둘러보길 추천드린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 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권은 5월 중순 출판 예정입니다.역사, 여행주제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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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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