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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르게 너르게 풀어지는 날이 있다. 무엇이든 다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일에도 화가 나지 않을 것 같은 날. 내 안에 푸르고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날. 그리고 실바람이 오가며 수풀을 쓴다.

쏴쏴쏴- 쏴쏴쏴- 리드미컬한 노래와 춤이 흘러나온다. 오늘 내 마음이 그랬다. 어린이날이니까 아이가 즐겁게 하루를 보내길 바라 마음속 내 욕심을 말끔히 비웠던 오늘, 나는 어린이처럼 즐겁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났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가 한 말. "마트에 가서 서윤이(자신의 이름) 선물 사자." 며칠 전부터 날짜를 세며 기다리던 어린이날이다. 마트에서 아이는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발견했다. 레진 아트와 물총. 집으로 돌아오자 바로 만들기에 돌입한 아이. 몰드에 레진을 넣고 아주 작은 꾸밈 조각을 올려 굳혔다. 알려주지 않아도 혼자서 척척. 레진이 완전히 굳기를 기다리다 마당에서 물총 놀이를 시작했다.

그 사이 동네 고양이들이 찾아와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명랑하게 뛰어놀고 고양이들은 나른한 기운을 퍼뜨리는 오후. 벌써 초여름처럼 한낮의 기온은 20도를 웃돈다. 그런데도 높은 하늘에서는 바람이 계속 흐르는지 고개를 들어 먼 나무를 보면 연초록의 잎사귀들이 바르르르 몸을 떨고 있다.

파란색 물감을 연하게 풀어놓은 듯 포근한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사방엔 연둣빛 초록으로 새 단장한 나무와 풀, 알록달록 빛깔을 뽐내는 꽃들이 가득. 오월의 오후는 다정도 하구나. 나무 그늘 아래에선 검은 얼룩무늬 고양이가 곤하게 잠을 자고 처마 밑 그늘에선 느른하게 몸을 뉜 황갈색 줄무늬 고양이가 아이의 간지럼 태우기에 골골거린다.

가만히 멈춰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새어 나온 희미한 소리가 또렷해지며 다가온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뾰로롱 뾰로롱, 아악 아악, 재재재재 재재재, 꾹꾹 꾹꾹, 새들의 노랫소리가 합창처럼 흐른다. 그때 살그머니 맨살을 쓸고 가는 바람. 오월의 오케스트라 속에 있다.
 
어린이와 고양이가 있는 세상은 즐겁고 아름답다. 작은 생명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세계는 구석구석 경이롭고
▲ 동그라미 어린이와 고양이가 있는 세상은 즐겁고 아름답다. 작은 생명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세계는 구석구석 경이롭고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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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오케스트라는 고양이의 걸음걸이를 닮았다. 살금살금 다가와 보드라움을 떨구고 가는. 오월을 이제야 처음 만난 듯, 그 다정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그러다 깨닫는다. 모든 계절이, 모든 달들이, 모든 날들이 새롭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세상을 새로 만난 아이처럼 배시시 웃는다.

고양이들이 낮잠에 빠져 맥을 못 차리자 고양이와 놀고 싶은 아이는 뾰로통한 얼굴이 되었다. 매번 느끼지만 작은 몸 안에 고유한 온기와 평온을 한가득 품고 있는 이 동물들은 참으로 신기하고 매력적이다. 움직이는 안온함의 덩어리랄까.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몸놀림, 가늘어졌다 둥글어졌다 상상을 초월하며 바뀌는 몸의 형태. 주변의 무엇도 방해하지 않으며 더없이 가볍고 고요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발걸음.

그런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평정을, 고양이처럼 품고 싶어진다. 고양이처럼 도도하지만 사랑스러운, 한없이 느리면서도 한없이 날쌘 몸짓을 갖고 싶다. 극과 극을 오가는 자유와 어떤 초연함마저.

마당으로 놀러 오는 고양이는 서넛이 되는데 그중 유독 아이가 예뻐하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다른 고양이들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슬그머니 사라지는데 그 고양이만은 스스럼없이 사람들 가까이 다가와 발 밑에 몸을 누이곤 한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그 아이의 모습이 사람들의 호감을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살이 올라 둥그런 몸처럼 옆으로 둥글둥글한 얼굴은 귀염 지고. 황갈색 털로 뒤덮인 몸엔 은은하게 줄무늬가 있는데 목 부분에는 줄무늬가 둥그런 띠를 그리며 목걸이처럼 걸려 있다.

몸과 얼굴 생김새 전체에서 '나는 천하태평. 사랑받는 게 좋아요, 사람 친구가 좋아요. 먹이를 주면 더 좋죠. 나랑 놀아요' 하며 솔직하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외모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없지만 때로 외모와 행동, 태도가 모든 걸 보여주기도 한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우리 곁으로 말없이 다가와 가만히 눈을 맞추는 이 아이는 몸과 얼굴로 다 말하는 것 같으니.

거리를 두고 떨어져 풀숲에 드러누워 우리를 경계하는 게 아니라 발 밑으로 찾아와 온 몸의 힘을 뺀 채 드러눕는 건 친구가 되고 싶다는 표현. 그게 왜 이리 좋은지. 그 마음이 투명하게 느껴져서일까.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느른하고 태평한 새 친구에게 '동그라미'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날이 맑았던 오늘, 어둠이 내리자 하늘에는 총총총 별이 떠올랐고 가느다란 손톱 달이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어둠 속에서 아이와 함께 비누 방울을 날리다 고개를 들어 가장 먼 곳의 별을 찾아보았다.

까마득히 오래전, 아주아주 먼 곳에서 보냈을 빛의 흔적을. 비누 방울이 오로라 빛을 내며 날아오르고 밤하늘에선 점점이 박힌 별들이 소리 없는 깜빡임으로 하모니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게 어딘가 몸을 숨기고 있는 어떤 존재의 거룩한 선물은 아닐까. '안녕...고마워' 하고 입 속으로 말해 보았다. 

모든 날들을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고양이 같은 마음으로. 어린이가 있는 세상은 즐겁고 아름답다. 작은 생명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세계는 구석구석 경이롭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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