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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의 명물인 생일도 투명산. 투명산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마치 산 두 개가 겹쳐 투명하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이 착시는 경이롭다. 산은 거칠어 절대 투명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투명하게 보이기 때문인데,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는 투명산의 착시 현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몇가지 희귀한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조건들이 서로 맞아야 한다고 전한다.

투명산을 보기 위해서는 완도 당목항에서 배를 타고 금일도로 가야 한다. 투명산을 만들어내는 것은 생일도에 있는 백운산 봉우리들이지만, 정작 이 현상을 볼 수 있는 곳은 5㎞ 가량 떨어진 금일도 동백마을이다.
   
투명산을 만들어내는 3봉우리는 실제로는 서로 앞뒤로 떨어져 있다. 그런데, 건너편 금일도에서 보면 봉우리의 능선이 부드럽게 중첩되는 부분에 'X'자가 선명하다. 우리 눈은 이렇게 어떤 표면의 윤곽에서 'X'자가 보이면 자동적으로 여러 형태가 중첩되었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세 봉우리가 비슷한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일어난다.

따라서, 관찰하는 위치도 중요하다. 금일도 일정항에서 자동차로 20분쯤 떨어진 동백리 선착장에서 볼 때만 세 봉우리의 능선이 일치한다. 만일 날씨가 아주 맑거나 너무 어두우면 이 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사진처럼 2월의 해질 무렵은 투명산을 만나기 좋은 시간이다.

흔히 관찰자로부터 산이 가까이 있을수록 산이 선명해 어둡게 보이고 산이 멀수록 대기중 공기층이 두꺼워져 먼 하늘과 비슷한 밝은 색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서로 멀리 떨어진 거리로 인해 투명산의 맨 앞 봉우리가 어둡게 보이고 뒤쪽의 두 봉우리가 밝게 보이는 것이다. 

투명산같은 착시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2015년 네팔의 희말라야 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 착시를 보기 위해서는 높은 희말라야 산을 올라야만 하고 착시 정도도 약하다. 

동백리는 서기 1500년대에 강씨 일가가 거주하였으나 현재 후손은 거주하지 않고 있으며 그 후 1600년대에 경주이씨가 거진군으로부터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로 약 1650년대에 속칭 뒷산에다 제를 모셨다고 전해지며 1800년대 중반까지도 그 흔적이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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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약 150년 전부터 현 제당위치에 움막을 지어놓고 제를 모셔왔는데 1948년도에 목조기와 건물을 신축하여 제를 모셔오다가 1993년 5월 23일 개축하였다. 이는 주민들의 건강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 제례의 일종이다.

매년 음력 섣달그믐(당)과 정월 초 이튿날(뒷재)에 당제를 지내 오는데 당제를 담당하는 제주는 마을 동 회의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가정을 선정하여 대문에 금줄을 치고 부정이 있는 사람은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표시를 해두고 정성스럽게 당제를 준비하였다.

동백당(사진)은 1948년에 개축하고 다시 1993년 5월 23일 목조 기와로 재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당옥 좌우로 수 백년된 소나무 동백나무 등 울창하게 숲이 우겨져 있고 당옥 아래에는 물길이 좋아 당샘이 있다. 제사 기간에는 당샘 주변에 금줄을 치고 그 샘물로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며 각종 제물도 당샘물로 지었다.

제주는 선정된 날로부터 제사가 끝날 때까지 항상 흰 마스크를 쓰고 다녔으며 당집과 자택만 왕래를 하였으며 마을사람을 만났을 때도 말을 걸지 않았다. 기간 내 볼일(화장실) 있을 경우 큰 것을 봤을 때는 당샘 물로 사워를 해야 하고 작은 것을 봤을 경우는 당샘 물로 손을 씻어야 했다. 

춥고 힘든 일이었지만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제주들은 정성을 다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매굿이라 불리는 군고. 군고는 농악에서 한 차원 발전된 군대의 진법과 같은 농악놀이인데, 놀이와 군대의 진법이 어울려 서남해안의 방비를 위해 선대로부터 전승돼 온 놀이다.

동백마을의 군고는 섣달 그믐 저녁에 선착장 인근 해안가(큰치)에서 갯제를 모시고 마을 회관으로 돌아와서 밤 12시까지 당집에서 제사를 모시는 동안 이어진다. 마을 회관 앞 마당은 주민, 향우, 어른,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서로의 소통과 화합의 시간이다. 정월 초하루는 쉬고 이튿날은 후손이 없는 12분의 제사를 마을 뒷제와 마을 공동우물(통샘), 지신받기, 보리마당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가락을 뽐냈다. 이후 제주의 집, 마을 임원 집, 일반 주민 집을 찾아다니며 집 굿(마당밟기)을 쳤다.

행렬을 보면 깃발이 앞서고 사냥꾼, 나팔수, 꽹과리(4-5명) 고수(3-4명) 장고(3-4) 징(2) 소고(3-4) 주민 등으로 구성된다. 행렬과 가락은 청해진 열두 군고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매굿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으나 행렬은 단조로워지고 가락 또한 많이 변질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 구구노래(당제를 지낼 때 매굿을 치면서 부른 노래)

구구팔십 일광론은 여동비를 따러가고 팔구칠십 이적서는 채석강에 놀아있고 칠구육십 삼노동은 동적강에 놀아있고 육구오십 사구삼십 상산에 밭을뒤고 오구사십 오자서는 채석강에 놀아있고 사구삼십 육수부는 동대문에 문을걸고 삼구이십 칠대부는 동적강에 놀아있고 이구십팔 팔진도는 제갈량의 진법이요 일구구 궁수는 하도락서 이아니냐. 

(계속)

유재철 이장
최광윤 과장(동백마을 출신 공무원)
완도신문 해양역사문화 포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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